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정신이다 > 지난 칼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는 국민적 요구이자 시대정신이다

국민‧기업‧정부 모두 30%씩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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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이 (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 상임운영위원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1979년 집권한 영국의 대처 수상은 보수당의 전통적인 온정주의 정책노선을 버리고 시장만능주의 노선을 전면에 내세우며 당권을 장악하고, 선거 승리를 통해 신자유주의 노선을 실천한 보수당 최초의 수상이었다. 집권 후 ‘철의 여인’이란 별명에 잘 어울리는 강력한 신자유주의 개혁을 단행하였다. 국영기업의 민영화, 규제완화, 그리고 감세에 나섰고, 민영화와 시장만능주의를 반대하는 노조를 공권력을 동원하여 가차 없이 무력화시켰다. 대처는 증가하는 실업률 속에 복지재정의 총량을 줄이지는 못하였지만, 복지재정의 증가추세를 멈추었고, ‘작은 정부’ 노선을 계속하였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속에서 대처는 원하는 거의 모든 것을 민영화하였으나, 도저히 없앨 수 없었던 것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국영의료제도(NHS, National Health Services)가 그것이다. 영국 국민들이 그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 내리고 의료불안을 없애주던 NHS의 폐지를 결코 수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NHS는 1945년 총선에서 집권한 애틀리 수상의 노동당 정부가 이룬 복지국가 사회개혁의 백미로 꼽힌다. 조세 기반의 무상의료체계인 NHS가 1948년 출범하자 모든 영국인들은 의료서비스 이용 시점에서 의료비를 지불하지 않는 소위 ‘무상의료’ 혜택을 누렸으며, 이후 노동자들을 비롯한 전 국민의 건강은 놀라울 정도로 개선되었다.


  우리나라에도 영국의 국영의료제도(NHS) 만큼은 못하지만 다수 국민의 사랑을 받는 ‘국민건강보험제도(NHI, National Health Insurance)’가 있다. 영국의 NHS는 누진성이 강한 일반조세(Tax)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전국민의료보장제도이며, 우리나라의 국민건강보험제도는 소득 비례로 부담하는 건강보험료(Contributions)라는 일종의 의료보장 목적세를 주요 재원으로 하는 전국민의료보장제도이다. NHS와 NHI의 공통점은 중앙정부가 운영하는 단일보험자 운영체계(Single pipe)를 채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온 국민을 하나의 제도 틀 속에 포괄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편주의(Universal coverage)' 원칙을 공유하고 있다. 이는 위험을 온 국민이 전국적 수준에서 함께 나눈다는 의미(경제적 능력에 따른 비용 부담과 필요에 따른 의료 이용)에서 사회연대성의 범위가 전국적(National solidarity)이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인수위원회 등에서 많은 말들이 나왔는데, 대체적인 기조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충하는 것 대신에 주식회사 영리병원을 도입하고 민간의료보험을 활성화하겠는 것이었다.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도의 폐지 소식도 떠돌았다. 사실 이명박 정부와 가까운 의료시장주의자들은 당연지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정책적 의지를 공공연하게 표현하였고,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를 공식적으로 지지하였던 의료계는 이전에 당연지정제도가 위헌이라며 헌법소원을 낸 적도 있었다. 인터넷을 중심으로 당연지정제도의 폐지와 의료민영화 소식이 전파되면서 누리꾼들뿐만 아니라 우리 국민이 보여준 전반적 인식은 국민건강보험의 폐지나 축소는 불가하다는 것이었다. 이것이 촛불의 저항으로, 제주도에 내국인 영리병원을 도입하려는 이명박 정부의 시도를 분쇄하는 제주대첩으로 이어졌다.


  우리 국민은 국민건강보험제도의 훼손을 원치 않는다. 2000년 7월 출범한 통합의료보험 체계인 국민건강보험제도(NHI)가 본격적으로 작동하면서 의료보장이 크게 확충되었고,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조합주의 의료보험 시절 50%를 넘지 못하던 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이 2007년 65% 수준으로 크게 향상되면서 국민적 신뢰가 높아졌다. 특히, 참여정부 후반기에 추진되었던 암, 뇌혈관질환, 심혈관질환 등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 조치로 인해 이들 질환으로 고통 받던 서민 가계의 의료비 부담이 크게 완화되었다. 소위 “암부터 무상의료” 정책이 효과를 발휘했던 것이다. 당시 이루어졌던 각종 조사와 연구에 의하면, 장차 이러한 보장성 강화 조치가 지속되길 바란다는 응답이 80%를 웃돌았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 대신 의료민영화를 들고 나왔다. 영국의 대처 수상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했던 그 일을 해치우려 했든지, 아니면 상황을 완전히 오판했던 것이다. 나는 이명박 정부가 오판하였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 국민이 국민건강보험제도를 ‘그렇게 신뢰하지 않을’ 것이므로 의료민영화를 추진하더라도 일부의 반발은 있겠으나 충분히 돌파할 수 있을 거라고 여겼을 터였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기에 국민건강보험을 축소하고 훼손하는 결과를 가져올 주식회사 영리병원의 도입과 민간의료보험의 활성화 조치를 그렇게 끊임없이 추진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와 의료시장주의자들의 기대와 달리, 우리 국민은 국민건강보험제도를 무척 아끼고 있었다.


