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예술 활동 우리 사회의 시선은? > 문화


장애인의 예술 활동 우리 사회의 시선은?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갤러리 우리들의 눈, ‘한일 시각장애아동 미술전시회, ‘우리들의 눈’을 다녀와서

본문

    ⓒ김태현 기자 ‘예술가’가 아닌 ‘장애를 극복한 예술가’로 인식되는 현실 안타까워

갤러리 ‘우리들의 눈’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미술전시관으로 2008년 11월에 개관하여 시각장애가 있는 아동들을 대상으로 미술교육과 이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감상할 수 있는 작은 문화공간이다. 흔히들 생각할 것이다. ‘시각장애가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며, 미술작품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을까?’라고….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예술을 하고, 무엇에 감동 받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본다.

이번 전시회 ‘우리들의 눈’이란, 우리들에게 예술을 하고, 감상하는 것의 자유로움에 대해 느껴보라는 의미를 던지고 있다. 보는 것뿐만 아니라, 소리, 질감, 냄새 등 우리의 다양한 감각들을 통해 탄생된 작품들을 자연스런 나름의 방법으로 감상하고, 그 느낌들과 소통하는 또 다른 방법들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보는 전시회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나 시각장애가 있건 없건을 떠나서 모든 사람들이 작품을 만지며, 형태나 질감을 느끼는 또 다른 감상법으로 작품들과 소통할 수 있어 미술세계에 대한 새로운 느낌들을 경험하는 의미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김태현 기자     ⓒ김태현 기자 그러나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에서의 아쉬움이 많은 ‘우리들의 눈’ 갤러리

전시관을 둘러보며 점자로 제작된 팸플릿과 여러 자료들을 점자로 제작한 책들을 보며 반가웠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 반가움이 씁쓸하기도 했다. 정작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당연한 것들이 반갑게 느껴질 만큼 사회구성원으로서 대우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대한 답답함이 앞섰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아이들 작품에서 느껴지는 예술적 감각은, 그동안 우리의 선입관은 근거가 없는 것임을 보여주며, 작품마다 그 형태의 정교함이나 소재에 대한 감각 등을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아이다운 상상이나 발상에서 비롯된 작품명과 작품에 대한 설명들 또한 일상적 상황들을 재연해 주고 있어서 재미있었다.

다만 작품을 감상하는 내내 거슬렸던 것은, 작품을 올려놓은 단상의 모서리가 하나같이 날카롭게 각이 져, 시각장애인들이 감상하는 공간으로는 위험스러워 보였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서울시 종로구 삼청동 언덕 위에 위치한 ‘우리들의 눈’갤러리는 꼬불꼬불 비탈진 언덕길을 올라야 하는 난코스를 거쳐야 나타난다. 수동휠체어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 낼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거기에 전시관 정문 앞에 버티고 있는 두 개의 계단과 그 높이, 휠체어 한 대가 겨우 들어갈 것 같은 폭이 좁은 문.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시각장애인들을 위해 탄생된 문화 공간임에도 전시관 계단 앞 도로나 문 앞, 바닥에 시각장애인들이 문이나 계단이 있음을 감지할 수 있는 표시가 전혀 없었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전시관을 찾아가는 과정부터 전시관에 들어서기까지 험난한 난코스가 기다리고, 갤러리 건물의 장애인 편의시설도 미흡한 상황이며, 전시관의 환경도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 공간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국, ‘우리들의 눈’이 시각장애인들의 미술활동을 장려한다는 좋은 취지를 가지고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탄생한 것은 기쁘고도 반가운 일이지만, 정작 미술활동을 하고 감상하고자 하는 장애인들이 이곳을 자유롭게 이용하고 편안하게 드나들며 안전하게 감상할 수 있는 문화공간으로 제 역할을 하려면, 장애인의 눈높이로 다시 돌아보고 보완해나가야 할 것들이 많아 보였다.

   
현재로서는 이곳이 진정 장애인을 위한 문화공간인지, 장애가 없는 사람들을 위한 장애체험 공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문화나 예술에 근본은 다름을 인정해주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움일 것이다.

스페인에 있을 때였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버스정류장이나 길거리의 각종 안내판에는 스페인어와 함께 영어가 아닌 점자가 표시되어 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었고, 인도와 차도의 경계표시나 가로수 같은 위험물을 시각장애인들이 감지할 수 있도록 거리마다 올록볼록한 블록을 깔아놓는 것은 기본이며, 상가 문 앞에도 이러한 장치들은 자주 볼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고 저상버스도 많아, 모든 사람들이 불편함 없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이동권이야말로 장애인에 대한 모든 문제의 출발선인 듯 싶다.

이 모든 정책들은 스페인의 ‘온세’라는 시각장애인협회와 시가 운영하는데, 이 협회의 주요 사업은 장애인을 위한 문화 사업이다. 특히 ‘온세’가 가장 신경 써서 운영하는 ‘온세 박물관’은, 시각장애인들이 미술작품을 전시하고 감상하는 전시관과 체험 박물관 등이 있는 문화 공간이다. 시의 적극적인 지원과 복권 사업으로 벌어들이는 수입을 관리하는 ‘온세’에서, 풍족한 경제 수익을 문화운동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문화 사업이나 박물관 등이 운영되고 있다.

