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부양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게 가능한가? > 지난 칼럼


사회적 부양에 대한 사회적 합의, 그게 가능한가?

[편집장칼럼]

본문

  이 시점에서 보건복지부가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대상으로 전수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를 실시한 후, 수급권에 기대 겨우 최저 수준의 삶을 이어가고 있던 많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수급권 탈락을 통보하면서 깊은 절망을 안겨주고 있는 것은, 그렇지 않다고 믿고 싶지만 내심 악의가 있는 조치가 아닌가, 라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복지부 관계자는 전수조사를 갑자기 시행한 게 아니라 작년에 실시하기로 계획되어 있었는데 미뤄져서 올해 실시한 것이라고 강변하지만, 어쨌든 복지부가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를 실시한 시기가 무척 절묘하다.
알려진 사실이지만 올해 들어 빈곤사회연대 등 시민단체와 장애우 단체들은 정부와 국회를 향해 기초생활수급대상자 선정에서 부양의무자 기준을 삭제할 것과 상대빈곤선 도입을 통한 최저생계비 현실화를 요구하며 시위 등으로 투쟁의 강도를 높여 왔다.  

  이런 움직임에 복지부가 당황했는지 아니면 더 이상 밀릴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는 몰라도 느닷없이 꺼내든 카드가 부양의무자 전수조사였다. 그러면서 복지부는 언론을 대상으로, 조사 결과 서울의 한 구청장이 사위인 기초생활수급자도 있었고, 연봉이 7천만원이 넘는 사위가 있는 수급자도 있었다며 전형적인 물 타기를 시도하고 있다.  

  외견상 복지부의 이런 희석 전략은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장 시민단체와 장애우 단체들은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 요구와 최저생계비 현실화 요구 대신 발등에 떨어진 불인 갑자기 수급권자에서 탈락한 가난한 사람들을 어찌할 것인가의 문제를 가지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해서 눈에 보이는 부양의무자 확인 조사 후 예상되는 복지부의 행보는, 가난한 사람들 전부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 중 노인과 장애우에 특정해서 부양의무자 소득기준을 약간 완화시켜 주는 조치를 취하면서 생색을 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복지부는 조만간 노인과 장애우 가구에 한해 부양의무자 최저 소득 기준을 현재의 최저생계비 130%(도시 4인가구 256만원)기준에서 185%(도시 4인 가구 364만원)로 누그러뜨리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결국 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독소조항으로 평가받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지금보다 조금 완화할 수는 있어도 부양의무자 삭제는 절대 없다는 게 복지부의 공식입장인 셈이다. 미루어 짐작하면 복지부가 논란과 사회적 파장이 일 것을 알면서도 부양의무자 전수조사를 실시한 것은  시민사회진영을 향해 부양의무자 기준 폐지는 절대 없다는 입장을 확인시키고 관철시키기 위해서였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부연하면 복지부의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부양의무자 기준 삭제는 절대 없다는 방침과 관련해서 주목되는 것은 복지부 관계자의 다음과 같은 발언이다.

  복지부 기초생활보장과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복지부도 빈곤층에 대한 적극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까지는 빈곤층에 대한 가족부양이 원칙이며, 가족부양이 아니라 사회적부양이 원칙이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면 부양의무자 기준 삭제 등으로 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말은 과대 해석하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정부가 사회적인 안전망을 제공할지, 또 가난을 국가가 책임질지 여부를 국민투표 등을 통해서 결론을 내리자는 얘기로 들린다.

  이렇게 부양의무자 기준에 걸려 기초수급대상에서 제외된 빈곤층이 정부 공식 통계로도 1백만 명이 넘는다는데, 복지부는 말장난만 하고 있다.

  기초생활수급을 받고 있던 장애우들에게 수급권 탈락은 곧 생존권 박탈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부양의무자 조항 때문에 절실하게 필요한데 기초생활수급을 받지 못하고 있는 장애우들도 사실상 사망선고를 받은 것과 진배없는 삶을 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짓밟고 외면하는, 관용이라고는 눈 씻고 찾아볼 수 없는 사회라고 믿고 싶지 않다. 연관 지어서 가난한 사람들이 처해 있는 문제를 국민투표라는 마지막 수단을 통해서 해결해야 할 만큼 비정한 사회라고도 생각하고 싶지 않다. 지금은 논쟁과 삿대질을 떠나 가난한 사람들은 국가가 책임지고 보호한다는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취지를 진지하게 다시 한 번 상기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하고 싶다.   

 

작성자이태곤 기자  a3527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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