  국민적 기대가 이러함에도, 여전히 큰 병에 걸리거나 장기 진료를 받을 경우 경제적 부담이 크다. 가난한 사람들은 진료를 포기해야 하고, 중산층 시민들도 본인부담금 마련이 부담이다. 의료비 불안이 우리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정부가 불안을 제도적으로 해결해주지 않으니, 각자 알아서 불안 해소책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 국민 열 가구 중 여덟 가구가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고 있다. 그런데 민간의료보험의 보험료는 매우 비싸다. 2010년 기준으로 국민건강보험 가입자들은 다달이 가구당 평균 7만 원의 국민건강보험 보험료를 납부하는 데 비해, 민간의료보험 가입자들은 가구당 평균 21만 원을 민간보험회사에 내고 있다.


  이건 말이 안 된다.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부실한 것 때문에 우리 국민은 엄청난 비용을 추가적으로 지불하고 있다. 한 번 따져보자. 국민건강보험의 경우, 근로자가 월 7만 원을 내면, 법률에 따라 사용자도 월 7만 원을 내고, 이 둘을 합친 14만 원의 20%인 2만8천 원을 정부가 재정에서 보탠다. 그래서 16만8천 원의 건강보험 재정으로 마련되고, 이 중 국민건강보험의 관리운영비로 사용될 3%를 제외한 전부가 우리 국민의 실제 의료비로 지출된다. 그런데 민간의료보험의 경우, 우리가 민간보험회사에 7만 원을 내면 나중에 겨우 3-4만 원 정도만 돌려받는다. 나머지를 보험회사가 관리운영비와 이윤으로 가져가기 때문이다.


  공적 의료보장제도 대신 민간의료보험이 주도하는 시장주의 의료체계에 의존하는 나라는 선진국 중 미국이 유일하다. 의료서비스는 시장실패를 일으키므로 거시적으로 비효율적이고,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형평성 문제를 초래한다. 우리는 미국에서 이러한 현상의 전형을 보게 된다. 우리는 유럽 선진복지국가의 의료보장제도에서 더 많은 교훈을 얻어야 한다. 이제 선택할 때다. 지금처럼 국민건강보험료를 적게 내고 혜택을 적게 보는 대신, 민간의료보험에 가입하여 엄청남 돈을 낭비할 것인지, 아니면 국민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30% 정도 더 내고(이 경우, 국민 1인당 월 평균 1만1천 원을 더 부담함)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해결함으로써 더 이상 민간의료보험료를 내지 말 것인지를 우리 국민이 결정해야 한다.


  나는 최근의 지방강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 하나를 받았다. 그는 “우리 모두가 건강보험료를 30% 더 내서 확충된 국민건강보험 재정으로 보장성을 크게 확충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하여 별 필요가 없음에도 의료서비스를 무분별하게 이용하는 폐단이 생기지 않을지 걱정”이라며, 이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공적 재원은 모두가 낸 것이지만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니라는 생각 때문에 앞 다투어 무분별하게 사용할 것이라는 논리이다. 이는 ‘공유지의 비극’을 예로 든 시장주의자들의 우려에서 잘 나타난다. 이에 대해, 나는 우리 국민이 필요 없는 의료를 이기적으로 낭비하지 않도록 할 다양한 방법을 사용할 수 있고, 실제로 유럽 복지국가들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같은 국가기구를 통해 공적 의료이용을 충분히 잘 통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사람들이 공유 자원을 소비하려는 이기적인 욕망 때문에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면서도 공유 자원을 파괴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즉, 희소성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인간은 자기만족을 위한 동물적 충동에 이끌려 결국 자신들의 생존기반 마저도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례로는, 공유 목초지에 경쟁적으로 자신의 양 때를 방목함으로써 결국 목초지가 완전히 황폐화한다는 설명에서부터 어촌의 공유 어장이 어부들의 경쟁적 욕망 때문에 황폐화하는 사례까지 다양하게 동원된다. 논리적으로는 그럴 듯 해 보이지만, 실제로 이런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공유 목초지나 공유 어장 모두 사람들의 합리적인 공동체 의식과 정치 및 행정관리 기제에 의해 잘 조정되고 관리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공유지의 비극’을 초래하는 것은 이윤추구 동기에 사로잡힌 주식회사 또는 여타의 공급자들이다.


