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보다 물질이 대접받는 세상 > 지난 칼럼


사람보다 물질이 대접받는 세상

[최원대의 감성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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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님은 왕이라더니, 이제는 돈이나 물건이 더 대접받는 시대 같다. 일전에 옷을 한 벌 사러 갔다가 씁쓸한 기분에 그냥 매장을 나온 적이 있다.

  “요즘은 이런 체크가 많이 나오세요. 이런 스타일도 많이 나가시고, 요것도 인기가 많으십니다.”

  대체 어느 나라 말인지 모를 이상한 존댓말. 손님 대신 물질에 존칭어를 쓰고 있다. 이곳뿐만이 아니다.

  “계산 도와드리겠습니다. 3천원이세요.”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

  몸값이 무려 3천원이신 ‘커피님’께서 나오셨다니 그저 황송할 따름이다. 황급히 모시러 달려가야지.

  몇 번은 잘못된 표현이라며 지적을 해주기도 했으나, 열군데 중 열 한군데가 저런 표현을 쓰다 보니 포기한 지 오래다. 뭘 그런 거 가지고 트집 잡느냐는 눈빛도 더는 받기 싫고.

  우리나라는 지금 이런 국적불명의 존칭어가 대유행이다. 한때 인터넷 용어가 국어를 파괴하고 있다며 걱정하더니, 이제는 존댓말도 시류에 따라 세대교체가 될 모양이다. ‘나랏말싸미 듕귁에 달아 문짜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하더라도 일단 유행은 유행이니 따라야 하는 모양이다. 스스로는 깍듯이 친절하다고 생각되겠지만, 듣기엔 여간 불편하지 않다.

  ‘3천원이세요’는 ‘3천원입니다’가 옳은 표현이고, 커피는 나와 주시지 말고 그냥 나와도 될 것을. 요즘 유행한다는 체크무늬 스타일도 그냥 유행이면 유행이지, 많이 나가신다니.

  ‘신사복 코너는 3층이십니다’, ‘여기 가운데 탁자가 가장 시원하세요’, ‘커피 나오셨습니다’에서 ‘-시-’는 주체가 존귀한 대상일 때만 써야 한다. 언제부터 신사복 코너와 탁자, 커피가 사람보다 존대 받는 시대가 되어버렸는지, 개탄할 일이다.

   
 

  행동에 대한 존대법도 주의해서 써야 한다. ‘침대에서 내려오실게요’, ‘다음으로 이동하실게요’ 등은 말하는 사람이 듣는 사람에게 어떤 행동을 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사람이 행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ㄹ게요’라는 식의 표현은 잘못이다. ‘내려오십시오’, ‘이동하실 거예요’가 옳은 표현이다.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는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명제를 통해 인간의 존재 의미를 설명한다. 언어에는 존재의 본질이 담겨 있어, 그 사람의 사상은 물론, 인격, 심지어는 교육의 정도도 들여다볼 수 있다. 언어에 의해 우리는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 설명할 수 있으며 자신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다. 이는 곧 사유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성적인 판단과 행동을 선택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문명 또한 지극히 언어의 산물 아니던가. 언어에 의해 문화가, 나아가 세계가 존재하게 되며 그러한 세계에서 여러 가지 존재와 사건들이 의식 속에서 나타나 인식되어 서술의 대상이 된다.

  이 세상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상황을 통제하며, 그에 따라 미래를 계획하고 예측하여 삶을 이성적인 선택에 따라 올바르게 이끄는 힘은 바로 언어에서 비롯된다. 언어의 약속이 중요한 이유다.

  외래어의 남발을 넘어 우리말의 위상을 빼앗긴 세태도 문제다. 우리말보단 영어를 잘해야 대접받는 나라가 되고 말았으니 우리 문화, 우리 사상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도 벌써 모호해진 판국이다. 과연 무엇이 이 나라 대한민국을 대한민국이게끔 하는지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작성자글/최원대 칼럼니스트, 그림/아티스트 설레다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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