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거울 나라의 앨리스 > 대학생 기자단


더 빨리! 거울 나라의 앨리스

[김형수의 세상보기] 나의 인권, 너의 인권, 우리의 인권을 위하여 청춘들에 바치는 쪽지

본문

  불안과 공포의 담장을 넘어서

  그 후로 다시 생각해 보아도, 앨리스는 어떻게 그런 일들이 발생했는지를 알 수 없었다. 그녀가 기억하는 것이라고는, 그들이 손에 손을 잡고 뛰고 있었고, 여왕이 매우 빨리 달려서 앨리스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그녀를 따라잡는 것뿐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마디도 할 수 없을 만큼 숨이 차도 여왕은 “더 빨리! 더 빨리!”를 외치고 있었다. 가장 이상한 것은, 그들 주위에 있는 나무와 그 밖의 것들이 전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무것도 따라잡지 못했다. “저, 제가 살던 곳에서는” 앨리스는 숨을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지금처럼 오래 달린다면, 당신들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을 거예요.”, “게으른 나라군” 여왕이 말을 이었다. “여기서는, 네가 보다시피, 같은 장소에 머물기 위해서는 네가 할 수 있는 한 달려야 돼. 네가 만약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면, 그것보다는 최소한 두 배는 더 빨리 달려야 하지.” - 루이스 캐롤, <거울나라의 앨리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에 나오는 일화 중 한 장면이다. 1996년 IMF 이후부터 지금 오늘 88만원세대의, 우리 20대들의 신자유주의 자화상을 상징적으로 너무나도 잘 나타내고 있는 일화이다. 많은 20대가 스무 살에 들어서자마자 청춘을 불태우기보다, 토플·토익 책과 영어 시험 웹 사이트에 더 민감하고 대기업 신입사원 선발 숫자에 떤다.

  그 공포와 불안은 20대의 절대 사명과도 같은 연애도, 어둠의 자식과 신의 아들을 나누는 군대 이야기도 쉬이 진압해 버린다. 초등학교 입학할 때부터 고3이라는 암흑시대를 지나 대학에 들어왔어도 여전히 ‘경쟁’과 일등의 채찍질에 시달린다. 아무리 학점이 높고 영어 점수가 잘 나와도 자기 자신보다 뛰어난 그 누군가가 있을 것이라며 한시라도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두려움이 지금 이 시대 대학을 다니는 우리 청년들을 지배하고 있다.

  우리가 왜 달리고 있는지 무엇을 향해, 무엇을 위해 얼마나 달리고 있는지도 망각한 채 무작정 달리고 있으며 그렇게 숨을 헐떡이며 달려도 언제 어디서 멈추어야 하는지도 막막할 뿐이다. 그것이 우리 시대의 시대 현실이며 시대정신의 반영이다.

  이런 정신없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등 떠밀려 내달리는 이 시대에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인권을 이야기하는 것은 참으로 골치 아프고 허황하기까지 한 일이다.

  어쩌면 그동안 우리의 삶을 둘러싼 담장 밖의 인권과 타인의 삶만을 너무 강조해서 생긴 일종의 과부하 현상인지도 모른다. 목적지도 모르고 목표나 동기도 상실한 채 경쟁이라는 경기장에서 아무도 끝을 모르는 경주에 시달리는 것이다.

  이제 누구나 인권이 필요한 것이며 절대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삶의 구조가 이런 절대적인 인권을 실현하기에는 너무나도 인권적이지 않다는 딜레마도 함께 겪고 있다. 이런 절대적인 가치와 실제 삶의 구조의 괴리가 크면 클수록 우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인권’은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잃은 채 허구적인 윤리와 도덕이 되어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허구는 마주치는 경쟁 생활의 공포와 불안을 더욱 심화시킨다.

