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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생 향(一生香)

[이서진의 생활단상]

본문

전각(篆刻)을 대하는 순간 눈앞이 서늘해지면서 코끝마저 시큰했다. 一生香(일생향)이라. 그윽하고 은은하게 퍼지는 향내를 뜻할진대……. 그것도 ‘평생’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아놨으니 순간 나는 오랏줄에 매이는 심정이었다. 전각을 새긴 당자는 전각주인에 대한 헌사를 담아내려는 범접지 못할 무구한 사랑을 내포했겠지만, 그저 넙죽 선물을 받아버린 나로서는 여간만 부끄럽지 않았다. 향기는커녕 악취를 풍기지 않았으면 다행인 내게 전각의 문구는 실로 지엄했다. 사람냄새 신통찮은 세상 속에서 이제는 사람냄새 피우며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책망하는 것 같기도 했다. 매 순간을 향내 나는 삶으로 채워가자는 전각주인의 제의를 담고 싶었다던 그 속내를 헤아려도 ‘일생 향’은 내게 아득했다.

“커피와 가을볕 괜찮겠지요?”

볕이 따사로운 지난가을 어느 날이었다. 지인의 제의는 다분히 유혹적이었다. 매양 햇빛이 부족한 내게 더군다나 커피라니? 그것도 손수 원두를 갈겠다는 주인장의 달콤한 꼬임에 어수룩하기 짝이 없는 나는 단박에 가겠다고, 장담하고 말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처럼. 그 어떤 사랑의 빚을 잔뜩 지게 될지 가늠조차 못한 채.

내가 사는 도시의 근거리에 외딴섬처럼 한적한 시골 동네가 오롯하게 앉아 있었다. 불과 반 시간도 지나지 않았는데 내비게이션은 이미 우리 부부를 도착지에 데려다 주었다. 좁은 농로를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달리는 자동차를 농부들이 힐끔힐끔 돌아보았다. 나는 조수석에 앉아 아낙의 손에 줄줄이 딸려 나오는 고구마를 목격했다. 내가 붙박인 회색빛 거리에서는 도무지 볼 수 없는 풍경이었으니 차창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어린 시절을 농촌에서 보냈던 내게는 익숙한 정경이었다. 군데군데 무더기 진 고구마들이 삿갓처럼 쌓인 채 아낙들 뒤에서 시시덕거리는 것 같았다. ‘어서 가서 공부나 해!’ 돌연 어머니의 음성이 튀어들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대한민국 어머니들은 변하지 않은지라 책가방을 들고 느작느작 귀가하는 내게 어머니는 방금 자동차를 힐끗거리던 아낙들처럼 돌아보았으리라. ‘계집애가 누가 들에 기웃거리라던? 썩 가거라!’ 인정머리 없게도 그녀는 휘휘 팔을 내저었다. 그때도 어머니의 엉덩이 뒤에는 막 땅속에서 끌려나온 붉은 고구마들이 오종종하게 모여서 속닥거리는 듯했다. 딸의 마음도 모르는 천치 엄마라고, 아마 계모일지도 모른다고, 펑퍼짐한 어머니의 엉덩이 뒤에서 흙투성이 고구마들이 앞다투어 그녀를 비난하는 듯했다. 나는 웬일인지 미묘한 서글픔을 줄기에 달린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내 등에 매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때 어머니한테는 싸한 냄새가 났다. 어둑어둑한 사위 때문이었을까? 볕이 훌쩍 떠나버린 자리에 쓸쓸하게 남겨진 바람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어스름에만 찾아오는 어머니의 애틋한 향내였다. 나는 차창에 얼굴을 기대고 어머니의 냄새를 맡으려는 듯 큼큼, 소리를 냈다. 잠시 후면 향내의 과업이 내 정수리를 누르게 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사인을 못할 테니 이 돌도장으로…… .”

“세상에나! 이 귀한 것을…… .” 

전각을 내미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뒷말은 맺지 못했다. 말마따나 손수 드립커피를 만들어 대접하는 주인장의 정성으로 집안은 온통 원두향기로 그득했다. 햇빛 또한 테라스에 오글거렸다. 애초 주인의 제안대로 우리는 가을볕을 내다보며 커피를 마셨다.

“삶의 구석구석이, 매 순간순간이 한 생(生)일 텐데 독자나 작가 양편 모두 생을 향기로 채워갔으면 하는 염원을 담았지요.”

말하자면 그는 출간될 내 소설집에 사인을 대신하여 전각을 사용하게끔 배려한 것이었다. 중증의 중도장애를 입게 되면서 나는 필기가 불가능했다. 그런 내가 ‘쓰는’ 일을 천형이듯 짊어지고 살아가게 되었으니 이 또한 부조화가 아닐 수 없으리라.

“책은…… 여전히 오리무중입니다.”

모나지 않게,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내린 그의 서체를 대하면서 나는 몸 둘 바를 몰랐다. 과연 그림을 그리는 예술가다운 서체였다. ‘일생 향이라…… 일생 향……’ 탁자 위에서 흘러나오는 커피 향은 은은하고 그윽했다. 사람의 향기도 이에 다르지 않으리라. 지나치지 않아 넘침이 없고 인색함이 없어 모자라지 않는 조화와 균형의 미. 사람은 역시 사람다울 때 아름답지 않을까. 그 아름다움이 바로 사람이 향기를 낼 수 있는 발원지일 터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유행가 가사는 의미심장하지 않을 수 없다.

“선생은 지금껏 사람들에게 향기를 주었어요. 그만하면 괜찮습니다.”

이쯤 되면 두 눈 부라려 쥐구멍을 찾을 판국이다. 매양 내 삶, 내 글에 전전긍긍하며 살아온 내가 향기가 다 무어란 말인가! 고개를 들 수 없어 나는 애꿎은 커피만 연신 홀짝홀짝 마셔댔다. 목울대를 넘어가는 소리마저 경망스러웠다. 면구스러워 낯을 들 수조차 없는 나로서는 점점 커피 향 속으로 빠져들어 갔다. 내게서는 요원한 향내를 찾아가기라도 할 것처럼. ‘일생 향’은 부채(負債)이듯 그렇게 내게 맡겨졌다.

상 위에 턱, 버티고 서 있는 전각을 본다. 게을러지려 할 때, 혹은 쉬운 길이 없나 한눈 팔며 두리번거릴 때 전각은 여지없이 나를 닦아세운다. 사물의 나무람은 어쩌면 생명 가진 그것보다 강도 높은 질책을 요구하는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돌을 깎고 쪼아 평생의 화두로 새겨 놓은 그 정신의 무게가 때때로 나를 중압감 속으로 밀어뜨린다. 그러나 나는 매번 전각을 목도한다. 一生香(일생향)이 어찌 하루아침이랴! 향내 나는 사람이 먼저 되어야 향기나는 글도 불러올 수 있으리라. 그러고 보니 글은 ‘쓰는’ 게 아니라 ‘짓는’ 것이라는 연암의 가르침 또한 ‘일생 향’과 다르지 않음이 이제야 어렴풋하다.

불혹의 한가운데를 나는 지금 지나는 중이다. 어쩌면 겨울날 냉기 서린 한길에서 서성이는 이방인처럼 쓸쓸하고 막막한 시간을 견디는지도 모르겠다. 허나 우리 삶이 비록 비루하고 황막하더라도 사람의 향내를 막을 수는 없는 일이다. 책상 위 전각은 오늘도 시종일관 내게 요구한다. 평생을 향기롭게 살아가라고, 그리하여 글에서도 향기를 불러오라고.  

 

작성자소설가 이서진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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