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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나라의 음악 또한 불온한 것인지요?

[이영문의 영화읽기] 다큐멘터리 영화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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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바쁘다가, 아프다가 그렇게 시간이 간 모양입니다.
여러분은 언제 영화의 힘을 느끼시나요? 매혹적인 장면들과 감동이 흐르는 미장센인가요? 마음 한 곳을 푹 찔러 버리는 대사가 압도하는 장면인가요? 이도 저도 아니면 5분마다 건물 한 채가 폭파되고 사람이 한 명씩 죽는 헐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장면인가요?

저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 문득 사실처럼 등장하는 장면과 그 순간에 맞는 음악이 결합된 장르에서 영화의 힘을 느낍니다. 비록 허구이기는 해도 그 순간은 오래가는 법이지요. 임순례 감독의 ‘와이키키 브라더스’가 그러했고,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유작인 ‘프레리 홈 컴패니’, 앞으로 개봉될 최호 감독의 ‘고고70’이 아마도 그럴 겁니다.

그러나 이미 10년전에 이런 허구와 음악의 대칭을 깨버린 다큐가 있었지요. ‘파리.텍사스’로 잘 알려진 빔 벤더스와 음악가 라이 쿠더에 의해 만들어진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이 바로 그것입니다.

   

아마도 세계 최고령의 밴드로 기록될 이들은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사망하였습니다. 밴드가 결성될 당시인 1998년에 리더인 ‘꼼빠이 세군도’는 90세, ‘이브라함 페레’는 70세가 넘었습니다. 전설적인 쿠바의 피아니스트인 ‘루벤 곤잘레즈’도 80이 넘었었지요.

이들 중 한 명인 ‘오마라 포르투온도’가 한국에 옵니다. 단 하루뿐인 공연이니까 놓치지 않도록 하셔야지요. 너무 비싼 공연비가 흠이기는 하지만 못 가시는 분들을 위해 이 영화에 대해 쓰려고 합니다.

최근 마이클 무어 감독의 ‘식코’가 개봉되고 북경 올림픽에서 야구가 우승을 하면서 ‘쿠바’라는 나라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보수지향의 신문에서는 세계에 2개 밖에 남지 않은 독재국가(물론 그 중 하나가 북한입니다)로만 알려져 있는 쿠바는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수영하면 건널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작은 섬나라입니다.

수도 아바나의 명칭을 딴 시거와 세계 최강의 아마추어 야구팀을 가지고 있고, 모든 민중들이 무상교육과 무상의료를 지원받는 나라입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더 보태자면, 바로 쿠바인들의 일상이 담긴 음악이 가운데 있는 것이지요.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아바나 시거를 입에 문 채 쿠바 음악을 흥얼거리는 체 게베라의 얼굴을.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쿠바의 전형입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은 험난한 20세기를 살아온 쿠바 음악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너무나 가난해서 배가 고플 때마다 노래를 불렀다는 이브라함 페레. 화면으로 비치는 그의 주름살에서 우리는 세월의 연륜을 느낍니다. 쿠바 혁명이후에도 이발사로, 저녁에는 가수로 일상을 살던 그에게 라이 쿠더가 50년대 방식으로 음반을 만들자고 찾아옵니다. 막대한 자본과 최신의 음향기기를 들고 말입니다. 1997년 발매된 이들의 앨범은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을 강타했지요. 물론 미국에서는 별로 알려지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인들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가지 못하는 적대국가이니까요.
 

이 밴드의 음반제작과정과 암스테르담에서 행한 1998년 공연을 담은 것이 이 다큐멘터리의 내용입니다.
5인의 인터뷰가 간간히 나오면서 공연은 진행됩니다. 70이 넘은 나이에 평생 상상도 못할 정도의 유명세를 타버린 이들의 모습에서 저는 사는 것을 배웁니다.

힘들게 살아왔지만 자기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을 하며 초연하게 늙어가는 그 모습에서 자본으로 얼룩진 우리나라 가요계와 첨단기술로 무장하지만 정작 돈이 없어 진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우리 의료계를 생각합니다.

   

미국이 그토록 미워하지만 어찌할 수 없는 유일한 나라. 쿠바의 음악을 듣다보면 인간의 영혼마저 자본으로 지배하려는 현대 미디어들과 언론의 비열함이 느껴집니다.
이들의 노래가 위대한 이유는 일상의 생활속에 음악이 공존했다는 것에 있습니다. 미국의 경제봉쇄로 쿠바는 힘든 시간을 보냈습니다.

모두가 들판에 나가 수수를 베었고 가수들은 노래를 불렀으며, 피아니스트는 벌판에서 피아노를 연주하였습니다. 리더이자 작곡자인 꼼빠이 세군도는 노래에 대한 명상을 다음과 같이 합니다.

나는 노래를 작곡한게 아니예요. 꿈을 꾸는 것이지요. 음악에 대한 꿈 말입니다.

꿈에서 노래를 만든다는 그의 말은 사실이었습니다. ‘부에나비스타 소셜 클럽’ 공연 대부분의 가사들은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하고, 함께 춤을 추며, 여자의 몸이 흔들릴 때 부끄러움을 느끼고, 뜨거운 입맞춤을 당신에게 보내고, 집을 짓기 위해 모래를 구하러 바다에 가고. 모두가 이러한 일상의 모습들을 노랫말로 만든 것입니다.

쿠바 음악이 우리 귀에 익숙한 이유는 간단합니다. 가사를 몰라도 노랫가락에서 느껴지는 인간에 대한 진정성이 들려옵니다. 클래식 음악이 가사 없이도 우리의 영혼을 자극하는 것이라면 이들의 음악 또한 그러합니다.

깊어가는 가을. 온 나라를 공안정국으로 몰고 가려는 불온(?)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이 음악마저 불온한 것으로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음악에 대한 진정성을 지키려는 주변의 많은 분들과 함께 이 한편의 다큐가 위안이 되기를 빕니다.

작성자이영문(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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