  예를 들면 먹고 사는 무상 급식과 같은 절대적인 인권의 기본 가치를 세금 폭탄이라느니 국가 재정 파탄이라는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면서 지속적으로 인권적인 생존보다 보이지 않는 생존의 공포를 증식시켜 인권의 가치를 후퇴시키는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 청춘들은 IMF 이후 인권을 외치면 경쟁력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고, 현 정권에서 인권을 외치면 무기력하고 게으른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는 절대적인 인권이 스무 살의 연애나 취업만큼 민감하고 인기 있는 문제가 되는 것은 오로지 우리가 그 인권을 아주 많이 침해당했거나 급격히 박탈당했을 뿐이었다. 예를 들면 80년대 대학가처럼 캠퍼스 잔디밭에서 사복 경찰이 상주하며 학생활동을 감시한다거나 어느 날 갑자기 여학생 화장실을 없애버린다거나 장애를 이유로 입학을 대놓고 거부하는 이런 사건이 발생해야만 우리는 구체적으로 분노하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다가 96년 연세대 법대생 노수석 군이 등록금 투쟁에서 경찰에게 목숨을 잃은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등록금과 고물가, 실업 문제에 너무나도 아프고 힘든 청춘들이 자신의 삶의 문제를 인권의 문제로 인식하고 전면적인 반정부 투쟁에 나서고 있다.

 

  개나리는 그냥 지지 않았습니다
  등록금 투쟁과 우리의 인권        

  과거 매년 대학가의 3·4월을 뜨겁게 달구는 각 대학의 등록금 투쟁은 다양해지고 때로는 격렬해지기도 했지만, 국민적 여론까지 끌어내기에는 너무나도 역부족이었다. 개나리가 피면 시작했다가 개나리가 지면 끝난다는 이른바 ‘춘투'라는 한계를 이겨내기는 힘에 버거웠다. 대부분 학교에서 등록금 투쟁을 이끌었던 학생회들은 학생 대중들의 밑에서의 힘에 버팀 받지 못하고 정치적 이용이라는 비난을 받기도 하였고, 각 대학이 연합해서 시민단체까지 합세하여 연합하거나 지원사격을 해주어도 몇 차례 학외 집회를 제외한 대부분이 학교 당국을 대상으로 한 단순한 등록금 인상률 싸움에 그치고 말았다.

  이렇게 등록금 투쟁은 학생회의 정치적인 논의와 학교 당국의 알량한 배려심, 그리고 재정문제만큼은 무엇보다 완벽한 독립성을 보장하는 우리 국가의 의해 신입생과 재학생들에게 아르바이트에 매진해야 하는 일종의 외상성 스트레스 장애를 남겨준 채 끝나버렸다. 그래서 우리는 그 억울한 알바에 대한 착취와 기회비용을 보상받고 대출한 학자금을 갚기 위해 더욱 취업과 자신의 이해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강의실의 교수들은 이렇게 취업과 자기 이해에 몰두하는 대학생을 향해 공부 안 하는 이기적이고 개인적인 대학생이라고 한탄하고 푸념한다. 항상 수업권과 학업의 독립성을 강조하고 그 권위를 인정받기를 강력히 원하시는 교수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등록금 투쟁에 참여하거나 지지하는 경우를 볼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학교 당국이 밝히는 대로 교수들의 연구비와 세미나비용과 월급을 대학 적립금에서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면 우리 교수님들이 학생들의 편에 서지 않는 것은 스스로 학생들에 의해 고용되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학생들의 등록과 교수님들이 임금이 연동하여 있고 이해관계가 대립했다. 교수님들이 임금 투쟁을 위해 학교 당국과 협상을 벌이고 대립한다는 뉴스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또한, 학교 당국이 학생들의 등록금을 동결하기 위해 긴축 재정을 한다거나 기부금 모금 활동을 벌인다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그럼에도 왜 우리의 대학생들은 이 문제에 분노하거나 직접 행동하지 않았을까? 누구의 농담처럼 대학생들이 연애에 가진 열정이나 토익 공부만큼 등록금 투쟁에 뇌세포를 불태우지 않았을까? 일반 사회에서처럼 내가 낸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 왜 돈을 더 내야 하지 않는지 누군가 객관적으로 공개하지 않은 것에 당장 고발하고 소송하지 않았던 것일까?

