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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의 주인은 바로 당신입니다

<불량 판결문> 저자 최정규 변호사 인터뷰

본문

 
 
“패소한 이유가 나와 있지 않아요.” 
“중요한 단어에 오타가 있어요.”
“이유 같지 않은 이유가 버젓이 기록돼 있어요.”
“기존 판례를 그냥 복사 붙여넣기 한 거 아닌가요?” 
“권고 기준보다 낮은 양형을 제시하네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한번쯤은, 아니 어쩌면 정말 많이 이런 말을 듣거나 경험했을 것이다. 극악무도한 범죄사건이 재판에 넘겨진 경우, 국민들은 피고인이 중죄를 지은 만큼 그에 맞는 처벌을 기대한다. 그러나 법원에서 내린 판결은 우리의 예상을 전혀 맞추지 못한 채 국민들을 더욱 분노하게 한다. 적어도 위의 다섯 문장 중 어느 하나에 해당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런 ‘불량 판결문’은 어디에서 A/S를 받아야 할까?
이렇게 상식에 맞지 않는 법과 싸우며, 부조리하고 불공정한 법정을 최정규 원곡법률사무소 변호사(경기장애 우권익문제연구소 소장)가 <불량 판결문>을 통해 고발했다. 최 변호사를 직접 만나 책에 대한 소개와 함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장애계 이슈와 문제에 대한 진솔한 생각을 들어봤다.
 
 
책을 쓰게 된 계기
그동안 변호사로 일하면서 왜 법원을 이용하는 게 불편한지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2012년 변호사 사무소를 개업한 이후로 그 질문에 대한 고민을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글을 쓰다 보니까 글이 한 900개 정도 되었는데, 그게 다 모아져 있더라고요. 그걸 계기로 2019년에 한 언론사에서 불량판결문은 어떻게 A/S를 받아야 되는지에 대한 주제로 칼럼을 기고하게 되었고, 작년에는 한 출판사로부터 책으로 한번 내보자는 제안을 받게 되었습니다. 원래 제가 처음부터 책을 쓰려고 했던 이야기들은 아닌데, 이런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지는 되게 오래된 거 같아요.

책에 어떤 이야기를 담았는지?
검찰 개혁과 사법 개혁과 같은 이야기가 중요한 이슈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라 크게 상관이 없는 내용인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에는 소위 말하는 거대 담론을 담는 게 아니라 시민들이 일상 생활에서 소소하게 접할 수 있고,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특히 신안 염전노예사건이 책을 쓰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고 하는데. 
변호사라는 직업 특성상 많은 사건을 하다 보니까 어떤 법원의 판결에 대해 긴 호흡을 가지고 모니터링한다는 게 쉽지는 않아요. 신안 염전노예사건은 피해당사자의 소송을 7년째 저희가 진행을 하면서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법원의 판결들을 모니터링하게 됐어요. 이 과정을 겪으면서 어떤 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장애인이나 외국인 근로자처럼 사회적 약자들이 제기한 소송에 너무 성의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신안 염전노예사건은 저에게 사법부의 그런 민낯을 적나라하게 볼 수 있었던 시간이 되었어요. 

중한 범죄라서 분명히 중형에 선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시민들이 이해할 수 없는 판결이 나오는 경우가 너무 많은데. 
지금 대한민국 판사가 3천 명인데, 어떤 판사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지고 판결의 결과가 예측이 가능하지 않을 정도의 수준이라면 되게 심각한 거잖아요. 그런데 판사들은 기본적으로 다른 판례문을 참고하잖아요. 어떤 사건을 담당하는 데 있어서 비슷한 사건이 이미 있었는지를 보게 되고 기존의 피해자 특히 사회적 약자가 주장하는 것들이 반영되지 않은 판결문들이 많이 쌓여 있다 보니 뭔가 새로운 논리로 판결문을 쓰는 게 판사들에게도 되게 어려운 일이 되죠. 그래서 이전 판결처럼 쓰기는 되게 쉽지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소송은 시간과 노력이 굉장히 많이 필요한 상황인데 그게 제대로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책을 통해서 주장하는 것도 양형과 같은 기준을 판사가 마음대로 정할 게 아니라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합니다.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어야 된다는 건, 구체적으로 예를 들면 어떤 건지?
최근에 많이 문제 삼는 ‘위자료’가 있죠. 내가 어떤 피해를 당했는데 그에 따른 정신적 손해를 배상해 달라는 건데, 재판부에 뚜렷한 기준이 없다 보니까 되게 들쭉날쭉하고 저희가 생각할 때 터무니 없는 금액이 선고되기도 해요. 모든 것을 유형화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민들의 의견을 충분히 낼 수 있는 게 중요합니다. 또 산재로 사망해서 피해를 입었는데, 그에 대한 위자료 기준이 1억 원밖에 안 되거든요. 이 1억 원이라는 돈이 사람의 목숨이나 생명을 대변할 수는 없잖아요. 이런 기준을 정하는 데에 있어서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도록 해 보자라는 내용을 책에도 담았습니다. 그럼 판사 마음대로 판결을 선고할 게 아니라, 시민들이 의견을 낼 수 있고 그 의견이 100% 반영되지 않더라도 그런 피드백이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 하는 생각입니다.
 
