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표현 수단을 가질 때 그들은 강해진다 > 지난 칼럼


스스로 표현 수단을 가질 때 그들은 강해진다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는 지난 10월 21일 오후 이룸센터 누리홀에서 ‘성인발달장애인의 방송접근권 확보방안 연구’ 공청회를 열고, 성인발달장애인의 방송접근권 보장을 위한 대책을 논의했다. 이는 연구소가 성인 발달장애인 989명을 대상으로 벌인 ‘성인발달장애인의 방송 이용 실태 및 욕구조사’ 발표를 통해 발달장애인당사자의 방송 접근권을 모색해 본 자리였다. 특히 이 공청회에서는 직접 발달장애인 성인 6명의 직접 토론으로 시작과 1부가 진행되었으며 전문가들의 연구 발표와 토론은 2부로 옮겨 진행되어 발달장애인 당사자 스스로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는 체계를 구체적으로 구현하기도 했다. 본 원고는 공청회 2부 토론 원고를 수정·첨삭한 것이다.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본인에게 요술램프가 있어서 소원 한가지씩을 말할 수 있다면 무엇을 말하겠느냐고 숙제를 내준 적이 있다. 그중에 한 학생이 가수가 되고 싶다고 해서 이유를 들어 본즉 노래는 자신이 부르고 싶은 것을 고를 수 있고 노래를 잘 부르지 못해도 아무도 그것으로 잔소리하거나 탓하면서 노래를 잘 부르는 법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라 하였다.”

  -경기도 장애인종합복지관 가온누리 대학 인터뷰 중에서 -

 

  발달장애인의 능력을 제한하거나 예단하지 않아야 한다

  2010년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는 ‘발달장애학생 교육방송 접근권 확보방안 연구’를 실시한 바 있다. 당시 연구에서는 발달장애학생의 67%가 장애학생을 위한 교육방송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이 연구는 발달장애인을 상대로 직접 조사를 벌이고 당사자들을 통해 직접 연구 결과를 얻은 의미 있는 시도였다.

  그리고 올해에는 한발 더 나아가 성인 발달장애인을 중심으로 그들에게 직접 방송 접근권을 연구하고 토론하였다. 공청회의 핵심결론은 방송이 성인발달장애인에게는 최적화되어 있지 않으니 그들을 위한 전문적이고 쉬운 방송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만 필자는 그 결론보다 그런 연구를 진행한 철학적 배경과 패러다임과 과정에 더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제일 먼저 1000여 명이 넘은 당사자 집단을 설문 조사하거나 인터뷰 한 그 통계적 설득력에 주목해야 한다. 대규모 생활 수용시설의 크게 의존하지 않고 복지관이나 회원 등 일반 성인 발달 장애인을 대상으로 1000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 사실 하나 만으로도 이 연구는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발표된 연구 발제문에서 밝힌 이 부분이다.

  “발달장애인이 방송을 직접 제작하고 공유할 권리는 시·청각장애와 같은 신체적 장애와는 달리 발달장애인은 인지기능 장애로 언어 이해력에 차이가 있어 발달장애인들만의 용어사용 문화가 존재한다. 따라서 발달장애인이 방송을 직접 제작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기반은 물론, 발달장애인 방송 제작자를 양성하고 발달장애인의 문화를 이해하는 발달장애인 전문가 양성이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이 연구가 발달 장애인의 문제를 교육적 조치나 의학적 치료, 재활의 문제로 보지 않고 하나의 차이, 다른 문화권을 가진 존재로 보는 획기적인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최초의 구체적인 연구라는 점을 명확히 한다.

  이제껏 발달장애인을 다른 모든 연구는 주로 그들을 ‘프로그램의 대상화’하거나, 그들을 다른 사람에게 이해시키거나, 그들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 주류를 이루면서 정작 발달장애인들이 타인에게 받고 싶은 지원과 정책이 무엇인지는 설명해주지 않았다.

  설명해준다고 해도 장애인 당사자의 입을 통해서가 아니라 부모님이나 전문가의 입을 통해서만 이루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발달장애인은 아직도 스스로 만든 당사자가 제작한 각자의 이름표를 가지고 있지 못한다.

  장애자, 장애인, 장애우와 같은 뜨거운 논쟁에서조차도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어떤 명칭과 이름을 갖고 싶은지, 불리고 싶은지 그들의 목소리를 들어 본 적이 없다.

  다만 특수교육과 교수들이 발달이란 개념을 고집하고 법학자들과 부모들이 지적·자폐성 장애인이란 용어를 선호할 뿐이며 오래된 관료들과 교회와 성경들은 여전히 정신지체, 지진아란 단어들을 입에 익어한다.

  몇 명의 발달장애인이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했을 때 그들은 발달장애인 쪽에서조차도 특별한 능력을 갖춘다고 열외를 당했었다.