  그러면 누군가 이렇게 답하였다. “그런다고 무엇이 달라지느냐고”, “우리 학생들이 이길 수가 있겠냐고” 이렇게 푸념하고 한탄하였다. 그리고 그렇게 싸우자고 주장하는 일부의 소수자들을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등록금 투쟁이 부실한 것은 학생들의 인식이나 실천력 때문이 아니다. 대학의 등록금 논쟁이 왜 대학 밖의 일반적인 상식과 공정 거래에 명백히 위반됨에도 학교 당국이 무시하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등록금만이 장애인대학생을 자유롭게 하는가?

  이렇게 오랜 기간 쌓인 문제가 드디어 올해 ‘반값 등록금’이란 이름으로 폭발했다. 비로소 20대들이 우리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이렇게 담장 안에서 내달리고 있는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했고 거리에서 목소리를 높여 기성세대를 움직였다. 그렇다면 우리의 장애인대학생은 일련의 등록금 문제에 대하여 어떤 고민과 행동을 하고 있는가?

  일단은 다른 양극화된 청춘들과 마찬가지로 비싼 등록금 문제로 대학 진학 자체를 고민하는 사람들과 경제력 있는 부모님과 장애인이란 이유로 주는 풍부한 장학금으로 말미암아 반값 등록금이란 말이나 투쟁들을 의아해  하는 그룹들이 있을 것이다.

  여하튼 장애인들은 대학 문턱을 들어설 때부터 여전히 당사자의 적성은 물어보지 않은 부모님의 걱정에 부모님의 뜻에 따라 특수교육과나 사회복지학과를 선택하고 있고 그런 자기 부정적인 동기는 결국, 다른 대학생처럼 알바라도 해서 대학을 다녀야 할 절박성도 불러일으키지 못한 채 장애를 팔아 등록금을 의존하는 -비장애인 학생들의 인식 속에서-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결국 자기가 담장 안에서 왜 달려야 하는 지 왜 멈춰야 하는지 담장을 뛰어넘어야 하는지 담장을 무너뜨려야 하는지도 모르는 자기 결정에 무력한 무한대의 부모님의 걱정거리가 되어 버렸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도 운전해야 하겠다는 꿈이라도 꿔야 사회가 시각 장애인을 위한 무인 자동차가 개발되었을 때 제일 먼저 운전을 해볼 수 있을 것이고 눈동자 하나로 겨우 마우스를 움직인다 한들 대기업의 CEO를 희망이라도 해야 정작 리더가 되었을 때 여러 사람을 지휘하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태블릿 PC 하나로 세상을 바꾸고 수십억을 버는 세상에서도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님의 상상력과 장애인 대학생들의 열정은 여전히 70~80년대의 담장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장애인대학생들이 만나는 세상은 앞으로 5년 뒤의 세상이지 부모가 살았던 80년대, 90년대가 아니다. 

  장애인 청년 당사자들이여 더는 우리 청춘을 불쌍하고 차별받는 장애 안에 자신을 가두고 변명하지 마라. 

  부모님의 걱정에 자신을 의탁하지 마라. 사회가 만든, 사람들이 만든, 스스로 만든 담장 안에서의 무의미한 달리기를 그만두고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세계가 무엇인지 꿈이 무엇인지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면 자신의 장애를 탓하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난 때까지 인연 만들기를 멈추지 마라. 정말 취업에 성공하고 오랫동안 그 세계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아무리 차별을 받고 구박을 한들 꿋꿋하게 출근하게 하는 미치도록 하고 싶은 적성과 직업을 찾아라. 

  많이 아프니까 청춘이지만 청춘이기 때문에 아파할 수 있는 것이며 어느 순간에도 치열하게 아파하고 고민할 수 있다는 그대는 언제나 청춘일 때니까.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facebook.com/eduable, guerni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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