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하는 시간 > 대학생 기자단


준비하는 시간

[최원대의 감성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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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동부지방에 새로 이사 온 장사꾼이 있었다. 그의 눈에는 무엇하나 신기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런데 아무리 보아도 도무지 이해하지 못할 일이 하나 있었다. 그 지방 농부들이 대나무를 키우는 방법이었다.

  농부들이 심은 대나무는 다른 곳과 달리 제대로 자라지 않았다. 공들여 심어놓아 봤자 감감무소식이었던 것이다. 장사꾼이 농부들에게 어째서 그런 대나무를 심는지 물었지만, 그들은 빙긋이 웃기만 할 뿐 별다른 설명을 하지 않았다.

  한 해가 지나도 대순은 돋지 않았다. 그다음 해도 마찬가지였다. 장사꾼은 그것을 보면서 농부들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대나무가 제대로 자랄 수 없는 땅이거나, 대나무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그는 생각했다. 4년이 지났지만, 대나무는 여전히 순을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것에 신경도 쓰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런데 5년째가 되자 대나무밭에서 갑자기 죽순이 돋기 시작했다. 그것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한꺼번에. 대나무들은 마치 마술에 걸린 것처럼 하루에 한 자도 넘게 자라기 시작했다. 6주가 채 되기도 전에 무려 15미터 이상이 자라나서, 빽빽한 숲을 이룰 정도가 되었다. 농부들은 그제야 칼을 꺼내 들고서 대나무를 베어냈다.

  어느 날 동생이 게임을 하는 걸 보다 문득 생각난 일화다. 칼을 움켜쥐고 적과 싸울 생각은 안 하고 빙빙 돌며 피하기만 하는 동생에게 물었더니, 원래 첫 판은 져주는 거란다. 상대방의 움직임을 파악한 다음, 요컨대 시스템을 먼저 분석한 다음에야 더 쉽게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단다. 아니나 다를까, 10분이 지나자 한 달을 그 게임에 매달린 나보다 훨씬 더 잘하는 게 아닌가.

  준비하는 과정은 때때로 남이 보기에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다. 왜 저러고 있는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철저한 준비를 통해 덤벼들 대상을 완전히 파악하고 나면 내게 훨씬 유리한 상황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
성미 급한 리더가 이끄는 조직을 보면 대게 조직원들이 뭔가를 준비할 시간마저 아까워하며 기다리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구성원들은 단기간에 이익을 볼 수 있는 제안만 하게 되고, 조직은 눈앞의 이익만 좇다 결국 숲에서 길을 잃는다. 조직원들은 매일매일 바쁘게 움직이는데, 날이 갈수록 성과는 점점 떨어지기만 한다. 리더로서는 환장할 노릇이라 실무진들의 무능함을 탓하기 일쑤다.

  중국 동부에 이사 온 그 장사꾼 역시 자기 눈으로 본 그 광경을 도무지 믿을 수 없어 물었다. 그러자 한 노인이 대답했다.

  “자네는 잘 모르겠지만, ‘모소’라는 이름을 가진 이 대나무는 순을 내기 전에 먼저 뿌리가 땅속으로 멀리 뻗어 나간다네. 그리고 일단 순이 돋으면, 길게 뻗은 그 뿌리들로부터 엄청난 자양분을 얻게 되어 순식간에 키가 자라는 것일세. 5년이라는 기간은 말하자면 뿌리를 내리는 준비 기간이라고 할 수 있지. 모름지기 준비하지 않음은 탓해야 하지만 준비하는 시간은 탓하면 안 된다네.”

 

   
 
작성자글/최원대 칼럼리스트, 그림/아티스트 설레다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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