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발달’장애인들(?!)이여, ‘ ’를 각성하라 > 지난 칼럼


‘비발달’장애인들(?!)이여, ‘ ’를 각성하라

[김형수의 세상보기]

본문

“장애인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이 존중되는 권리를 출생하면서부터 갖고 있다. 장애인은 그 장애의 원인 또는 정도에 관계없이 같은 나이의 시민과 똑같은 권리를 갖는다.” -장애인의 권리선언 제3항
(1975년 12월 9일 제30차 UN 총회에서 결의)

 

누가 ‘발달’된 인간인가?

필자는 올해 발달장애인 당사자 관련 연구와 교육 활동을 다섯 가지나 진행하고 있다.

경기도 장애인종합복지관 가온누리 대학에서 20대 청년들을 대상으로 의사소통 기술 심화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한국발달장애인가족 연구소에서, 작업장에서, 양천장애인종합복지관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분들과 함께하는 권리 옹호 프로그램, 회사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과 발달장애인이 쉽게 이해하는 방송 매체 모니터링 프로그램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특수교육 전문가도 아니요, 가족이나 친지 중에 당사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굳이 그들과 연관성을 찾자면 본인의 공식 아이큐가 정신지체 판정이 가능한 경계선급(?)이란 정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본인이 작년에 이어 계속 지적 자폐성 장애인 청년들, 성인들과 교류하는 것은 기존의 특수교육이나 신경 정신과 관련 전문가 부모들과 전혀 다른 목표를 추구했기 때문일 것이다.

본인의 목적은 그들을 교육하거나 재활시키는 것에 있지 않다. 나의 목표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 당사자들과 대화하고 소통하고 그들의 표현을 수용하고, 그래서 그들을 이해하며 그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대로 ‘나’를 이해시키는 것에 있다. 왜냐하면, 위에서 진행하는 모든 프로그램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분들의 생각과 의견, 그리고 그분들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 그분들과 필자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 코드와 기제를 아직 충분히 ‘발견’하지 못했다. 마치 컴퓨터란 기계와 내가 직접 소통하기 위해서는 도스나 윈도, 키보드, 마우스, 모니터 등의 ‘인터페이스’ 등이 손쉽게 개발·발달해 내가 충분히 숙련되어야 하는 것처럼. 나는 아직 그분들과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만큼 나의 직관과 감각과 인터페이스를 발달시키지 못했고 숙련되지 못했다. 누구의 책임이자 능력인가?

 

   
▲ 지난 4월 9일 한국발달장애인가족연구소(이하 한발연)는 북부장애인종합복지관 대강당(서울 노원구)에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교류를 위한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성인발달장애인 권리옹호 교육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를 결정하고 프로그램을 주도하는 최소한의 고민이기도 했다. 앞으로 8개월간 발달장애인 당사자가 주축이 돼 권리옹호 교육(주거권·교육권·노동권 등)과 토론 등의 구체적 실천 프로그램을 통해 발달장애인의 당사자주의를 구현할 계획이다.

그들을 위한 민주주의는 아직 없다

그래서 나와 세미나를 하는 지적 자폐성 장애인들은 나와 소통할 의무와 책임이 없다.

나를 이해하고 수용해야 할 이유가 없다. 오로지 세미나 진행자인 내가, 그들을 이해하고 수용하고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나는 그들의 강의 평가에 따라 강의료를 받고 고용 계약을 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갑과 을에 관계에서 ‘을’ 위치에 있는 내가 실질적으로 갑의 관계에 있는 ‘그들’에게 장애 등급을 이유로, 주관적이고 비과학적인 아이큐 검사의 결과로, 언어 사용과 정서적인 유대감이 모자랐다는 이유로 ‘그들’에게 ‘발달’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교육하고 주입하고 강제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그들을 발달장애인이라고 부르는 것도,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라 부르는 것도, 발달이 지체된 사람이라고, 심지어 영혼이 맑디맑은 사람이라고 부른 것도 나는 그분들에게 물어보지 않았다. 갑의 관계인 그들에게 어떤 이름으로 불러야 하는지 을의 관계인 필자는 동의를 구하지 못했다.

