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을 넘어 함께 그리는 세상을 꿈꾼다 > 대학생 기자단


공존을 넘어 함께 그리는 세상을 꿈꾼다

일본 장애인 공동체 다큐멘터리 ‘왓빠이야기’

본문

   
 

안녕하세요. 저는 다큐멘터리 왓빠이야기를 만든 심민경입니다. 저는 2008년에 처음 ‘왓빠’에 갔습니다.

거기서 일하는 치하루가 제 친구였는데 나고야에 초대해주었습니다. 처음 가보는 일본에 조금은 ‘익숙한’ 장애인을 만나러 갔습니다. 사실 저의 언니가 지적장애 1급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는 지적장애나 장애인에 조금 익숙하지 않나 싶습니다.

처음 간 나고야에서 된장공장도 가보고, 왓빠에도 손님처럼 갔습니다. 왼쪽에 큰 나무가 있는 빵 공장은 입구부터 빵 냄새가 났습니다. 들려오는 소리는 여느 빵 공장과는 달랐습니다. 그리고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만으로도 단번에 장애인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릴 적 가본 언니의 특수학교 앞에서 나던 소리라서 익숙했어요.

   
 
마도카씨가 나와서 알던 사람처럼 제 손을 덥석 잡았습니다. 이가 빠지고 흰 머리까지 난 그는 지적장애인으로, 여러 지병도 있고 말을 못합니다.

마도카씨는 일을 잘 하지 않습니다. 소위 농땡이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루 여덟 시간 작업장을 지킵니다. ‘뭐라도 하면 덜 지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하는 게 별로 없습니다. 이미 목이 상할 대로 상한 작업장 대장 오쿠라씨가 열댓 번 불러야(빵 공장 ‘수즈랑’의 사람들은 같은 말을 몇 번 씩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촬영한 테이프를 보며 알게 됐습니다) 쟁반 한 개 나르고 30~40분 휴식하거나 공장의 집기를 건드리거나 노래를 하거나 뜀을 뜁니다. 이 영화를 보고 그의 어머니는 노동하는 모습이 많이 다루어지지 않았다고 하셨지만, 제 생각엔 별로 노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곳이 자신의 직장이라는 것을 아는 듯합니다. 언제부터 그렇게 알았을까, 그게 저는 그저 신기할 따름입니다.

빵으로 먹고 사는 그들에게 마도카씨의 농땡이가 정당한지는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빵 공장의 한구석에서 ‘바쁘게 일하는 사람들을 대신해 쉬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래도 그는 자신의 세계에 깊이 빠져있는 듯 보이지만, 언제든지 피로감 없이 새로운 사람을 기쁘게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것도 딱 자기 좋을 만큼 만요.

많은 이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왓빠의 왓빵은 다양한 경로로 나고야 시민에게 전해집니다. 판매는 여러 방식으로 이뤄지는데 왓빵을 파는 독립된 매장은 없습니다. 아침에 나가는 빵을 더 이른 시간에 굽기가 어려웠대요. 그래서 대부분의 판매는 외부판매로 이뤄집니다.

   
 
왓빠 회원들이나 생활공동체에는 좀 더 싸게 공급되고요. 외부판매는 주로 요시미씨가 담당하는데 하루에 가는 집만도 5~6곳이 넘습니다. 나고야의 이곳저곳에 흩어진 판매처는 주로 요시미씨의 지인들입니다.

사람 만나는 걸 좋아하고 특히 걷는 것을 좋아하는 요시미씨가 없다면, 아마 왓빠의 수익이 크게 줄지도 모릅니다. 먼 거리를 거의 걷거나 버스 지하철을 이용해 다니기 때문에 많이 팔지는 못하지만, 왓빠의 빵 판매 이후 지속적인 판매가 요시미씨를 통해 이뤄지지 않았나 싶을 만큼 고정 고객이 많습니다. 그것도 매일 다른 곳을 다니며 팔기 때문에 서로의 소식이나 건강, 생활을 챙기는 좋은 친구가 되고 있습니다.