 
 
그동안 다양한 사건을 담당하면서 ‘잘 나온’ 판결도 있었는지?
잘 나온 판결도 있습니다. 신안 염전노예 국가배상 청구소송의 경우 1심에서는 1명만 승소했는데, 항소심에서는 1심에서 패소했던 3명이 추가로 인정받았어요. 그 항소심 판결이 좋은 예고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진행했던 사업에서 디딤돌 판결로도 선정을 한 적 있습니다. 
 
요즘 장애인을 대상으로 하는 폭행과 학대사건은 염전노예사건만큼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안타까운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사건이 생기면 언론에서는 정작 중요한 사건에 대한 초점보다 선정적·자극적으로 보도를 하는 데에만 너무 치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건이 터졌을 때는 이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기사를 쏟아내지만, 정말 그 사건에서 가해자가 어떤 처벌을 받고 피해자가 어떻게 배상을 받는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재발방지를 위해 어떤 대책을 만드는지 등을 긴 호흡으로 취재와 보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 사건을 통해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고 사건의 이전과 이후의 상황이 좀 달라질 수 있을 텐데, 그냥 일회성으로 다루면서 시민들의 공분이나 분노를 그냥 손쉽게 소비시키는 게 아닌가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하는지?
사건에 대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모니터링이 부족한 게 아쉽습니다. 신안 염전노예사건의 경우 피해자들이 지금 어떻게 살고 있는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전혀 모니터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게 저는 충격이거든요. 사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나 시민단체에서 모니터링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있잖아요. 피해자들이 또 다른 피해에 노출되지 않도록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철저하게 모니터링을 해야 하는데, 이런 게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 가슴이 아픕니다. 결국 이런 경우 제2의, 제3의 학대 피해자로 등장하게 됩니다. 이러한 악순환의 연결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폭행 및 학대사건이 계속해서 터질 때마다 어떤 생각이 드는지.
한 마디로 무력감을 느낍니다. 우리나라는 항상 몇 년 주기로 비슷한 사건이 계속 반복되는 것 같아요. 신안 염전노예사건만 해도 4~5년 동안 시간과 노력을 투여해서 국가배상 승소판결이라는 결과를 이끌어냈지만, 이 사건으로 피해자들이 손해배상을 받은 것 이상으로 우리 사회는 어떤 변화를 일으켰는가 돌아보게 되는데, 되게 답답한 것 같아요. 계속해서 폭행 및 학대 사건이 반복 재생산되고 있기 때문이죠. 그런 연결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에 대해서는 저에게도 큰 숙제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불량 판결문>을 추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법원을 가다 보면 변호사를 선임해서 사건을 진행하는 분이 있고, 경제적인 여유가 없어서 혼자 사건을 진행하는 분도 계세요. 후자의 경우는 아무래도 법을 잘 모르시고 판사 앞에서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들이 낯설고 어색하고 그렇거든요. 그런 분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법원의 주인은 판사가 아니라 시민인 우리가 주인이라는 거죠. 왜냐하면 시민이 소송을 제기만 하고 법원을 이용하지 않으면 법원은 문을 닫아야 되잖아요. 시민이 이용해야 존재하는 게 법정이기 때문에 시민들이 당당하게 본인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판사로 하여금 사건을 더 열심히 들여다보고 좋은 판결문을 내게끔 하는 계기가 이 책으로 인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불량 판결문>을 통해 대한민국 사회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
책에도 담았지만 시민들을 위한 법원 개혁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 하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습니다. 전 국민의 대다수가 사법부를 불신하고 있잖아요. 어떤 분쟁에 있어서 그 갈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재판을 받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법원의 재판을 신뢰하지 못하니까 이 사회는 굉장히 혼란에 빠질 위험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히 어떤 재판이나 법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의 갈등을 제대로 해결할 수 있는 데에 법원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법원 개혁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
시민들이 법정에서 겪는 소소한 문제부터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고 보거든요. 예를 들어 소액사건의 경우 청구금액이 3천만 원이 넘지 않는다는 이유로, 즉 금액이 크지 않다는 이유로 판결 이유가 기재되지 않은 판결을 받는 경우, 재판정에서 판사를 비롯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녹음이나 속기를 통해 기록되지 않고 그냥 짧게만 요약되는 경우처럼 시민들이 겪는 문제들부터 하나씩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재판 과정은 녹음이나 속기가 이루어지지 않나요?
증인신문이 있는 재판이나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재판은 하고 있지만, 녹음이나 속기를 신청하지 않는 한 하지 않아요. 당사자가 신청을 해야 되기 때문에 되게 번거롭거든요. 왜냐하면 신청을 하면 판사가 불편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지금까지 안 하다가 왜 하냐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요. 그렇지만 농담이나 사담을 하는 자리가 아닌 공식적인 장소이기 때문에 재판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낱낱이 기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의무적으로 녹음과 속기가 되어야 한다는 법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을까 문제 제기를 하게 됩니다. 

변호사님의 꿈이 있다면?
제가 <불량 판결문>으로 책을 썼는데, <명품 판결문>이라고 하는 제목의 후속작을 꼭 내고 싶습니다. 그래서 시민들에게 불량 판결도 존재했지만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좋은 판결도 생산해 내고 있다는 것도 알려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런데 시민들이 많이 안 읽을 것 같아요. <불량 판결문>은 많이들 읽으시면서 분노해 주셨는데, <명품 판결문>이라는 책을 내면 사람들이 많이 사서 읽을지 고민이 좀 됩니다(웃음).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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