장애인복지법에 발달장애인이란 낱말이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란 말로 개정되었을 때도 당사자인 그분들에게 그 말이 어떤 느낌인지, 좋은지 싫은지 어떤지 당사자에게 인터뷰를 해보거나 설문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최근에 농아인 분들이 ‘벙어리’란 용어를 거부한다고 공식적인 의견을 밝힌 바 있는데 가까운 시일 내에 발달장애인 분들이 우리의 입회 없이, 우리의 참여 없이 우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이름 붙이는 것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대사회적으로 표명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필자와 우리는 모두 발달장애인에게는 제국주의이며 파시즘이다.

요즈음 장애계의 가장 큰 화두가 발달장애인법 제정인데 그 과정에 전문가, 교수, 부모, 시설 운영자들은 적극 참여하고 있지만, 정작 시설에서 생활하시는 발달장애인 분들에게 어떤 법이 얼마나 필요한지, 그들의 언어와 의사소통 방법으로 의견을 구해 본 적이 있는가? 그럴 생각이나 의지라도 있는가?

이 글은 읽고 있는 독자들이 ‘어떻게 발달장애인들이 법을 이해하고 의견을 표명하지’라며 의구심을 갖는다면 나는 이렇게 답해 주고 싶다. “그럴 의심할 시간에 발달장애인이 이해하고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설문지나 법 해설서나 개발하셔요”라고.

사실 발달장애인분들의 직접 참여 없이 이루어지는 작금의 법 논의나 보건복지부의 발달장애인 이원센터 설립 연구들은 그 가치·이념과 비교하면 실천과정은 퇴행적이고 모순적이다. 발달장애인의 지적 능력이 그렇게 의심스럽다면, 발달장애인 중에서도 상위 1%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 달라. 비장애인 모두가 서울대를 가지 못한다고 우리는 모두 자신의 능력을 제한하지는 않는다.

 

   
 

지적 자폐성 장애, 발달장애는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발달장애인은 없다. 발달장애인을 이해하고 소통하는 인터페이스와 능력이 없는 우리와 필자와 우리 사회가 있을 뿐이다. 얼마 전 2005년부터 6년에 걸쳐 일산지역 거주 7~12세의 모든 아동을 대상으로 시행된 자폐 스펙트럼 장애 발병률 연구 결과(예일대 의대 김영신 교수)에 의하면, 고양시에 거주하는 7~12세 아동 5만 5천 명 가운데 2.64%가 자폐증 증상을 보인 것으로 조사됐다.

그동안 자폐증은 심각한 의사소통 부진이나 정신 발달장애뿐 아니라 아스퍼거 증후군 같은 가벼운 증세를 모두 포함하는 광범위한 질환으로, 유병률은 세계적으로 1% 정도로 추정되어 왔기 때문에 3%에 육박하는 출연율은 의외의 결과다. 그만큼 장애 발견에 대한 시스템이 부실한 것도 있겠지만, 그만큼 우리 사회의 의사소통 구조가 복잡하고 많아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오늘날의 자폐 스펙트럼 진단체계로 보면 과거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은 모두 자폐성 장애인으로 분류되었을 테고, 학교 부적응 학생들도 바로 학교라는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니까. 태초부터 지적 자폐성 장애인은 애초부터 발달이 지체되고 소통이 부재된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이 인간의 발전 속도, 인간의 적응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변화한 것뿐이다.

그래서 발달장애는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준일 뿐이다. 그들의 기준에서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가지고 있을 뿐이다. 지금 필자의 지면에서도 그들이 발달장애인이었다가, 지적 자폐성 장애인이었다가, 그들이라 불리기도 한다.

내가, 우리가 그들에게 어떤 이름이 좋은지 물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액셀도 못하고 카카오톡도 못하는 대학교수는 이 스마트 시대에 발달지체, 학습부진이라 부르면 안 되는가? 필자는 문자를 잘 못 보내는 아버지와 나날이 소통의 부재와 단락을 느낀다. 상대적인 기준을 갖고, 절대적인 학력 평가를 일삼고, 사람을 평가하고, 한계 짓는 것이 정말 비(非)발달스런 일이다.

다시 한 번 묻자. 인간 대뇌의 2%도 그 비밀을 못 밝혀내면서 아이큐 지수 하나로, 산업화 이후 학교 시스템 하나로 인간을 평가하는 것이 정말 발달한 판단인가? 누가 발달장애인인가?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사무국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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