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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경이가 밥을 차리자 할머니는 먹지 않았습니다. 잠잘 때를 제외하고는 늘 머리를 싸맨 수건으로 눈시울만 적셔낼 뿐입니다.
 "할무니이, 어서 드세요."
 "오냐, 내 강아지, 할무니가 오래오래 살아야 할텐데."
 "할무니… 내가 이담에는 돈 많이 벌어서요, 할무니 옷이랑 사주고요, 구경도 시켜드릴께요."
 할머니는 억지로 밥을 먹고 나서 선반 위에서 마이신 한 알을 내렸어요. 그리고는 유경이 몰래 얼른 먹었습니다.
 유경이는 설거지까지 했습니다.
 할머니는 이내 기운을 회복했나 봅니다. 유경이 노래가 듣고 싶다고 했으며 옛날 이야기도 들려주겠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할머니와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 유경이는 가장 좋습니다. 유경이도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해줍니다.
 청개구리 이야기지요. 할머니는 매일매일 들어도 까먹는다며 또 해달라고 합니다. 정말 까먹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쨌든 할머니가 즐거워하므로 유경이도 기쁩니다.
 "그래서 청개구리들이 비만 오면 개굴개굴 우는 구나. 엄마가 떠내려 갈까봐서, 으응… 이제 알겠다."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유경이는 청개구리 아들처럼 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엄마난 있다면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할 것입니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유경이는 잠이 듭니다. 유경이가 잠들자마다 할머니는 소금물을 마시며 괴로워합니다.
 유경이 꿈속으로는 어김없이 엄마가 나왔지요. 감꽃 목걸이를 엄마가 걸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함께 운동회에서 달렸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 도란거리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지요.
 "그나저나 큰일이네.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나. 나는 괜찮지만, 저 어린것을 어쩌냔 말여."
 "참, 할머니도 유경이가 시집가는 것을 보고 돌아가셔야지요."
 "그러게 말이네. 우리는 빚이 많은데… 에이취, 왠 기침이…."
 "아참, 내일 지랑 병원에 가요. 오늘 큰일 날 뻔했어요."
 꺽다리 삼촌이 담배연기를 내뿜으며 말했습니다. 그 옆에는 꺽다리 삼촌 부인인 칠석이 엄마가 앉아 있었고요. 늘 집안 일을 도와주며 한가족처럼 살아가는 그들입니다.
 "병원은 무슨… 이러다 일을 안 하면 낫겠지."
 "할머니도 참, 도시에서는 개가 감기만 걸려도 벌벌 떨면서 병원에 간다니까요."
 "그것은 도시 사람들 이야기고."
 거기서 할머니의 이야기는 끊어졌습니다.
 꺽다리 삼촌 부부가 일어섰기 때문입니다.
 할머니가 밖으로 나간 사이에 유경이는 다시 잠이 들었습니다.

7
 다음날은 하루종일 비가 내렸습니다. 그리고 나자 하늘은 더욱 맑아졌습니다. 고추잠자리들의 꼬리도 더욱 붉어졌고요. 삿갓봉도 붉나무들로 붉게 물들어 갔답니다. 가을도 저물어가고 있었습니다.
 창 밖으로 텅 빈들을 내다보고 있던 유경이는 깜짝 놀랐지요. 교무실에 갔던 선생님이 유경이를 불렀거든요. 동무들의 눈빛도 일제히 유경이에게 모아졌습니다. 긴 생머리에 검은테 안경을 쓴 선생님이 자습을 시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경아, 얼른 가방 챙겨들고 나오렴."
 그 말에 유경이는 어떻게 가방을 챙겨들고 나왔는지 모릅니다.
 "무슨 일이니?"
 "말 좀 해봐."
 동무들이 물었지만 눈앞에는 보이지 않았지요. 오직 할머니의 모습만이 나타났습니다. 선생님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유경이는 짐작하고 있었습니다. 교실을 나오는데 쉬지 않고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
 "왜 울어. 자, 교감선생님하고 가는 거야."