  실제로 공유 어장은 지난 수세기 동안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어부들은 대를 이어 바다에서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들어 일부 어장에서 무분별한 어획으로 공유 어장이 고갈되는 사례가 생겨났다. 문제는 어부들의 경쟁적 욕망이 아니라 저인망 어선을 동원한 주식회사들의 이윤추구 욕망이었다. 국민건강보험 같은 공적 의료보장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공유지의 비극은 국민건강보험 가입자인 국민들이 이기적 심성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마구 남용하는 데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의료공급자인 의료기관들이 기대수익을 달성하거나 영리를 추구하려는 욕망 때문에 과잉진료를 일삼는 데서 주로 일어난다. 의료서비스는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의사나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의료이용을 권유하면 대부분 그대로 관철되는 경향이 강한데, 이를 공급자 유인수요(PID, Provider Induced Demand)라고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러한 공급자 유인수요에 의한 과잉진료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우리나라 국민 1인당 평균 연간 의료기관 방문횟수는 약 14회로 OECD 평균의 2배이며, 병원 입원일수도 마찬가지로 2배 수준이다. 특히, 심각한 곳은 국민건강보험이 혜택을 주지 않는 ‘비급여’ 의료 영역인데, MRI 등 고가의 진단의료나 다빈치 수술 등 고가의 치료들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비급여 영역에서는 정부나 국민건강보험에 의한 공적 개입의 여지가 없고, 오직 의료공급자인 의료기관과 의료소비자인 환자 사이의 시장거래에 의존하므로 시장실패의 증상들이 모두 나타난다. 즉, 엄청난 비효율과 소득계층 간 의료이용의 양적․질적 격차가 그것이다.


  이 문제를 해결할 좋은 방법이 있다. 비급여 의료 중에서 의학적으로 타당한 모든 항목을 국민건강보험의 급여로 끌어들이면 된다. 이렇게 되면 대부분의 의료영역은 국민건강보험의 통제를 받게 되므로 시장실패의 문제가 개선된다. 이 경우, 국민건강보험에서 진료비의 심사 및 평가를 담당하고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모든 급여 의료행위를 심사하고 정교하게 평가함으로써 적정 수준에서 국민의료비를 관리할 수 있고, 국민건강보험의 공유 자원인 보험재정을 도덕적 해이나 공유지의 비극 없이 잘 운영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더해, 과잉진료를 유발하는 현행 행위별수가제를 포괄적 방식의 다른 보수지불제도로 고치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


  문제는 돈이다. 의학적 타당성을 가진 비급여 의료를 모두 급여 항목으로 포함하고 국민건강보험의 법정 본인부담금 수준을 대폭 인하하려면, 즉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그래서 국민 모두가 필요한 만큼 의료서비스를 받는 ‘연대 의료’를 달성하려면 국민건강보험 재정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기업, 정부 모두가 국민건강보험료와 재정을 더 부담해야 한다. 건강보험료를 기꺼이 더 내겠다고 나서야 한다. 정부와 공적 영역에 대한 지금까지의 불신을 우리 스스로 씻어내도록 노력해야 한다. 공유지의 비극이나 도덕적 해이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우리 자신을 믿어야 하고, 민주주의 복지국가와 공적 영역을 믿어야 한다. 공적 신뢰가 없어진 곳은 시장만능주의와 민간의료보험의 지배적 영역이 되기 쉽고, 우리네 민생불안 더욱 심화될 따름이다.


  현행 국민건강보험의 혜택과 건강보험료 부담 수준은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라 보건복지부에 설치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입자 대표, 의료계 대표, 전문가 및 정부 관계자 등 25인으로 구성된 정부 주도의 사회적 의결 기구)에서 매년 10월부터 논의를 시작해 11월 말에 결정된다. 지금까지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존재와 활동은 우리 국민에게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이제 ‘모든 병원비를 국민건강보험 하나로’를 통해 사실상의 무상의료를 바라는 시민들이 나서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활동방식을 확 바꾸어야 한다. 지금까지 건강보험정책심의원회는 다음 해 의료비의 자연증가를 따라잡는 수준에서 건강보험료를 결정해왔다. 그 결과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수준은 계속 60% 주변에서 머물고, 가입자인 국민들은 무거운 본인부담금을 떠안아야 했고, 이는 값비싼 민간의료보험 의존으로 이어졌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는 민간의료보험 필요 없이 ‘국민건강보험 하나로’ 모든 병원비를 해결할 수 있도록 보장성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 입원진료의 보장 수준을 90% 이상으로 올리고, 간병, 틀니, 치석제거 등을 모두 급여화해 어떤 환자도 1년간 본인부담액이 총 1백만 원을 넘지 않도록 하는 ‘1백만 원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위해, 국민건강보험료를 지금보다 국민 1인당 월 평균 11,000원(가구당 평균 26,000원) 더 낼 것을 제안한다. 이는 지금보다 30%씩 건강보험료를 더 내자는 것이다. 매달 1만5천 원을 내시는 분은 5천 원을 더 내고, 15만 원을 내시는 분은 5만 원을, 150만 원을 내시는 분은 50만 원을 더 내면 된다. 그러면 우리가 낸 만큼 기업과 정부도 30%씩 더 내게 되어, 병원비 무상의료를 실현할 수 있는 재정이 마련된다. 사회적 연대를 실현하고, 민간의료보험에서 벗어나 서민 가계가 좋아진다. 이제 무상의료를 위한 우리의 정치적 행동이 필요한 때다.

 

작성자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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