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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장님, 순대국밥 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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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장면1]

<함께걸음> 기자로 채용이 확정된 후,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아래 연구소)를 방문한 적이 있어요. 인수인계를 받기 전 동료 기자님이 연구소 직원들에게 저를 소개했어요. 저의 손에 글을 적는 ‘손바닥 필담’으로 의사소통을 하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지요. 그때 제일 먼저 저에게 다가와서 저의 손에 글을 적은 뒤 악수를 청한 분이 있었습니다.

손바닥에 적은 내용 : “김강원 국장”

 

[장면2]

기자로 첫 출근한 날, 노트북에 인터넷을 연결하려는데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직원 누군가에게 물어봐야 하는데, 마침 제 자리 옆으로 국장님이 지나가시길래 얼른 붙잡고 여쭤보았지요. 국장님이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가르쳐주셨어요,

그런데 비밀번호를 잘못 가르쳐주셨습니다.

 

[장면3]

연구소 직원으로 처음 참석했던 주간회의에서, 시청각장애가 있는 저를 배려해 직원들은 이름보다는 각자의 특성을 살려서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당시 상영중이던 영화 ‘돈’처럼 연구소의 ‘돈’을 관리하는 사무국 실장님, 제 자리에 제가 앉을 수 있도록 의자를 가져다준 어떤 간사님, 유난히 눈이 큰 어떤 간사님 등 저마다 개성있게 소개를 해주셨어요. 그리고 국장님 차례.

“저는 아까 관찬씨에게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잘못 가르쳐준 김강원 국장입니다.”

 

아주 소소한 일상이죠. 하지만 위 세 번의 에피소드가 있었던 덕분에 제가 연구소 직원들 중에서 이름과 얼굴을 가장 먼저 기억할 수 있었던 분이 바로 김강원 국장님입니다. 알고보니 국장님은 저와 같은 법학 전공자이실 뿐만 아니라 축구도 좋아하시는 등 저와 관심분야가 비슷해서 정말 친하게 지낼 수 있었어요.

사실 저는 그동안 연구소에 출근하면서 남모를 고민이 한 가지 있었어요. 바로 직원들과의 ‘아침인사’입니다. 저는 일찍 출근하는 편인데, 누가 저보다 먼저 출근했는지 직원의 자리까지 직접 가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먼저 출근해있던 직원이 출근하는 저에게 아침인사를 했는데, 제가 미처 못보고 그냥 제 자리로 가버릴 수도 있죠. 또 남자직원들 중에는 안경을 쓰는 분들이 많거든요. 그 직원들이 출근하는 도중, 그러니까 걸어가는 찰나의 순간에는 제 눈에 ‘안경을 쓴 남자’들이 하나같이 비슷해 보입니다. 그래서 지금 누가 출근하고 있는지 제대로 구분을 못한채 어정쩡하게 인사를 한 적이 많았어요.

하지만 이 와중에도 국장님만큼은 확실하게 알아볼 수 있답니다. 어떻게 알 수 있는 걸까요? 국장님은 출근하시면서 늘 잠시 제 자리에 들려주신 뒤 악수를 청해주세요. 악수를 한 뒤 어제 축구해서 피곤하진 않은지, <함께걸음> 마감은 잘 마무리했는지 등 덕담도 건네 주시고 제 어깨를 한번 두드려주신 뒤 자리로 가십니다. 정말 고마운 분이죠. 아마도 2019년에 제가 악수를 가장 많이 한 분이 바로 김강원 국장님이 아닐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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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함께걸음> 기자로 일하며, 국장님을 통해 정말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요즘 장애계에서 핫이슈이기도 한 UN CRPD에서 활동하기도 하시는 국장님, CRPD에서 ‘소수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많다고 합니다. ‘시청각장애’도 소수장애이기에 국장님이 그만큼 관심을 가져주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겠죠. 그 외에도 장애와 관련된 법, 장애인 활동지원서비스 등 제가 기사를 준비하거나 궁금한 점에 대해 아낌없는 조언을 해주고 계십니다.

돌이켜보면 해야하는 일도 많고 외근도 잦으니까 국장님과 함께한 시간이 손에 꼽을 만큼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하지만 국장님은 일찍 출근하면 저에게 모닝커피 한잔 하자고 하시며 회의실에 노트북과 키보드를 갖다놓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주십니다. 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정말 배우고 생각해볼 게 많은 것 같아요.

작년에 한참 남자직원들끼리 풋살을 한 적이 있어요. 제가 페널티킥을 얻었는데, 국장님이 골키퍼였어요. 그런데 풋살구장이라서 골대가 정말 작거든요. 국장님이 거의 드러눕다시피해서 골대를 온몸으로 막아버린 덕분에, 골을 성공시키지 못한 아픈(?) 기억이 있어요. 얼른 날씨가 따뜻해져서 같이 운동하고 싶습니다. 같이 일하는 동료끼리 몸을 부딪히며 땀을 흘리고 운동할 수 있다는 건 참 좋은 일 같아요.

언젠가 국장님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했던 이야기가 있습니다. 꿈을 크게 갖고 언젠가 박사과정은 해외 유학으로 같이 가자고요. 크게 갖기엔 진짜 꿈같은 이야기지만, 그런 기회가 오면 꼭 잡을 수 있도록 열심히 공부하고 배우고 싶네요. 그러기 위해 국장님과 연구소에서 든든한 동지가 되고 싶습니다.

 

(*이 글 읽고 국장님이 제가 좋아하는 순대국밥 먹으러 가자고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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