 걸쭉한 얼굴에 콧수염이 짙은 교장선생님이 유경이 손을 잡았습니다. 담임선생님도 유경이 등을 토닥거렸습니다.
 "선생님도 이따가 갈게. 울지 않아야지. 그래야 할머니도 힘을 내시지."
 "네에."
 "교장선생님, 부탁합니다."
 담임선생님은 유경이 눈물을 닦아주고는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학교 앞에서 버스를 타고 읍내 병원 앞에서 내렸습니다. 병원 앞에 앉아 있던 꺽다리 삼촌이 교감선생님께 인사를 했습니다.
 "교감선생님께서 오셨군요."
 "유경이 할머니는 어떠십니까?"
 "예, 다행히도…"
 유경이가 있어선지 꺽다리 삼촌은 말끝을 흐렸습니다.
 "다행히도 남새밭에서 쓰러지셨기에 망정이지…"
 꺽다리 삼촌의 그 말이 유경이 귀에서 계속 윙윙 거렸지요.
 교감선생님은 슈퍼마켓에서 백도 복숭아넥타를 샀습니다.
 링게르를 맞고 있던 할머니가 유경이를 보자 몸을 일으켰습니다. 유경이는 눈물을 참으며 달려갔습니다. 교감선생님이 보고 있어선지 소리내서 울지는 못했습니다.
 "공부는 안 하고… 내 강아지… 괜찮다. 할무니는 안 죽어."
 "할무니, 내가 얼른 커서… 응응, 할무니… 응응, 돈벌어서…. 응응…. 할무니 편히 모실거야, 응응… 할무니이… 응응…"
 할머니의 뼈만 남은 손이 유경이 얼굴을 쓰다듬어 줍니다.
 교감선생님도 얼른 눈을 돌렸습니다.
 "교감선생님… 죄송합니다. 이리 앉으시지요."
 그제서 교감선생님은 엉거주춤 앉았습니다.
 "좀 어떠십니까?"
 "괜찮습니다. 쉬면 낫는 병이랍니다. 그런데 농사꾼이 어디 쉴 수가 았나요? 쉬고 잘 먹어야 한다는데요."
 "그래도 이만 하길 다행입니다. 유경이를 생각해서라도 빨리 나으셔야지요."
 교감선생님 말에 할머니도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그 날 오후에 담임선생님과 아홉 명의 반 동무들이 찾아왔습니다. 들에 핀 국화꽃으로 만든 꽃다발이랑 모금한 돈을 들고요.

8
 진눈깨비가 내렸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온 할머니를 맞이한 것은 진눈깨비와 여윈 평돌이었습니다. 할머니의 얼굴은 너무도 하얗습니다. 온 마을 사람들이 와서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유경이는 학교수업만 끝나면 읍내 병원으로 갔습니다. 꺽다리 삼촌이 오토바이로 태워다 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한달 동안 입원했습니다. 서울에서 사는 큰 고모가 내려와서 간호를 해주었습니다.
 할머니가 퇴원하던 날 병원으로 찾아온 동무들이 이상한 말을 하였습니다.
 "유경아 너 곧 전학 간다며?"
 "정말이니? 너희 고모가 그랬다던데. 이미 집도 팔라고 내놨데."
 사실 처음 듣는 말은 아니었지만 유경이는 모른 체했습니다. 고모는 입버릇처럼 서울로 가야한다고 말했거든요. 어젯밤에도 고모는 할머니에게 아주 길게 말했습니다.
 "엄마, 도대체 왜 고집을 부려. 집나간 며느리가 황금덩어리라도 들고 올지 알아? 어림없는 소리. 잘 됐어, 이번 기회에 서울로 올라와. 유경이는 내가 키울게."
