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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 정의로운 도둑이 될라고 그라나?”

박 기자의 함께걸음-19

본문

 
 
저는 어렸을 때 ‘도둑’이었던 적이 있어요. 이 도둑질 때문에 집에서도 쫓겨난 적 있었지요. 과연 무엇을 훔쳤길래 가출(?)까지 해야 했을까요.
 
저는 초등학교를 다닐 때 정말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고 싶었어요. 또래 초등학생들이 그렇듯이 쉬는 시간이면 같이 운동장에서 뛰어놀고 숨바꼭질이든 ‘얼음잼(이었나?)’ 게임도 하고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도 하고…. 그냥 애들이 하는 건 뭐든 다 같이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당시 제가 다녔던 학교에서는 제가 가지고 있는 시청각장애에 대해 어떻게 지원(편의제공)을 해야 하는지 몰랐어요. 물론 그땐 저도 몰랐으니까 어떻게 해달라고 요청치도 않았지요. 선생님들도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모르니까, 저를 그냥 ‘배려, 소외, 배제’의 대상 정도로만 생각했던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선생님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니, 아이들도 모르는 건 마찬가지겠죠.
 
그래서 저는 학교에서 늘 혼자였고, 쉬는 시간에는 늘 책을 읽었어요. 돌이켜보면 당시 풍부했던 독서가 지금 제가 <함께걸음> 기자로 활동하며 기사를 쓰는 데에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렇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저도 친구들과 어울리고 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했어요. 그래서 제가 생각해냈던 방법이 바로 ‘사주기’였지요. 단어 그대로 아이들에게 뭐든 사주는 겁니다. 맛있는 거 사주기. 그런데 아이들에게 뭔가를 사주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게 있죠? 바로 ‘돈’입니다.
 
제가 초등학생 때 제 방 돼지저금통에 꾸준히 저금을 했어요. 부모님이나 어른들한테서 용돈이든 어떤 명목으로든 돈을 받으면 늘 거기에 넣었었지요. 동전만 넣은 게 아니라 지폐도 넣었어요. 저는 아이들에게 맛있는 걸 사주기 위해 몰래 그 돼지저금통에서 지폐를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습니다. 도둑질의 시작이었죠.
 
처음에는 천 원짜리 몇 장 정도로 시작했는데, 나중에는 만 원짜리로까지 치솟기 시작했어요. 바늘 도둑 소도둑 된다고 하죠. 제가 초등학교를 다닐 당시 초등학생에게 만 원짜리가 엄청 큰 금액이었거든요. 당시 한 달 용돈이 3천 원이라도 충분할 정도였으니, 만 원이면 엄청난 금액이죠. 그걸로 아이들에게 맛있는 것도 사주고, 학교를 마치고 전자오락실에 가서 신나게 오락기를 두드린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날도 몰래 돼지저금통에서 돈을 꺼내려는데 아, 지폐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제가 몽땅 써버린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할까 고민을 하다가, 지폐 대신 가득 쌓여있던 동전을 한 아름 꺼내서 책가방 안주머니에 꼭꼭 숨겨서 넣어두었습니다.
 
그리고 저녁에 제가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천사소녀 네티’를 보고 있는데, 엄마가 제 방으로 부르는 거예요. 제 방을 청소하고 계셨던 것 같은데, 책가방이 있는 부분을 청소기로 청소하기 위해 책가방을 들었다가 내려놓으니까 이상하게 생각하신 거예요. 가방도 무겁고, 가방을 내려놓으니까 금속성 소리가 났으니까요.
 
결국 다 들켜버렸고 엄청나게 혼이 났습니다. 그날 입었던 옷을 빨기 위해 세탁기 안에 넣었던 것을 엄마가 가져와서 저에게 던집니다. 그걸 입고 나가라고 했어요. 쫓겨난 거죠. 그 당시에는 제가 그래도 조금 들을 수 있었는데, ‘천사소녀 네티’에서 천사소녀로 변신할 때 하는 주문을 인용해서 엄마가 저에게 말했어요.
 
“니 정의로운 도둑이 될라고 그라나?”
 
‘천사소녀 네티’는 주인공이 천사소녀로 변신을 할 때 “주님, 정의로운 도둑이 되는 걸 허락해주세요.”라고 주문을 외우거든요. 그렇게 변신해서 억울하게 무엇을 뺏긴 사람들의 물건을 되찾아주곤 했어요. 엄마가 그걸 인용했던 거죠.
 
집에서 쫓겨났던 저는 어떻게 되었냐구요? 어디 못 가고 그냥 집 앞에 쪼그려 앉아서 반성하고 있었지요. 나중에 엄마가 다시 들어오라고 해서 그렇게 해프닝이 마무리 되었지만, 그 뒤로 저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던 것 같아요.
 
돈을 정말 좋아하지 않게 된 거죠.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던 돈의 유익함을 느꼈지만, 그에 못지않게 도둑질이라는 나쁜 짓도 하게 되었으니까요. 대신 오늘 저에게 만 원밖에 없고, 그래서 당장 내일 먹고 살아갈 돈이 없더라도 누군가에게 아낌없이 대접하는 마인드는 그대로인 것 같아요.
 
돈을 좋아하지 않고 아낌없이 대접한다고 해서 마구마구 쓰는 건 아니고요. 저금도 정말 열심히 합니다. 시청각장애로 인해 정보접근이 어렵고 의사소통이 쉽지 않으니 혼자 은행을 이용하는 대신 저만의 방법으로 ‘재테크’를 하면서 꾸준히 저금하고 있습니다. 어떤 재테크인지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우연히 오만 원짜리 지폐 사진을 보니까 어릴 때 추억이 생각나서 써본 글입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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