  이번 논의에서도 우리가 우리 스스로 얼마나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 보이지 않은 조종의 이데올로기와 습관들을, 발달장애인의 방송권을 행여 행간으로라도 ‘교육’의 개념으로 투영하고 있지는 않았는지 돌아보며 반성할 기회가 되는 소중한 첫걸음이었으면 한다.

  지금 당장 하지 않는다면 100년이 지나도 할 수 없을 것이며 당장 하겠다는 노력과 의지가 없다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가치관을 은폐하는 것뿐이다. 발달장애인을 위한 방송권이 그러한 것이다.

 

   
▲ 토론 1부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 6명이 토론을 벌이고 있다. 모두 직장인으로서 공청회에는 결근하거나 조퇴를 내고 참석하였다.

  발달 장애인은 그들을 변호하고 방어할 매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선생님 저는 뉴스나 영화가 제일 힘들고 짜증 나요. 왜냐하면 한글을 천천히 읽어야 이해되는데 글씨가 너무 빨리 사라져요. 세상이 저에게 속도를 맞춰주지 않아요.”

  “다큐멘터리를 볼 때 글이나 말로만 설명하지 말고 실제 장면이나 예시를 많이 넣어주면 이해가 잘될 것 같은데 다들 말로만 쏟아 내니 너무 스트레스받아요.”

  “저는 재방송을 많이 하는 ‘무한도전’이나 ‘동물농장’ 같은 프로그램이 좋아요. 이해 안 되는 부분은 계속해서, 반복해서, 체크해서 볼 수 있으니까요.”

  “저는 장애인을 위한 ‘짝’과 같은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어요. 누가 뭐래도 최고의 관심사는 연애와 취업인데 발달장애인들이 어떤 데이트를 해야 성공하는지, 어떻게 해야 상대방에게 멋있고 매력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 어떻게 대화하고 배려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프로그램으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토론문 발표를 앞두고 청년 7명과 벌인 간담회 중에서 』

 

  최근 미국에서 시청률 1, 2위를 달리고 있는 미국 드라마 ‘Glee’를 보면 실제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소녀가 고등학교 치어리더로 등장하면서 극의 진행을 이끌고 있으며, 그 유명한 ‘C.S.I’에는 시즌별로 약 2편에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주인공으로 하는 에피소드를 진행한다.

  그리고 작년에는 자폐증을 앓고 있는 미국의 동물학자를 다룬 영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도 개봉했고, 그 실제 주인공은 정보 공유 강연 사이트(Ted)에 나와 15분 동안 ‘우리 사회는 왜 자폐를 필요로 하는가’란 제목으로 대중강의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 제작자들은 반드시 제작 과정에서 장애인 당사자들을 참여시킨다. 이는 장애인당사자 주의를 다들 이해하고 충성한다기보다는 장애인당사자들을 실제로 주연 배우로 등장시키면서 실제적이고 현실적인 그들의 삶을 세밀하고 일상적으로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면 극으로서의 재미도 떨어지지만, 장애인 당사자에게 당장 장애인차별금지법으로 고소당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미국에서 코미디 소재나 풍자의 소재로 발달장애인이 희화화된다 하더라도 넘어갈 수 있는 것은 장애인 당사자들이 그들 스스로 그것에 대한 방어권을 행사할 기회가 많을 뿐 아니라 희화화한 것 외에도 멋있고 능력 있게 그려낸 다른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근자에 와서야 1960년대 일일드라마 여로가 만든 바로 캐릭터 ‘영구’가 만든 발달 장애인에 대한 이미지를 ‘내 마음이 들리니’라는 드라마를 통해서 겨우 넘을 수 있었고, 영화 ‘도가니’를 통해 장애인의 현실을 ‘착한 일’, ‘좋은 일’로 도덕적 면죄부에서 벗어나 직시할 수 있었다.

  이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영상 매체가 만드는 거대한 힘을 목격한 것이다. 동시에 ‘도가니’가 장애 여성들을 성폭력으로부터 해방시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애 여성을 성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존재로 이미지화하면서 오히려 더욱 억압하고 있다.

  이렇게 매체연구는 그 결과보다 그 과정과 철학을 놓쳐서는 안 된다. 공청회를 다룬 기사만 보아도 일반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발달장애인들은 일반 방송도 이해하지 못할 만큼 능력이 안되는구나’하고 능력주의로 해석될 위험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발달장애인을 ‘발달’ 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회’를 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발달’ 시키는 것이 진정한 발달이 아닐까? 발달장애인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지체와 지진’ 문제이다.

  발달장애인을 이해할 방법을 우리가 발견 못 했을 뿐이다. 오직 스티브 잡스만이 스마트폰의 가능성을 발견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그는 그 발견으로 죽어서도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례에서 보듯이.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facebook.com/eduable, guerni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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