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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의 독립은 일상에서 시작된다

여기는 스위스

본문

국가 보조성과 개인의 자립
스위스는 유럽 정중앙에 있습니다. 어디에나 펼쳐진 대자연과 평화로운 중립국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가 온갖 풍파를 겪은 20세기에 전쟁을 겪지 않고 조용히 나라를 키워서 정치나 사회 전반이 매우 안정적입니다. 덕분에 한 가지 정책이 오랜 시간을 두고 시행착오와 수정을 겪으면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도 매우 탄탄합니다. 지리적으로 유럽연합 정중앙에 있으면서 연합에 가입하지도 않았고 통화도 완전히 다릅니다. 그래서 주변 국가들의 통화 위기 때마다 조금씩 그 풍파를 비껴갔습니다. 이런 이유로 스위스를 복지국가로 여기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그 안정된 사회 체계의 이면에는 다른 모습이 숨어있습니다. 스페인 독감과 기근에 따른 사회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백 년 전에 제정한 사회보장법이 아직도 살아 숨쉬고 있습니다. 사회문제에 대응하는 방법이 아직 전통적인 울타리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스위스는 헌법에서부터 ‘국가 체계의 보조성’과 ‘개인의 자립’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개인의 삶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며, 국방이나 무역, 사회보장 체계 이외에는 전국에 동일하게 적용하는 연방법은 많이 없습니다. 교육, 의료, 생계 보조, 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칸톤마다 각자의 법을 제정하고 실행합니다. (*칸톤은 한국의 ‘도’에 해당)
 
일상의 독립성 교육
개인의 자립에 대한 이해는 교육 환경에서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장애 아동의 교육 목표 또한 자립적인 생활 습관입니다. 발달 정도에 따라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도움 없이 해결하도록 안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교육의 중요한 요소입니다. 장애인 학교에서 일주일에 한번씩 스스로 점심을 요리해서 먹고 치우는 일정을 가지는 것도 그런 교육 목표의 일환입니다. 성인으로서 독립했을 때 갖추고 있어야 하는 기본 습관입니다. 교직원의 임무는 학생과 대화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스스로 관심거리와 문제 해결법을 찾도록 안내하는 역할입니다. 등교해서 실내화를 갈아 신는 데 십 분이 걸려도 학생이 직접 할 수 있도록 믿고 기다립니다.
이런 교육 방식은 가정 교육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칸톤 취리히가 개설한 0~4세 가정 보육 안내 사이트에도 나오듯이, 자녀가 가정에서부터 집안일에 참여하도록 장려합니다. 어린아이들이 집이라는 생활 공간에서부터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는 과정을 통해서 자율성, 문제 해결 능력, 성취감, 친밀한 가족 관계를 경험하게 되는 소중한 경험입니다. 네 살짜리 아이가 당근 껍질을 벗기고 그 옆에서 엄마가 두 살짜리 동생을 뒤에서 안은 자세로 같이 오이를 자릅니다. 집에서 요리에 참여하면서 요리법도 배우고, 가족과 대화의 기회도 늘고, 식재료에 대한 이해도 높아집니다.
 
교육과 고용 시장, 그리고 주거 독립 학교
장애인이 성인으로서 가족의 울타리나 시설을 벗어나 독립해서 살고자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연습하면서 동시에 타인과 공존하는 방법을 독립하는 과정에서 실전처럼 연습하게 됩니다. 보통 주거공동체(WG: Wohngemeinschaft)로 독립생활을 시작합니다. 주거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젊은이들이 월세를 나누어 내는 형태로 이용합니다. 친구 사이일 수도 있고, 주거공동체 공고를 보고 찾아온 낯선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방이 여러 개인 아파트에서 1인 1실을 기본으로 타인과 같이 살면서 부엌, 화장실, 거실 등 다른 공간은 함께 사용합니다. 주거공동체 형태에서는 계약서상의 거주자들끼리 상의를 통해 집안일을 정확히 분담해야 합니다. 주택 시장은 월세가 일반적이고 보증금 비율이 비교적 낮습니다. 그래서 주거공동체의 형태로 시작하는 젊은이들의 독립이 쉽습니다.
 