 "그래그래, 안다. 하지만 니가 어떻게 유경이를…"
 "참, 엄마도. 지금 그것 생각하게 생겼어. 더 이상 농사는 안돼. 엄마 나이가 몇이야? 그리고 지금 병원비는 어떻게 하고…"
 그 말에 할머니는 한숨만 내쉬었습니다.
 그래서 유경이는 할머니가 퇴원했어도 별로 기쁘지 않았습니다. 아직도 서울로 전학 간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할머니 입에서 아직 그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유경이는 동무들도 "너 전학 간다며?" 하는 말만하면 시무룩해집니다. 그런데 진눈깨비가 내리던 날 할머니는 뒤안에서 유경이를 불렀던 것입니다. "아가야, 할무니가 일 안 하면 좋아?"
 할머니는 유경이를 잡고 앉았습니다. 창포 꽃이 만발했던 잎차나무 옆으로 진눈깨비가 마구 쏟아졌습니다. 꼭 감꽃이 떨어지는 것 같았지요.
 유경이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거렸습니다.
 "유경이도 서울가면 좋고?"
 "…"
 "그래, 엄마도 찾을 수 있으니까."
 할머니는 엄마 이야기를 끄집어냈습니다.
 순간적으로 유경이는 홱 토라지며 소리쳤습니다.
 "싫어요, 엄마는 싫어요! 거짓말이에요! 거짓말이에요!"
 그리고는 대밭으로 도망쳤습니다.
 "유경아, 이리 오지 못해! 이것이 어디서 어리광만 부리고 난리야!"
 고모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래도 유경이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태밭을 지나 뒷산으로 올랐습니다. 진눈깨비가 내려 길은 미끄러웠습니다. 몇 번이나 넘어지고 뒹굴었지만 다시 일어나서 올라갔습니다.
 "싫어. 엄마는 싫어!"
 삿갓봉만이 유경이 목소리를 흉내 냈습니다.

9
 "자, 이것 가져가게."
 할머니가 헛간에서 삽과 호미를 끄집어냈습니다. 모두다 할머니가 애지중지하던 연장입니다. 까만 장화를 신은 꺽다리 삼촌은 평동이를 보면서 한숨을 내쉽니다. 평돌이는 아예 눈을 감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체념한 모양으로요.
 "그나저나 집이 팔려야 할 텐데요."
 "안 팔리면 말지."
 할머니는 오래된 낫까지 찾아서 꺽다리 삼촌에게 주었습니다.
 며칠동안 계속된 진눈깨비가 사라지자 날씨는 봄날인양 따뜻했습니다.
 그러나 유경이는 말없이 지냈습니다. 이제 서울로 이사가는 꿈마저 꾸었으니까요. 이사간다는 사실보다 더 슬픈 것은 평동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유경이는 평동이까지 데리고 가자고 했습니다.
 "할무니이, 평돌이랑 같이 가요."
 "아이고오, 내 강이지… 개는 안 되는 것여."
 "왜요? 평돌이는 영리한데."
 유경이 말에 끝내 대답하지 못하고 돌아서는 할머니 허리는 무척 굽어 있었지요. 할머니 허리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눈이 시리도록 파랗습니다.
 "부모 없이 너무 오냐오냐 해주니까… 철없이… 개를 어떻게 데리고 가냐! 서울 가면 남의 집 살이를 해야 하는데… 원 아무리 철없어도 그렇지, 끙."
 고모의 말이 너무나 매몰찼기 때문에 하늘은 더욱 눈이 시렸겠지요.
 유경이는 날마다 평돌이의 밥을 주었습니다. 할머니 앞에서 쌀밥을 주었지요. 할머니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그제 밤이었습니다. 꺽다리 삼촌이 평돌이를 잡기 위해서 왔습니다. 갑자기 꺽다리 삼촌이 악마로 보였습니다. 유경이는 재빠르게 헛간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리고는 와락 평돌이를 끌어안았지요.