‘온세 박물관’은 건물 내의 장애인 편의시설은 물론이고, 작품명이나 작품해설을 점자와 음성으로 읽어주고 있으며, 전시실마다 점자 팸플릿이나 음성으로 안내해 주는 이어폰이 구비되어 있었다.

특히 인상에 남는 것은 작품을 진열해 놓은 방식이다.
보통의 전시 풍경과는 다르게 다양한 감각으로 감상하는 특성을 살려 작품의 소재나 형태, 감촉이 각기 다른 작품들을 한 라인에 배치해 비교 감상의 재미를 주고, 진열된 높이도 다양해 앉아서 감상하거나 서서도 감상이 가능할 수 있도록 섬세한 아이디어가 돋보였다. 이를 통해 서로의 다름을 차이로 받아들이는 획일주의가 아니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유로움 속에서 진정으로 예술을 즐기는 문화적인 정서를 엿볼 수 있었다.

우리는 왜 예술을 하고, 무엇에 감동 받는가?

그동안 우리나라 장애인들은 예술을 즐기는 자연스런 활동의 제약은 물론이고, 자유롭고 보편적인 일상에서조차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당연시 되었던 잘못된 사회의 풍토나 환경이 지대한 역할을 해왔으며, 이러한 사회 분위기는 누구나 평등하게 즐길 수 있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예술 활동에 동참하는 기회조차 장애인들은 누릴 수 없는 불평등의 대우를 받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문화적인 차별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우리들의 눈’ 전시관에 갔을 때, 마침 유치원에 다니는 유아들이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단체로 왔다. 전시된 작품을 하나하나 만져보고 서로의 느낌을 교환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을 들으며 흐뭇하게 지켜보고 있는데, 무언가 교훈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었는지 “볼 수 있다는 것에, 우리들은 감사해야 한다.” “길거리를 다닐 때나 친구들과 놀 때에도 눈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거듭 반복해서 강조하는 전시관 가이드의 모습은 안타까움을 넘어 화가 치밀었다.

그 곳은 분명히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전시관이고, 그 곳에 온 것은 다름을 존중하는 것, 작품을 감상하고 소통하는 것이 목적이었을 것이다. 선입견 없는 아이들에게 차이를 인식시키고, 우월감을 심어주려는 목적으로 이곳에 오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우리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말 한마디가 선입견 없는 아이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고 어떤 인식을 주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우려스러움이 더 컸다. 의식 없이 던진 말 한마디가 문제의 단초가 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전문 문화시설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장애인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할 만큼 골이 깊었었다는 사실을 실감하며, 이 문제들이 심각하게 다가왔다.

   
ⓒ김태현 기자
   
ⓒ김태현 기자
이쯤에서 ‘우리는 왜 예술을 하고, 무엇에 감동 받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다시 던져보게 된다. 예술행위는 내재된 자신을 표현하는 행위, 그래서 그 행위를 감상하는 이들 또한 오감으로 느낄 수 있고, 다양하고 자유로운 소통이 가능하다.

물론 예술작품에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히 있고 그 의도를 찾아내는 것도 감상법의 한 방법이지만, 감동의 지점이나 느낌에서의 정답은 없으며, 이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감상하는 이들이 자유로운 소통에서 얻어지는 감흥이면 충분한 것일 테니 말이다.

이처럼 우리가 예술 활동을 하고 예술 작품에 감동받는 것에는 장애가 있고 없음은 중요하지 않다. 삶에서 예술에 대한 열정을 표출하고 싶은 갈망이 작품 속에 승화되고, 그 열정의 자유로움과 다양성에 감동받는 것일 뿐.

이러한 인식과 함께, 모두가 예술에 대한 감동을 마음껏 즐길 수 있고 표현할 수 있는 예술문화 공간, 나아가 모든 문화공간이 서로의 다름과 다양성을 존중하고, 자유로운 소통방식을 자연스럽게 인식해야, 비로소 예술이 추구하는 가치들에 가까워지는 문화적인 성숙이 이루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나라에도 하루 속히 이러한 정서가 자연스럽게 자리 잡길 바라며, 이런 바람들로 탄생된 ‘우리들의 눈’ 갤러리가 여러 문제들과 과제를 가지고, 무겁게 첫발자국을 내딛게 됐다.

이들 전시관이나 문화공간이 운영되고, 더 확산돼 지속적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사회에 만연해 있는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변화시키는 것이 시급하고, 정부의 문화정책이나 행정 차원에서의 현실적이고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강조한다.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정서를 이루게 하고, 이끌어나가야 할 주체들은 바로 우리 모두라는 사실, 거듭해서 말하고 싶다.
작성자백수정 서울YMCA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미디어교육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인스타그램 바로가기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