영화에는 등장하지 않았지만, 함께 지내면서 요시미씨의 생일 파티에 갔습니다. 요시미씨가 원하는 장소인 마리온이라는 생활공동체에서 함께 식사했어요. 초대받은 이들은 신발과 가방, 티셔츠 등의 선물을 사왔는데, 전부 핑크색이었습니다. 요시미씨가 핑크를 좋아하기 때문이라더군요.

저는 판매하러 다닐 때 편하게 다니라고 운동화를 사주었는데, 요시미씨가 신을 신자, 오쿠라씨가 신발 앞을 꾹꾹 눌러보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요시미씨는 그날 무척 흡족해하며 사진을 찍었지만, 받은 선물들을 꽤 아끼는지 생일 이후에는 입은 모습을 보기 어려웠습니다.

생활 공동체는 17곳 정도 된다고 합니다. 나고야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고, 맨션이나 주택을 빌려 생활하고 있습니다. 생활하려면 밥도 해야 하고 세탁 청소를 해야 하는데, 스스로 하지 못하는 장애인은 대부분 헬퍼가 돕습니다.

   
 
밥하는 헬퍼, 출퇴근하는 헬퍼, 같이 자는 헬퍼가 따로 있고, 장애인 한 명당 매일 헬퍼가 바뀌다시피 하니 거기서 지내는 비장애인은 생활이 좀 정신없어지기도 합니다만, 그런대로 적응해야 합니다. 정말 낯선 사람들과 생활공간에서 함께 있는 것이 익숙해져야 살 수 있어요.

제가 있던 후미라는 공동체도 24시간 헬퍼가 필요한 소우씨가 있었는데, 거의 매일 헬퍼가 바뀌었습니다. 그것에 대해 같이 살던 제가 매일 새로운 사람이 오는 것을 불편해하니 나이가 많으신 오자와씨가 말씀하십니다. 그럼 곁에서 보조를 받는 소우씨는 어떻겠냐고…….

“소우씨?” 아마도 별로 힘들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항상 오후로(입욕)를 할 때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든요.

영화에 등장하는 생활 공동체 텐진야마의 구성원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여행에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던 다코씨, 나고야 3선 시의원이자 휠체어 장애인 마코토씨(마코짱이라고 불리는, 히로시에게 3번 채널을 청하던!)와 그의 부인 모리와키씨, 수즈랑에서 일하는 아케미 신문지를 가장 좋아하는 히로시 등이 있습니다.

이곳 역시 아케미씨의 헬퍼가 매일 오고, 히로시는 식사만 마련되어 있으면 다른 생활은 스스로 합니다. 다만 산더미같이 거실에 쌓아놓는 신문지는 히로시씨가 무척 좋아해서 텐진야마 식구들이 어쩔 수 없이 내버려 둡니다.

   
 
잠들기 전에 거실의 신문을 방으로 옮기지만 아침에 보면 거실은 히로시가 신문을 찢어 놓아 엉망이 돼 있곤 하고, 그걸 깔끔하고 집안일을 잘 돕는 아케미씨가 거의 치웁니다.

저는 처음에 이런 왓빠에 갈 때, 촬영을 흔쾌히 허락해준 사이토상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단 비장애인으로서 이런 단체를 꾸려 지금까지 일구어 온 뚝심이 대단하게 여겨졌고, 나고야 장애인 운동의 산 역사를 본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입을 통해 들은 숨은 공로자는 다른 사람이었고, 장애인이었습니다. 물론 모두가 애써 일군 공동체이지만 ‘코짱’이 없으면 왓빠는 가다 넘어졌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습니다.