젊은이들의 독립이 비교적 쉬운 데에는 월세가 일반적인 주택 시장 외에도 다른 요인이 작용합니다. 개인의 자립은 일찍 시작합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부터 인문계와 실업계 중고등학교 진학이 예상되는 학생을 각각 구분해서 지도하기 시작합니다. 실업계 학교에 진학한 학생에게는 구직을 통한 경제적 독립이 점진적으로 청소년 시기부터 시작됩니다. 청소년의 60~70%가 실업계 학교에 진학해서 직업훈련 과정을 거칩니다. 대학 진학이 필요 없는 직업군입니다. 13~14살이 되면 어떤 직업을 고를지 고민하고 구직 박람회에 다닙니다. 15살이면 첫 직업훈련을 할 사업체를 직접 찾아다니며 지원서를 내고 한 주일짜리 시험 근무를 해 봅니다. 시험 근무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16살부터 3~4년짜리 첫 직업훈련을 시작합니다. 일주일에 사흘은 사업장으로 출근하고 이틀은 학교에 다니는 형태입니다. 첫 번째에서 좋은 평점을 얻어야 두 번째 직업훈련의 기회도 많아집니다. 첫 번째 직업훈련으로 정식 고용이 되기도 하지만,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두 번째 직업훈련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분야에서 처음부터 다시 직업훈련을 시작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20대 중반이면 이미 몇 년의 실무 경험과 작은 규모의 자금을 모아놓은 상태입니다. 일찍부터 수입이 있으니 대부분이 20대에 부모에게서 독립합니다. 장애인 학교도 15~16세가 되면 학교 부설 또는 관련 기관에서 요리, 목공, 청소, 건물 관리 등의 직업훈련 준비 과정과 사업장 연계를 시작합니다. 직업훈련을 시작하면 학생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지역에 있는 사업장으로 출퇴근을 할 수도 있고, 사업장 근처에 주거공동체나 장애인 거주 시설에 들어가서 생활할 수도 있습니다.
 
장애인의 경우 프로인피르미스(Pro Infirmis: 장애인 복지기관)의 주거 학교 프로그램과 같은 교육과정을 거쳐서 주거 독립을 연습합니다. 기관이 월세로 마련한 아파트를 장애인의 독립적인 주거 연습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주거 학교 자체가 주거공동체이자 독립적인 생활을 학습하고 배우는 곳입니다. 참가하는 장애인은 몇 달에서 일 년 정도 주거공동체 아파트에서 생활하고, 사회복지사가 생활 전반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정기적으로 진행합니다. 주거공동체에서 독립적인 생활을 연습한 후에 기관 소속의 다른 1인용 아파트로 옮겨서 두어 달 정도 혼자 사는 것이 가능한지, 그리고 장애인 본인도 만족하는지 검사하는 기간을 가집니다. 이 기간에 장애인이 사회복지사의 도움을 통해서 본인이 독립해서 살 공간을 찾고 계약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장애인은 고용주: 사회보장제도의 거주 독립 지원
장애인이 가족으로부터 독립해서 스스로 주거 환경을 이루고 싶지만, 일상생활에서 물리적인 도움이 필요한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상해/장애 연금의 보조 지원제(Assistenzbeitrag IV)로 생활보조인을 본인이 직접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필요한 도움이란 옷 입기, 일어서고 앉기, 요리, 식사, 설거지, 위생, 출퇴근, 식료품 구매 등의 기본 생활을 스스로 할 수 없는 경우를 말합니다. 신체장애에 따라 도움이 필요한 정도를 경미함, 중간, 심각 세 가지로 구분해서 보조 지원제의 혜택을 차등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기본 생활보조의 경우, 경미한 장애 수준은 주 20시간, 중간 수준의 도움은 주 30시간, 심각한 수준은 주 40시간까지 생활보조인을 고용할 수 있습니다. 그 외 자녀 양육, 자원봉사활동, 구직을 위한 교육 과정 출석, 직업 활동 등에 필요한 보조인을 고용하는 경우 최대 주 60시간까지, 며칠 동안 지속적인 보조가 필요 한 경우에는 최대 주 120시간까지 고용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56세 남성이 뇌졸중 후 신체 왼쪽이 영구적으로 마비되어 옷 입기와 식사 시간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기타 집안일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는 경우 경미한 장애로 구분됩니다. 이런 경우 옷 입기와 식사 시간에만 필요한 생활보조인을 하루 몇 시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생활보조인의 임금은 장애인이 받은 상해/장애 연금으로 직접 지급합니다. 장애인 본인이 고용주가 되어서 적절한 생활보조인을 고용하는 것입니다.
 
구인 사이트에 장애인 개인 보조 공고를 간간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난 공고에서는 휠체어를 탄 대학생이 아침 외출 준비와 귀가 후 일정을 도와줄 생활보조인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대학이 원격 수업을 하는 동안에는 집에서 일상을 풀타임으로 도와줄 사람을 찾고, 이후 대면 수업이 다시 시작하면 아침 2시간과 저녁 2시간 생활보조인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풀타임이라 하면 스위스 법정 근로시간인 하루 8시간 20분, 주 5일입니다. 이를 100%라고 부릅니다. 아침 2시간만 도와주는 생활보조인은 5%, 아침 2시간과 저녁 2시간을 모두 도와줄 수 있다면 하루 4시간, 그러니까 10% 근무 환경입니다. 고용주와 피고용인의 사정과 필요에 따라 5% 근무 조건으로 두 명을 고용할 수도 있고, 10% 근무 조건으로 한 명을 고용할 수도 있습니다. 퍼센트로 근무 시간과 일수를 계산하고 파트 타임 종사자의 비율이 높은 스위스 노동 시장의 특징이 여기에도 나타납니다.
 