 "평돌아, 어서 도망 쳐. 너를 잡으러 왔어. 너는 잡히면 팔려가게 돼."
 그러면서 목줄을 풀었습니다. 평돌이는 마냥 좋아서 꼬리치고 달려들 뿐 유경이 말을 도무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바보야, 어서 도망 가! 어서!"
 부엌재 속에 꽂힌 똥삽을 들고 휘둘렀습니다. 
 그제서야 평돌이는 놀란 눈빛으로 도망쳤습니다.
 곧이어 꺽다리 삼촌과 동네 어른들이 헛간으로 들어오더니
 "아니, 평돌이가 없잖아!" 하고 유경이를 쳐다보았어요.
  "허허, 참. 저 녀석이 풀어주었나 보군요. 부모 없이 자랐다고 철이 없어도 원… 어서 평돌이를 불러!"
 마루에 앉아있던 고모의 눈빛이 무섭게 좁혀졌지요.
 유경이는 입술을 꼭 사려물고서 얼른 뒤안으로 돌아갔어요. 마음 속으로는 평돌아, 멀리멀리 도망쳐버려 하고 외치면서요.
 "난감하군요. 어떻게 잡지요?"
 "그러게요."
 수군거리던 어른들의 목소리가 조용해졌습니다.
 그 날 하루종일 어른들은 평돌이를 잡기 위해 갖은 꾀를 다 냈지만 어림도 없었어요. 맛있는 고기를 주기도 했고, 헛간으로 몰아넣기도 했으며, 덫을 놓기도 했습니다. 영리한 평돌이는 어른 꾀에 속아넘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안심하고서 저녁밥을 먹고 있는데 난데없이 총소리가 울렸습니다.
 "맞았어?"
 "안 맞은 것 같은데… 정말 여우같은 놈이군."
 꺽다리 삼촌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유경이는 벌떡 일어나서 평돌이를 불렀습니다. 세상에, 평돌이를 공기총으로 쏘다니.
 "미워, 삼촌 미워! 할무니이! 할무니이!"
 "뚝 안 그쳐! 이놈의 가시내가 어디서 어리광이야!"
 "싫어잉, 나는 서울 안 가아. 평돌이랑 살거야!"
 고모가 유경이를 잡고 마구 때렸습니다.
 "오냐, 떼놓고 갈 테니가 개새끼랑 살아!"
 "싫어잉. 싫어잉!"
 유경이도 잘못했다고 빌지 않았어요. 급기야 할머니와 꺽다리 삼촌이 말렸습니다. 유경이는 아무도 말려주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할머니도, 꺽다리 삼촌도 미웠습니다. 죽는다는 생각도 했으니까요. 아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거든요.
 그 날 이후로 평돌이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 동네를 다 뒤져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유경이는 다시금 불안해졌습니다. 할머니가 유경이를 달랬습니다
 "내 강아지… 평돌이가 불상하구나. 어디서 밥이라도 먹는지… 그래서 팔려고 했어, 어차피 서울로 데려갈 수는 없으니까."
 "칫, 죽일려고 했잖아요?"
 "그것은 평돌이가 잡히지 않으니까…"
 "미워, 할무니도 미워요! 미워, 밉단 말야!"
 "유경아, 할무니가 잘못했다!"
 할머니의 보타진 눈에서 맑은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도 평돌이를 찾아야 해."
 "또 총으로 쏠려고요?"
 "유경아, 할무니가 절대로 총을 못 쏘게 할게. 돈 많은 집에 팔려 가면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좋을 것여. 평돌이는 읍내에 사는 돈 많은 사람한테 팔려가기로 했단다…"
 "거짓말! 거짓말!"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꺽다리 삼촌이 읍내에 사는 어떤 돈 많은 사람을 데리고 왔거든요. 평돌이가 영리하고, 진돗개 잡종이라서 사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절대로 상처 입으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경이는 평돌이를 잡아서 주기로 했던 것입니다. 유경이는 평돌이를 뒤안 대밭 속에서 찾았지요. 아무리 사람이 불러도 평돌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경이 말은 믿었지요.
