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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 속 성소수자의 권리

성소수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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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19일 공개적으로 트렌스젠더임을 밝힌 미국 보건부 차관 레이첼 리바인(Rachel Levine)이 미국 공중보건서비스 위원회의 제독으로 취임했다. 미국 공중보건서비스 위원회(US PHSCC)는 미국의 군 복무 조직 8개 중 하나로, 군사적 의무보다는 의료와 관련된 임무를 수행하는 기관이다. 그녀는 6천여 명 규모의 병력을 거느리고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투여 및 치료 제공을 포함한 미국의 보건 비상 상황을 총괄하는 지위에 올랐다. 이로써, 그녀는 조직의 첫 여성 단장이자 미국 역사상 최초의 트렌스젠더 4성 제독이 되었다.
 
해당 기사를 읽으니 자연스럽게 한 사람이 떠올랐다. 대한민국 국군 최초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고(故) 변희수 하사다. 변 하사는 군 복무 도중 성전환 수술을 받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해외휴가를 신청하여 타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 그는 성전환 후 군으로 복귀하여 여군으로서 군 복무를 지속하겠다는 의지를 밝혔지만, 군대에서는 그를 ‘심신장애 3급’으로 판정해 강제 전역 처분을 내렸다. 이후, 변 하사는 육군 참모총장을 상대로 복직 소송을 냈지만, 첫 재판이 열리기 전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세상은 변해가고 있는데, 같은 시대를 살면서도 한국의 성소수자들은 여전한 차별의 현실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미국의 사례도 전적으로 환영만 받았던 것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정치적 쇼일 뿐이라며 그녀의 능력과 자질을 깎아내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트렌스젠더의 군대 입대를 금지하겠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한 바가 있다. 그는 성 수술과 관련된 성소수자의 자기결정권, 직업선택의 자유, 행복추구권,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한 침해보다 트렌스젠더 군인이 야기할 천문학적인 군 관리 비용을 더 우려했다.
 
그들이 어느 사회에 속해있는지, 또 그 사회가 그들의 개별 정체성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따라서 그들의 권리는 부가적인 것으로 치부된다. 그렇기에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한국은 어느 지점에 있을까?
요즘 젊은 세대는 친한 지인들과의 대화에서 종교, 정치 이야기만큼이나 금기시되는 대화 주제가 있다. 바로 ‘젠더’다. 젠더는 그 자체로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통용되는 젠더는 ‘갈등’의 이미지가 강하다. 오랜 시간 남성에게 종속되어 사회에서 부차적인 것으로 여겨지던 여성들의 지위가 달라졌다. 여성들은 바람직하지 않은 사회에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며 사회의 균열을 일으켰다. 인류 역사상 여성은 대부분의 시간 동안 차별받는 집단이었다. 여성은 여성이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받았던 차별과 불편이 있다.
 
반면 남성도 남성이기 때문에 당연히 감당해야만 했던 사회적 무게가 있었다. 일부 남성들은 그동안 누려오던 가부장제의 혜택이 오늘날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남성들의 사회적 책임과 의무는 남아 있으므로 여성의 권리가 신장될수록 남성들이 받게 되는 역차별 문제를 우려한다. 이러한 문제에 있어서 누구의 말이 맞고 맞지 않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당사자가 아닌 이상 개인이 겪는 차별에 대해 제대로 알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한 차별이 서로에게 있었다는 그 사실만 유효할 뿐이다. 그런데 남녀는 서로가 짊어지고 있는 사회적 짐에 대해 서로 자신이 더욱더 피해자라고 주장하며 대화 대신 싸움을 택했다. 오히려 이런 싸움을 더욱 부추기고 이득을 챙기는 일부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에 대해 말을 꺼내는 순간 의도치 않게 여성은 페미니스트로, 남성은 속칭 한남이라는 프레임 안에 갇혀 버린다. 애석하게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자신이 받는 차별과 불편에 대해 솔직하게 꺼내놓지 못하는 그런 시대에 살고 있다. 남성은 남성끼리, 여성은 여성끼리 자신들의 집단에 대해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가 장기고착화되면 여성과 남성의 집단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성소수자 등의 처우에도 큰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기성세대가 지역과 이념의 갈등으로 충돌했다면, 젊은 세대는 자신의 정체성을 앞세워 서로 충돌한다. 정체성은 자기 자신이 한 개인을 받아들이는 방식이다. 그러나 현 세대를 되돌아보면, 사회가 한 개인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에 따라 개인의 정체성이 맞춰지고 있다. 여자는 여자처럼, 남자는 남자처럼 행동해야 그에 맞는 권리를 누릴 수 있다. 평등법, 차별금지법 등 만인의 권리를 동등하게 보장하기 위한 입법이 추진되고 있으나 구분이 모호한 젠더를 모두 포함하는 일은 법적으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젠더는 생물학적 요인보다 남성 또는 여성의 사회적 역할과 정치, 문화, 경제, 사회 전반에 나타나는 성 정체성과 성적 지향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이다. 즉, 젠더는 만들어진 여성과 남성에 대한 논의로써 성을 선천적인 것이 아닌 학습되는 성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성 정체성이라는 것은 사회적 흐름이나 생애주기 전반에 걸쳐 변화될 수 있다. 젠더는 어떤 사회나 문화 내에서도 매우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또한 누군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과정에서 권리의 충돌도 발생한다.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과 현재 처한 상황에 따라 권리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난다. 따라서 그들이 원하는 권리의 내용은 매우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 예를 들어, 근로조건의 부당함은 여성보다 남성이 더욱 민감하고 안전에 대한 권리는 여성들이 더 민감하다. 성소수자를 포함한 사회적 약자에게는 차별받지 않고 정부의 보호를 받을 권리가 더욱 중요할 수 있다.
 