상해/장애 연금에서 지급하는 생활보조 지원비는 시간당 33.50프랑(약 42,700원)입니다. 생활보조인이 간호, 수화 등 특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할 때는 시간당 49.80프랑(약 63,000원)이 책정되어 있습니다. 시간당 최저 임금 20프랑(약 25,000원)을 훌쩍 넘는 수준입니다. 야간 근무는 사례별 그리고 지원의 강도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박에 책정된 지원비는 최대 88.35프랑(약 11만 2,400원)입니다.
장애인이 사회보장제도의 도움으로 직접 생활보조인을 고용하도록 하는 이 보조 지원제는 장애인이 거주지부터 생활 방식, 생활보조 인력까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입니다. 기본 생활 외에도 여가, 취미, 자원봉사 등 다양한 활동까지 가능하게 함으로써 외부와의 단절된 생활을 방지하고자 합니다. 더해서 이 제도를 통해 장애인 가족이 적절한 보수 없이 돌봄의 역할을 맡음으로써 발생하는 심리적 및 경제적 부담을 덜고자 합니다. 생활보조인을 고용하는 장애인은 고용주로서, 생활보조로 고용된 사람은 피고용인의 의무와 권리가 기타 사업장과 똑같이 적용됩니다. 장애인은 생활보조의 고용 상태와 근무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서 매월 상해/장애 연금에 제출해야 합니다. 또한 피고용인의 임금은 일정 수준이 사회보험료로 공제되어 지급됩니다. 이처럼 상해/ 장애 연금의 보조 지원제는 장애인의 자립생활에 대한 욕구를 고용 창출의 기회로 만들어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장려하는 것이 기본 골자입니다.
 
보조 지원제에 대한 잡음도 많습니다. 전문 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이 생활보조인을 구한다는 공고에 지원하는 사람도 많지 않을 뿐더러, 고용주인 장애인 본인 역시 구인 광고부터 임금 명세서까지 직접 관리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부 장애인 기관에서는 보조 지원제를 이용하고자 하는 장애인에게 개별 교육이나 상담을 제공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또한 적지 않은 상담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에 자주 찾아갈 수도 없고, 현실적인 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근육위축증이 있는 한 변호사는 스스로 보조 지원제의 허점을 경험했고, 본인은 물론 다른 장애인들이 보조 지원제를 원활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앱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고용주로서 장애인이 손쉽게 구인 광고부터 세금 계산까지 처리할 수 있는 앱입니다.
보조 지원제는 가족의 부담을 덜고자 시행하는 제도이므로 가족을 생활보조인으로 고용할 수 없는 단점도 있습니다. 실제 보조 지원제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도 가족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발생하는데 그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없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사회보장법은 연방법이지만, 시행령은 각 칸톤에서 유연하게 시행할 수 있는 점을 이용하여 지역별로 가족의 도움을 보조 지원제로 보상하는 절차를 마련하고 있습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생활보조인 고용이 아닌 청소 용역 업체를 이용해서 보조금의 1/3까지 집 청소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자립은 우리 모두의 숙제
장애인 자립을 향한 다양한 분야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장애인과의 괴리는 여전합니다. 이를 보완하고자 연방정부 차원에서 장애 정책 프레임워크와 구체적 실행 방안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위스 장애 정책의 궁극적인 목적은 장애인의 자율적인 삶과 비장애인과의 공존입니다. 전국 각지의 장애인 관련 기관은 물론, 국가 기반 산업이나 시설에도 적용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합니다. 단순히 장애인 복지, 교육, 사회보장제도를 넘어서 사회 전반에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입니다. 장애인의 고립은 개인의 장애 때문이 아니라 지역사회의 물리적/구조적인 문제로 장애인의 활동 범위가 제한되는 것이라 정의합니다. 예를 들어,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에 평평한 입구나 승강기가 없는 경우, 안내서나 계약서 등이 어려운 말로 작성된 경우도 이에 해당합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정부 부처, 사회 전반의 기관, 사업체 등 다양한 조직 간에 원활한 의사소통의 필요성과 장애인에 대한 인식 증진이 강조됩니다.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본인의 강점을 찾아 일할 권리가 있고, 삶의 방식에 대해 스스로 결정할 수 있으며, 중요한 정보를 읽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불가능할 때 원인을 개인의 문제에서 찾기보다 지역사회가 함께 개선하는 노력을 들여야 합니다.
이 노력의 하나로 지역사회별 장애인 거주 자립에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보고 다른 지역과 경험을 공유하는 창구를 정기적으로 마련하도록 장려합니다. 동시에 장애인에 관련된 모든 정보를 가능한 간단한 문체로 설명하는 문서를 준비하도록 장려합니다(예시: 장애인 성교육 사이트). 더불어 장애인의 자기 결정권의 삶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많은 질문이 노인에게도 중요한 고려 사항이라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습니다. 신체 활동의 제약과 생활보조인의 필요성에서 두 분야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스위스 장애 정책에서는 이렇게 특정 인구 집단을 넘어 사회 전반에 중복되는 질문을 다양한 조직과 사회 구성원들이 함께 개선점을 찾아가고자 합니다. 
 
작성자황효빈/스위스 사회복지사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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