 "평돌아, 어서 나와. 우리는 모레면 이사가, 너랑 같이 갈 수 없대. 너는 부자집으로 간데. 평돌이는 좋겠다, 이제 고기도 많이 먹고…."
 평돌이가 꼬리치며 나오지만 눈빛은 겁에 질려 있습니다. 조금만 부시럭거려도 다시 들어가 버립니다. 유경이는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으며 평돌이 목에다 개고리를 채웠습니다 그리고는 마구 울어버렸지요.
 "평돌이는 좋겠다! 평돌아!"
 지금도 유경이 눈에서는 눈물이 거침없이 터져나옵니다.
 꺽다리 삼촌이 평돌이를 끌고 나갈려고 하기 때문이지요. 평돌이는 안간힘을 쓰며 유경이를 바라다봅니다. 골목 밖에는 꺽다리 삼촌의 트랙터가 서 있습니다. 바로 평돌이를 태우고 갈 트랙터입니다.
 "자아, 평돌아… 어서 가자야."
 "그것 참, 사람 생이별 시키는 것 같구먼."
 "그러게 말야. 워낙 영리했던 개라."
 동네 사람들이 혀를 끌끌 찼습니다.
 "유경아, 평돌이한테는 잘된 것여."
 할머니는 한순간도 유경이 손을 놓지 않았어요.

10
 이사가기 전날입니다. 마을사람들이 와서 장구치고 노래했습니다. 할머니도 덩실덩실 춤을 추었습니다. 이사가는데 왜 어른들은 노래하고 춤추는지 모릅니다. 하늘은 점점 찌푸려졌고요, 바람도 대나무 숲을 흔들었지요.
 하루종일 아무것도 먹지 않은 유경이는 할머니의 젖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었어요. 할머니의 젖에서는 맨드라미꽃 냄새가 납니다.
 평돌이는 꿈속에서 유경이를 원망했습니다. 눈꼽 낀 눈으로 눈물을 주르르 흘리며 어디론가 끌려갔지요. 유경이는 평돌이를 따라가다가 잠에서 깼습니다. 아직도 밖은 캄캄한데 평돌이 소리가 들렸습니다.
 유경이는 슬그머니 방문을 열고 나갔습니다.
 눈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눈송이에 정신이 팔렸지요. 온통 하얗게 내리는 눈 세상 속에 평돌이가 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 못했으니까요. 평돌이는 사립문 앞에서 애타게 유경이를 불렀어요.
 "평돌아!"
 유경이는 신발도 신지 않고 달려갔습니다.
 이십리 길을 달려온 평돌이는 유경이 품에 안겼습니다. 못이 달린 개줄을 끌고서 달려온 것입니다.
 "평돌아!"
 평돌이도 뭐라고 말했습니다.
 눈송이는 둘을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꽃송이로 만들어갑니다.
 "세상에, 평돌이가…"
 소리 없이 다가온 할머니마저 눈꽃으로 덮여갑니다. "아가야, 서울 가기 전에 스님한테 가야지, 평돌이를 아주 잘 키워달라고. 그리고 할머니랑 절에 와서 평돌이를 보면 되고…"
 어느새 할머니 손목에 걸린 염주알이 빙글빙글 돌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서 가자. 눈이 더 오기 전에 가야지."
 유경이는 할머니 손을 잡고 산길을 걸었습니다. 평돌이가 앞장서고 그 뒤를 할머니가 따릅니다. 평돌이 발자국은 할머니가 딛고, 할머니 발자국은 유경이가 딛고… 그리고 나면 눈송이들이 발자국을 감쪽같이 지워버렸습니다. 아무도 모르게요, 아무도.
<끝>

글/이상권

 

작성자이상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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