성에 대해 더 개방적인 미국 사회
미국은 한국보다 훨씬 성에 대해 개방되어 있다. 필자가 미국에 오자마자 간접적으로 이를 느꼈던 사례가 있다. 한국 학생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학교에서 마련해 준 시설에 자가격리를 해야 했다. 한 건물 전체를 자가격리 시설로 제공했으며, 각 방에는 2명씩 배정받았다. 한 한국인 남학생은 생전 처음 보는 외국인 여성과 같은 방을 배정받았다. 그는 당황스러움에 바로 관리실에 문의하였다. 미국에서도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남은 빈방이 없던 것도, 여자 혼자 배정받은 방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말이다. 이런 일이 한국에서 일어났다면, 그리고 그 두 명이 모두 한국인이었으면 큰 문제가 되었을 사항이지만, 이곳에서는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쯤으로 여겨졌다.
 
자가격리 후 실제 기숙사 생활에서도 남・여에 대한 구분이 크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한국과 달리 여학생, 남학생 기숙사를 따로 구분하지 않았다. 층별로 어느 정도 구분을 하긴 했지만 절대적인 것은 아니었다. 남학생과 같은 층을 쓰는 일도 있었고 물론 성전환자의 경우 전환된 성에 따라 방 배정을 받았다. 또한 각 방은 학생 고유의 공간으로 인식되며 외부인의 출입이 자유로웠다. 룸메이트의 동의만 있으면 이성 친구를 데려와도 신경 쓰지 않는다.
 
캠퍼스 내에서나 마트 등 일상생활에서 성소수자를 만나는 일도 빈번했다.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든 그들을 마주할 수 있는 미국의 환경이 좋다고 생각했다. 그 들도 보통의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을 쉽게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캠퍼스 내에는 성소수자 학생을 지지하는 여러 가지 것들을 볼 수 있었다. 내가 수업을 듣는 건물 동에는 교내 성소수자 학생을 지원하는 ‘PRIDE CENTER’를 운영하고 있다. 집단과의 관계를 통해 수용 받고 수용하는 환경을 경험하면서 모든 학생이 자신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한 도서관, 편의점 등 교내 모든 시설에 붙여져 있는 무지개 형태의 ‘SAFE ZONE’ 스티커가 있다. 이 스티커의 의미는 LGBTQ+ 개인을 지지하겠다는 약속이자, 그들이 이곳을 안전한 곳으로 생각해도 된다는 표식이다. 교내에 배치된 홍보 팸플릿도 눈에 띈다. 학생들의 해외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장려하는 팸플릿을 모아둔 게시판에는 LQBTQ+ 학생들을 위한 팸플릿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그 팸플릿에는 트렌스젠더로서 공항 검색대에서 당할 수 있는 차별행위에 대한 예방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정보가 기재되어 있다. 성소수자 학생들에게 자신의 권리를 이해하고 보호받아야 함을 당부한다.
 
최근 숙명여대에 합격했던 트렌스젠더 입학생이 여론의 뭇매에 결국 입학을 포기한 사례와 대조적인 모습이다. 논란이 불거질 당시 숙명여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해당 학생의 입학을 저지하려는 SNS 단체 대화방이 만들어지는 한편 23개 이상의 여러 여자대학 페미니즘 동아리에서 해당 학생의 입학을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하였다. 
 
