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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베리, 만델링 그리고 장애인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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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아주 흥미로운 세 가지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사회복지학과 학생들을 지도하고, 발달장애인협회 협회장을 맡고 있으며 커피와 관련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찌 보면 세 가지가 독립적인 개체로 보일 수 있으나 늘 세 가지를 융합한 형태의 일을 구상하고 있고 그 형태가 조금씩 구체화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커피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할까 합니다. 거창하진 않지만 필자는 원두 로스팅(Roasting)과 바리스타 자격과정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10여 년 전 활동지원사로 일할 당시 커피를 배우고 싶어 하는 지체장애인 덕에 커피에 입문한 후 지금까지 ‘커피와 함께 하는 가슴 뛰는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 지체장애인은 어떻게 되었냐고요? 열심히 배워 놓고선 ‘믹스커피’의 유혹을 떨쳐 버리지 못해 결국 오던 길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하하하. 
그렇다고 해서 제가 믹스커피와 이별한 건 아닙니다. 마시는 양이 현저히 줄긴 했어도 여전히 믹스커피 없는 세상에서 살아갈 자신은 없습니다. 칼럼을 쓰고 있는 지금도 제 앞엔 믹스 두 개를 뜯어 젓가락으로 잘 저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머그컵이 놓여있습니다. 하루의 대부분을 커피와 함께하다 보니 자연스레 세계 각처의 커피를 접할 기회가 많은데요. 오늘은 그중에서 딱 두 가지 커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피베리(Peaberry)
피베리는 커피의 명칭은 아니고 형태에 따른 분류입니다. 보통 커피체리 안에는 두 개의 씨앗이 서로 마주 보고 있고 그 맞닿은 부분은 평평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통의 생두를 ‘플랫 빈(flat bean)’이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간혹 체리 안에 단 하나의 씨앗이 들어있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피베리(peaberry)’라 부릅니다. 피베리가 생기는 주요 원인을 유전적 결함이나 불안전한 수정, 환경적 요인에서 찾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고 모양이 상이해 결점두로 낙인찍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피베리에 대한 인식에 변화가 생기게 되었는데요. 결점두가 아닌 생두의 또 다른 형태로 인식하게 되었고, 오히려 두 개의 생두가 나누어 받아야 할 성분들을 홀로 흡수해 맛, 밀도, 향 등이 더 뛰어날 것이란 추측에 고가에 거래되기도 합니다. 물론 이러한 추측들이 100% 정확하다 확신할 순 없습니다. 연구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건 요즘엔 피베리를 결점두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것과 필자 역시 피베리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기름이 살짝 배어 나올 정도로 볶은 탄자니아 피베리의 향과 맛을 너무 사랑합니다.
 
인도네시아 만델링(Mandheling)
흔히들 커피의 맛을 신맛, 단맛, 쓴맛, 짠맛 그리고 산미로 표현합니다. 기호식품이다 보니 특정한 맛이 ‘좋다’라고 단정 지어 표현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상큼한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에겐 고가의 쓴 커피가 담뱃재처럼 느껴질 것이고, 쓰고 진한 맛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상큼한 커피가 온통 인상을 쓰며 삼키기에도 부담스러운 맛일 테니까요. 커피 애호가인 필자는 사실 모든 커피를 좋아합니다. 신맛은 신맛대로 탄 맛은 탄 맛대로 쓴맛은 쓴맛대로 그것이 이 커피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맛일 경우 (일부러 태우거나 덜 볶인 경우는 제외) 어떤 맛이든 즐겁게 음미합니다. 그중 딱 이 시기에 즐겨 마시는 커피가 있습니다. 바로 인도네시아 만델링입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만델링은 묵직하고 진하며 구수하고 쓴맛이 참 조화로운 커피입니다. 커피를 처음 접하시는 분들껜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으나 일단 그 맛에 매료되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커피입니다. 무더운 여름엔 시원한 아이스로 요즘 같은 간절기엔 따뜻하게 해서 드시면 하루가 온통 행복해집니다. 하하하.

 
만델링 이야기를 꺼내든 이유는 맛도 맛이지만 커피 볶는 로스터 입장에서 ‘어떻게 저런 생두에서 이런 맛이 나지?’라는 경이로움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생두는 때깔도 좋고 크기도 적당하고 한눈에 봐도 오목조목 예쁘게 생겼습니다. 그러나 만델링 생두를 처음 본 사람은 누구나 ‘헐~’ 이런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결점두 100%의 어느 하나 제대로 쓸 수 있는 생두가 없다 싶을 정도니까요. 인도네시아의 독특한 기후에서 오는 건조방식 때문에 생두 모양은 어그러지고 색은 누리끼리, 향도 무슨 발효된 된장 같은 하여간 진짜 볶아도 맛없게 생긴 커피가 바로 만델링입니다. 그러나 일단 볶으면 상황은 완전 달라집니다. 동화 속에 나오는 ‘개구리 왕자’입니다. 개구린 줄 알았는데 던지고 보니 왕자입니다. 버리는 콩인 줄 알았는데 볶아보니 ‘대박’입니다. 그 구수함과 묵직함, 은근히 기분 좋은 흙 맛 같은 쓴맛. 아~ 만델링은 사랑입니다. 하하하.
 
오랫동안 커피와 사회복지 관련 일을 하면서 느낀 점은 커피와 장애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접근했을 때의 느낌이 너무도 유사하다는 것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장애인을 마치 피베리와 볶기 전의 만델링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알지 못하고 접근하니 볶은 후의 맛을 볼 기회조차 없습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피베리를 결점두로 취급하고 볼품없는 만델링을 저급으로 치부한다면 어떨까요? 우린 아마도 이 두 커피가 주는 미치도록 매력적인 맛을 평생 맛보지 못하고 눈을 감아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과 마주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정말 다행스럽게도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모습과 맛은 언제나 비례관계가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선견자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쩌면 저도 피베리와 만델링을 쓸모없는 저급 커피로 치부해 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나태주 시인이 쓴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란 유명한 시가 있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겉만 보면 속을 모릅니다. 센 불로 급하고 빠르게 커피를 볶으면 겉은 잘 익은 것 같아도 속은 익지 않아 텁텁해집니다.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만 보고 급하게 판단해 버리면 그 속에 있는 ‘진짜’를 발견할 수 없습니다. 장애, 비장애를 떠나 사람을 볼 때 외모가 아닌 자세히, 천천히 중심을 볼 줄 아는 사회가 되면 참 좋겠단 생각을 오늘도 만델링을 볶으면서 해 봅니다.^^
작성자제지훈/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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