쇼나이 상점에서 일하다가 지병으로 입원한 장애인 코짱은 아이를 좋아하고 사람을 좋아해, 왓빠를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엄살이 심하고 역시 일을 싫어해서 정작 판매일도 대충하다 말거나 하지만, 그가 없었다면 지금의 왓빠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왠지 의미심장하게 들렸습니다.

방문객에게 반드시 케이크를 사오라고 하고 다리 예쁜 여자를 좋아한다며 분란을 만들고(저보고도 만나기 전에 다리가 예쁘냐고 물어 당황케 한), 맨날 아프다고 엄살을 부리는 그가 대체 뭘 봐서 왓빠의 기둥인 걸까 싶었지만, 그런 그를 보면 그냥 하는 일을 그만둘 수 없었다고 합니다. 이해가 갑니다. 그가 있을 곳이 없어지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결코 일이만만치는 않을 것입니다. 일단 구성원이 같은 임금을 받고 그것이 생활 유지가 되려면 어느 정도의 생산성과 수익을 확보해야 하는데, 중증장애인이 많을수록 생산성은 떨어지고 더구나 코짱 같은 장애인에게 노동의지를 불러일으키기란 하늘의 별 따기일 것입니다.

일할 수 있고 성실한 사람, 왓빠 공동체를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더 열심히 일하겠지만, 사람에겐 한계가 있고 자원은 제한되어 있으니 종종 문제점으로 등장하는 것들이 인간관계, 극한 피로 마음의 긴장 등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특히 일이 몰리는 사람은 몰리고, 수즈랑 대표 오쿠라씨는 주 7일을 일하는 등의 비인간적인 상황에 놓이기도 합니다. 일을 다 함께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해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상황이 아닌 듯합니다.

그러나 어렵다 할지라도 과연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그리고 어떻게 살면 행복할지를 한 번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마도카씨가 늘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대체 그는 왜 한결같은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까. 그리고 그에게 초등학교 교육이 주어졌기에 그가 늘 그 좋아하는 동요를 흥얼거리듯, 지금 그가 40대로서 이 직장이 없다면 그는 나고야라는 사회에서 과연 어디에 서 있을까, 좁은 그의 방 한 칸밖에 더 있을까. (그 방 한 칸마저도) 사회 안에 만약 그가 장애인이기 때문에 방에서만 사는 조건에 놓인다면 바깥 생활을 하는 다른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까. 행복해도 되는 걸까. 그런 문제를 함께 생각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장소가 필요하다고 합의가 된다 할지라도,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는 않습니다. 영화 속에서 질문하는 여성처럼 ‘노동의 정의’,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 함께 일하는 것인가, 함께 일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말을 걸면서 서로의 존재를 일 안으로 끌어들이는 것, 그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합의해야 할까, 합의한다면 어떤 규칙을 만들어야 하는 걸까. 소외감 없이 한 공간에서 공동의 목적으로 시간을 쓴다는 존재감을 어떻게 나눌 수 있을까. 동시에 왜 일이어야 할까.

온종일 노는 것이 아니라 왜 일로서 한자리를 줘야 할까. 주는 돈이 아니라 왜 능력도 부족하다 여겨지는 장애인이 ‘버는 돈’으로 스스로 생활하자는 걸까. 네, 그것까지 함께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그래서 왓빠의 이야기, 그리고 왓빠의 고민은 비단 왓빠의 것만이 아닐 것입니다. 차 한 잔을 마셔도 공간과 시간이 필요하듯 함께 일하며 산다는 것, 장애인과 중증장애인과 함께 지내는 것, 일하는 것은 아주 많은 기획과 지금과는 다른 방식의 시도이자, 어쩌면 아예 생각이 통째로 바뀌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왜 그런 모습이 되면 좋을지를 이 영화를 통해 나눠볼 수 있다면, 그 시작점에 이 영화가 놓일 수도 있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감사합니다.

 

작성자글/사진 심민경 (‘왓빠이야기’ 제작/연출/감독)  cowalk1004@daum.net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