 
집단 속 성소수자
우리 사회에 성소수자는 그들만의 집단으로써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라는 집단 안에 개별 성소수자로서 존재한다. 그들이 개인의 행복추구를 위해 집단 속으로 튀어 오를 때, 주류 집단 사회의 통념과 충돌을 일으키면서 갈등을 빚는다. 개인의 행복을 위한 일이 다른 누군가의 행복을 저해하는 상황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되었던 성전환 직업군인의 사례나 숙명여대 입학 사건만 돌이켜봐도 그렇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왜 굳이 여성의 집단에 남성이 들어오려고 하는지에 대한 반대 여론이 거셌다. 여대, 여군이라는 집단적 특수성도 한몫했다. 우리 사회는 그들을 온전한 여성으로 받아들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낯선 존재와의 공존을 다른 누군가의 권리와 안전을 위협하는 일로 인식했다. 또한, 여러 언론 매체는 성소수자의 비극적인 삶을 집중 조명하며, 고정관념에 기초해 의학적인 전환에 과도하게 집착하고 있다.
 
어떤 것을 분류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에 대한 정립이 우선되어야 한다. 인류는 애초에 성을 남성과 여성 두 가지로 나누었다. 이는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생식기로 구분할 수 있는 명확한 차이가 있었으므로 오랜 시간 인간을 나누는 기준으로 적용될 수 있었다. 즉, 오랜 시간 사람은 남자가 아니면 여자여야 했다. 하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이 두 가지 중 어느 부류에도 속하지 못 하는 존재들이 생겨났다. 처음에는 속하지 못 하는 것이 당연하게 비정상이라 여겨지던 시대가 있었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애초에 모두가 속하지 못하는 분류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숙명여대 입학 논란의 당사자 A씨가 변 하사에게 보낸 편지가 공개되었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사회의 구성원이지만, 당신도 사회의 일부가 아니겠습니까. 당신이 불행하면, 사회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꼭 희망을 갖고 행복을 찾을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남성이든 여성이든, 성 소수자이건 아니건 어떠한 개념적 정의에 분류되기 이전에 하나의 사람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이 모여 사회를 이루며 살아간다. 여성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이나 트렌스젠더가 받는 차별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자신이 태어난 몸이 어떠하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한다.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우연히
그것은 의외로 단순한 곳에서 시작될 수 있다. 미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캠퍼스 내에서 어떤 부스 행사가 있었다. 다양한 색상의 여러 무늬가 디자인된 배지를 전시해 놓고 공짜로 나누어주고 있었다. 많은 한국인 학생들이 이쁜 배지를 가져가기 위해 몰려들었다. 한참을 뒤적거리다가 한 학생이 테이블에 놓인 설명서를 발견했다. 그 배지는 각각의 의미가 있는 배지들이었다. 성소수자를 상징하는 전통적인 무지개 무늬부터 반성애자, 트랜스젠더, 레즈비언 등 그 종류가 15가지를 넘었다. 의미를 알게 된 순간 모두가 배지를 가져가기를 꺼렸고 나 역시도 열심히 고른 배지를 내려놓고 옆에 놓인 쿠키만 가져왔다. 그들의 정체성을 이해하고 인 정하면서도 대외적으로 지지의 의사를 드러내는 일에는 막상 용기가 필요했다. 나에겐 그럴 용기가 그 당시에는 없었다. 누군가가 받는 차별과 소외감보다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타인의 괜한 오해를 사는 것이 그 당시에는 더 꺼려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날 이후 성소수자에 대해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배지를 다시 내려놓았던 그 순간의 찝찝함이 남아 있었다. 유튜브로 접했던 트렌스젠더 음악 교사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최근 근황을 알게 된 것도 계기가 되었다. 한때는 나도 누군가에게 작은 돌멩이를 던지던 사람이었다. 성소수자를 이해한다고 말하면서도, ‘내 주변엔 성소수자가 없다’라는 말로 주변의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지도 모른다. 그들의 정체성을 존중한다고 하면서도 작은 배지 하나 함께 달아 줄 용기는 없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런 오해를 하는 사람에게 아니라고 말하면 될 일이었다. 또 그런 오해를 받는 것이 불쾌하지 않은 날이 오면 될 일이었다. 이후 노트북에 작은 무지개 스티커를 붙였다. 굳이 깊은 대화를 나누는 사이가 아니더라도 도서관에서나 길을 지나다닐 때 누군가가 나의 노트북 위에 작은 무지개를 보고 위안과 안심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서 말이다.
작성자이은지 객원기자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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