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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공자(無腸公子)

[바라래살어리랏다] 게 이야기-1

본문

   
▲ 갈게ⓒ부안21
게를 무장공자(無腸公子)라고 한다. 창자가 없는 귀공자라는 뜻이다. 전라도말로 실속이 없거나, 물정을 모르거나, 자존심이 없는 사람을 ‘속 창시(창자) 없는 놈’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창자 없는 게가 정말로 실속도 없고, 물정도 모르고, 자존심도 없는 것일까? 아니다. 남의 집(굴)에는 들어가지 않을뿐더러 죽더라도 큰 집게발로 한 놈 이라도 물고 죽는 기개도 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겨 압제를 받아도 분한 마음이 없고, 욕을 보아도 노여워할 줄 모르고 종노릇하기만 좋고 달게 여기며, 자유를 찾을 생각이 도무지 없으니, 이것이 창자 있는 사람들이라 하겠소? 우리 게는 창자가 없어도 남이 나를 해치려 하면 죽더라도 큰 가위 게발로 집어 한 놈 이라도 물고 죽소.”

1908년에 안국선(安國善)이 쓴 신소설 금수회의록(禽獸會議錄)에서 까마귀, 여우, 개구리, 벌, 게, 파리, 호랑이, 원앙 등의 금수(禽獸)들이 사람으로 가장하여 회의를 한다. 위의 내용은 게((蟹해)가 발언한 내용 중의 한 대목으로 창자 없는 게보다 자존심도 없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꼰 내용이다.

이 대목에서 요즈음의 새태를 살펴봄직하다. 사돈네 떡이 아무리 싸고 맛있어도 마음에 들어야 사먹는 것이지..., 우격다짐으로 떠넘기는 광우병 쇠고기를 국민은 공포에 떨건 말건 넙죽 사겠다는 한국 정부는 ‘속 창시’가 없다. ‘속 창시 없는’ 게도 이런 상황에서는 죽더라도 가위처럼 생긴 집게발로 한 놈 이라도 물고 죽는다.

‘滿庭寒雨滿汀秋·뜰에 가득 차가운 비 내려 물가에 온통 가을인데
得地縱橫任自由·제 땅 얻어 종횡으로 마음껏 다니누나
公子無腸眞可羨·창자 없는 게가 참으로 부럽도다
平生不識斷腸愁·한평생 창자 끊는 시름을 모른다네

또한, 근원수필(近園隨筆)’에는 위의 ‘무장공자’라는 시가 전해지는데, 벼슬길에 오르지 못하고, 정적에 밀리고, 벼슬아치들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시집살이에 시달리는 애끓는 인생을 창자 없는 게를 부러워하며 한탄하는 대목이다.

    ▲ 갈게가 거품을 물고 있다.ⓒ부안21 게가 뽀갈뽀갈 밥 짓고 있어야...

보릿고개를 넘던 시절, 갯살림 중에는 때 맞춰 갈게장을 담그는 일 또한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갈게는 보리누름쯤이 제철인데 그때를 놓치면 여름 밥상에 반찬 한 가지가 빠질 수밖에 없다. 갈게는 농게와 더불어 기수역의 갈대나 염생식물 군락지 주변 진흙질 갯벌에 40~50cm 정도로 깊게 구멍을 파고 살기 때문에 이놈들을 잡으려면 자연히 뻘밭에서 뒹굴어야 한다.

갈게가 아무리 요긴한 갯살림이라고 해도 어른 체면에 뻘밭에서 뒹굴 수야 없지 않겠는가? 그래서 갈게잡이는 대개 아이들의 몫이 되고 또래아이들과 갯벌에서 서너 시간 뒹굴다보면 한 양동이 잡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때 양동이 속을 들여다 보면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게들이 분해서인지 일제히 게거품을 무는 것이다. 이를 두고 부안사람들 하는 말이 있다. “게가 뽀갈뽀갈 밥짓고 있어야...”

    ▲ 농게ⓒ부안21 농발게

부안에서 갯벌하면 농발게가 먼저 떠오른다. 여름날 갯벌에 나가면 농발게가 갯벌을 온통 빨갛게 물들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사람이 다가가면 순식간에 구멍 속으로 숨어버린다. 그래서 농발게를 관찰하려면 큰 인내력이 필요하다.

한참을 숨죽이고 구멍 앞에 앉아 있다 보면 서서히 굴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는데 영역다툼 하는 놈, 뭔가를 열심히 주워 먹는 놈, 집게다리를 하늘로 쳐들고 너울너울 춤추며 구애작전을 펴는 놈..., 그러다가 인기척을 느끼면 재빠르게 구멍 속에 몸을 숨긴다.

농발게를 생포할 기회는 바로 이때다.
게가 비록 남의 구멍에 들어가지 않는다고 해도 자기 집을 못 찾고 남의 집 앞에서 허둥대는 놈이 있기 마련이다. 어렸을 적에 이렇게 해서 잡은 놈의 집게다리에 실을 매어 하루 종일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

농발게는 갈게 등과 같이 기수역의 갈대나 염생식물 군락지 주변 진펄갯벌에 40~50cm 깊이 구멍을 파고 산다. 몸은 앞이 넓은 사다리꼴이며 큰 것은 너비가 3~4cm정도이다. 눈자루는 2cm 정도로 길며, 안테나처럼 접었다 폈다 하는 게 특이하다. 암놈은 집게다리가 모두 작으나, 수놈은 집게다리 하나가 과장되게 크며, 붉다. 다른 농발게가 자신의 활동영역에 들어오면 큰 집게다리를 이용하여 서로 싸우기도 한다.

