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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각, 다른 결론

[조원희의 법으로 세상보기]

본문

제가 하는 법률업무의 상당 부분은 ‘설득’하는 일입니다. 민사사건에서는 판사를 설득해야 하고, 형사사건에서는 검사나 경찰을 설득하는 일을 합니다. 분쟁에 이르지 않는 다양한 사건들에서도 의뢰인이나 상대방을 설득하는 것이 저의 일입니다.

그런데 ‘설득’이라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 때는 사안에 대해 전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설득이라는 일은 전제가 되는 사실이나 논리에 대한 합의나 공감을 통해서 가능하게 되는데,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면 제시된 사실이나 논리 자체를 전혀 다르게 해석하기 때문에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저의 생각을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얼마 전 많이 논란이 되었던 표절 사건을 맡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이 사건을 진행하면서 가장 염려되었던 것은 과연 법원에 음악 창작의 과정을 어떻게 이해시킬 것인가였습니다. 자신이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에서는 종종 추측을 통해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추측이 빗나간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항간에 떠도는 소문이 이 사건에 관여되지 않도록, 음악 창작이라는 매우 어려운 과정이 단지 몇 개의 음표를 통해 추정될 수는 없는 일임을 잘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제 노력이 부족했는지 저의 설득은 실패하였고 결국 패소 판결문을 받게 되었습니다. 물론 처음에는 왜 이런 결론이 나왔는지 불만스러웠지만, 차츰 지난 과정을 복기해 보며 이 사건을 보는 법원의 ‘시각’을 바로 잡아 주지 못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와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내가 주장하는 사실과 논리는 오히려 내 주장을 뒤집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차에 얼마 전 대전지방법원에서 앞을 전혀 보지 못하는 시각장애우가 목욕탕 이용을 거부한 업주에 대해 제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 원고 패소의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판결의 핵심 쟁점은 차별에 ‘정당한 사유’가 존재하는지 여부였습니다.

법원은 공중목욕탕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고 시각장애우가 목욕탕 내에서 사고를 당할 위험성이 높다는 객관적인 자료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시각장애우가 목욕탕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데 업주에게 이러한 도움을 제공하라고 부담 지우기 어렵다는 점, 그렇다고 업주에게 별도의 추가 인력을 고용하라고 요구할 수도 없다는 점, 혹시라도 사고가 발생하게 되면 업주가 그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점 등을 근거로 손해배상청구를 기각하였습니다.

또한, 법원은 결국 장애우 전용 목욕탕이나 활동보조의 확대를 통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 아니냐는 입장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판결을 보면서 법원이 너무 경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욕탕 업주가 장애우의 목욕을 위해 약간의 배려를 해 주는 것에 왜 법적인 근거까지 있어야 하는 문제인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식당에서 미리 아이용 의자를 비치해 두고 제공하는 것이나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이 버스를 타려고 하실 때 먼저 올라 자리에 앉으시도록 기다려 주고 배려해 주는 것과 같이 법률에 규정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 사회가 수용하고 있는 정도의 배려를 왜 장애우에게는 인정해 주지 못하는지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시각장애우에게 목욕탕 입장을 위한 안내를 해 주고 목욕탕 이용에 약간의 도움을 주는 정도는 당연히 필요한 거라고 선언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것이 시각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법원이 이러한 법적 책임이라는 엄격한 잣대만을 가지고 판단한 것에는 여전히 ‘인권’이나 ‘장애’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나의 삶 속에서 이해되지 않을 때 객관으로 가장된, 그리고 진실이라고 검증된 적이 없는 기준으로 도피하기 쉽고, 그때 우리가 가진 전문 지식은 그러한 기준을 합리화하는 데 오용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열린 마음과 자세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위 판결이 항소심에서 바로잡히고, 우리 사회가 장애우에 대해 견지해야 할 기준이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작성자조원희 변호사 (태평양 법무법인 공익위원회 장애인팀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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