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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 비장애인이 된다는 것

박 기자의 함께걸음-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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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풍자’에서 아빙(양조위)는 시각장애인 피아노 조율사로 기적과도 같은 청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코드네임 200’ 쉐닝(저우쉰)의 눈에 들어 반란군의 주파수를 듣고 암호를 해독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뛰어난 청력으로 인해 적의 주파수를 모두 정확하게 들어내고 암호를 해독하면서 큰 공을 세우는 아빙. 덕분에 수술을 통해 앞을 볼 수 있게 되고 결혼까지 하게 되어 행복한 날을 보내게 됩니다.
 
아빙은 그 뒤로도 적의 주파수를 감청하는 일을 계속하지만, 그가 단 한 번 잘못 해독한 암호로 인해 쉐닝이 적의 함정에 빠지게 되어 목숨을 잃는 비극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책하고 충격에 빠졌던 아빙은 자신의 눈을 스스로 손상시켜 다시 시각장애인이 됩니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청력의 감각이 예전같지 않고 둔해졌다는 판단 때문이죠. 그래서 다시 청력에 의존하여 적의 주파수를 감청하고 암호를 해독하지만, 죽은 쉐닝이 다시 돌아오지는 못합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아빙이 비장애인이 되었다가 다시 장애인으로 되는 결정을 내린 게 참 인상적으로 다가왔어요. 장애인이라면 한번쯤 꿈꿔보는 비장애인으로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되었을 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인해 다시 장애인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자신의 실수가 이유일 수도 있지만, 대사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각장애인일 때 뛰어났던 감각(청력)이 비장애인이 되면서 장애인일 때만큼 예민하지 못하고 무뎌지게 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꿈에서, 또는 상상을 통해서 비시청각장애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어떻게 살아가게 될까 생각해본 적이 많습니다. 지금보다 잘 보이게 되고 잘 들리게 된다면 저의 삶은 어떻게 달라지게 되는 걸까요?
 
시력이 좋아지만 면허를 따서 자동차 운전을 하게 될 수도 있고, 들을 수 있게 된다면 가족을 비롯해 목소리가 궁금한 사람들과 마음껏 통화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또 대학원 수업시간에도, 회사 주간회의시간에도, 취재로 누군가 인터뷰를 할 때도 문자통역을 받지 않아도 되겠죠. 그냥 귀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자연스럽게 들을 것 같아요.
 
악보의 계이름을 따로 큰 글자로 적지 않아도 되고, 스마트폰의 어플을 통해 음정을 조율하지 않아도 되니까 스스로 첼로를 연주하면서 어디가 잘못 되었는지, 어느 음정을 잘못 짚었는지, 어느 줄을 잘못 건드렸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또 20년 넘게 사용해왔던 저의 주 의사소통 방법인 ‘손바닥 필담’도 더 이상 필요없을지도 모르겠네요. 오로지 ‘말’을 통해 대화가 가능해질 테니까요. 말을 통해서 대화가 진행되면 손바닥에 글을 적거나 수어, 또는 문자메시지로 대화하던 때보다 대화의 시간이 훨씬 줄어들 것 같아요.
 
정말 말그대로 너무 편해질 것만 같은 삶의 모습입니다. 하지만 왠지 지금의 박 기자처럼 1분 1초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치열하게 살아가지는 못할 것 같아요. 작은 것 하나에도 소소한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던 삶의 모습이, 비시청각장애인이 되면 뭔가에 쫒기듯 빠르게, 급하게 흘러갈 것 같아요.
 
또 한편으로는 비장애인으로 태어났어도 장애인으로 살아온 시간이 20년도 더 넘기 때문에, 이 삶에 너무 익숙해진 것 같아요. 만약 의학이 정말 발전하거나 과학기술의 발달로 시청각장애를 커버해줄 수 있는 보조기기가 등장해서 비시청각장애인이 될 수 있게 되더라도, 지금의 이 삶을 계속 선택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비시청각장애인, 그러니까 비장애인이 된다면 거기의 삶에 또 적응을 해야 할텐데, 솔직히 잘 적응해낼 자신이 없네요.
 
그래서 다시 시각장애인으로 되기 위해 자신의 눈을 손상시켰던 아빙의 행동이 저는 공감이 되는 것 같아요. 자신의 익숙하고도 편했던 삶의 패턴, 그리고 감각을 유지하고 되찾고자 하는 그 의지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성자박관찬 기자  p306kc@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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