농발게의 학명은 ‘농게’다. 그러나 부안사람들은 농게라고 부르지 않고 농발게라고 부른다. 집게다리 하나가 자기 몸체보다도 더 큰 특성이 잘 나타난 이름 같아서 정감이 간다.

매년 4~5월이면 짝짓기철이며, 이 때는 암수 모두 몸에 붉은 색이 짙어진다. 이 때 숫놈이 마치 춤을 추듯 집게발을 하늘 높이 들었다 내렸다 하며 암놈을 유혹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울에는 밖으로 나오지 않고 굴속에서 겨울을 난다.

    ▲ 무늬발게ⓒ부안21 보리밥 먹고? 아나 나 잡아봐라!

부안사람들에게 선호하는 게를 꼽아보라면, 참게, 꽃게, 갈게 등을 꼽는다.
그런데 하나가 더 있다. 바로 똘짱게다. 똘짱게는 바닷가 바위웅덩이 지역에서 사는 풀게, 무늬발게, 납작게 등을 통칭한 이름인데, 돌짱 밑이나 바위틈새를 은폐·엄폐 삼아 살기에 붙여진 이름이리라. 몸의 크기가 2~3cm 정도로 작은 게다.

어찌나 동작이 빠른지 돌짱을 떠들라치면 잽싸게 다른 돌짱 밑으로 도망쳐 버린다.
이를 두고 하는 부안사람들 우스갯소리가 있다. "보리밥 먹고? 아나 나 잡아봐라!"하며 내뺀다나... 아무리 놈들이 동작이 빠르다고 해도 이 돌짱, 저 돌짱 뒤집다보면 한 주전자는 잡기 마련, 튀겨서 통째로 먹어도 맛이 좋지만, 게장 담궈놓고 두고두고 먹으면 밑반찬으로는 아주 그만이다.

    ▲ 옴조개치레무늬발게ⓒ부안21 갯벌의 방랑자 ‘옴조개치레’

대부분의 게들은 갯벌에 굴을 파고 산다. 농발게, 방게, 길게, 칠게, 엽낭게, 달랑게 등이 그런 놈들이다. 무늬발게, 풀게, 꽃부채게, 민꽃게 등은 바위틈이나, 바위 밑을 집으로 삼는다. 그물무늬금게, 범게, 자게, 밤게 등은 무주택자이다. 떠돌이 게인 셈이다.

자게, 밤게 등은 갯벌을 쏘다니다가 위험을 느끼면 펄을 헤집고 들어가 자기 몸을 숨긴다. 꽃게나 그물무늬금게, 범게 등은 헤엄을 칠 수 있어 자게나 밤게에 비해 훨씬 자유로운 놈들이다. 그러나 꽃게 외에는 헤엄 실력이 자기 몸을 안전하게 보호할 정도는 아닌 듯..., 이놈들도 위험을 느끼면 재빠르게 모래를 헤집고 그 속에 숨는다. 헤엄을 정말 잘 치는 놈은 꽃게다. 이놈은 헤엄을 어찌나 잘 치는지 먼 바다까지 헤엄쳐 다닌다.

그런데, 방랑시인 김삿갓처럼 아예 집을 등에 지고 갯벌을 방랑하는 놈이 있다. 바로 조개치레란 놈이다. 조개치레는 주로 모래갯벌에 사는데 우리나라 연안에는 2종이 있다. 하나는 등면이 비교적 매끄러운 동해안의 조개치레이고, 또 하나는 등면에 작은 돌기들이 많이 나있는 서해안의 옴조개치레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조개치레는 치장하듯 조개껍데기를 등에 업고 다니며 위장을 하거나 햇빛을 피하는 도구로 이용한다. 더 특이한 점은 다리인데 덩치에 비해 집게다리가 작다. 제1,2걷는다리가 아주 길게 발달해 있고, 제3,4다리는 작게 퇴회되어 등위로 올라와 있다. 이 제3,4다리를 이용해 조개껍데기를 등에 업고 다니는데 그 모습이 삿갓을 눌러쓴 방랑자 같기도 하다.

‘내집마련’ 걱정으로 아까운 청춘을 다 보내야하는 우리네 인생사로 놓고 볼 때, 자기 보금자리인 집을 지고 다니며 발길 닿는 데로 주유천하하는 이놈이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하다.

    ▲ 옴조개치레무늬발게ⓒ부안21 호랑이를 닮은 '범게'

부안시장 어물전에 가면 가끔 범게를 볼 수 있다. 어부들이 쳐놓은 그물에 걸려든 것이다. 게장을 담가 먹으면 맛있다며 권하지만 이 게가 얼마나 귀한 게인지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것 같다. 범게는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우리나라 서해에서만 산다. 그런데 해양환경의 변화와 남획으로 인해 개체수가 날로 줄고 있어 보호대책이 시급하다.

이름에서 느껴지듯이 범게는 범상치 않은 게다. 얼핏 보아 호랑이를 연상케 할 만큼 위엄스러우면서도 화려하다. 그러나 성질은 온순한 편이다. 몸은 큰 것의 너비가 10cm 정도의 둥근 모양이다. 몸 가장자리에 가시처럼 예리한 돌기가 머리 쪽에 7개, 몸 가장자리를 따라 6개가 나있다.

집게발은 튼튼하게 발달해 있으며, 제4걷는다리는 수영하기에 알맞게 노처럼 생겼고, 제3걷는다리는 보습처럼 생겨 모래펄을 파기에 알맞게 돼있어, 수영을 잘 할 뿐아니라, 몸이 노출되면 모래펄을 파고 들어가 숨는다.

이 글은 문화저널 6월호 기고 글입니다.

작성자허철희  huj@buan21.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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