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마스떼, 네팔 > 지난 칼럼


나마스떼, 네팔

[김민혁의 낯선 당 낯선 사람들]

본문

“인생은 앞만 보고 가야 한다.”

삶에 후진이란 없다. 시간은 계속된 전진의 연속이다. 0.001초의 찰나라도 거꾸로 가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무리 뒤돌아 울고불고 애쓰며 후회해 봐도 어제는 내일이 될 수가 없다. 결국, 다시 돌아갈 수 없을 바에야 뒤돌아보지 않고 가는 게 현명하다. 20대의 나는 후진하지 못하는 줄 알면서도 꽤 많은 시간을 뒤돌아보며 울었던 것 같다.

‘열심히 앞으로 가자. 옳은 길인지, 맞는 길인지 확인하며 지체할 바에야 차라리 바람을 즐기며 나는 앞을 향해 전속력으로 나가겠다. 남들이 생각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그런 곳이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2012년 3월, 나는 이런 결심으로 네팔행 비행기에 올랐다.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도착한 다음 날이 ‘세계 여성의 날’이라서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여독을 풀 수 있었다. 사실 여행의 피곤함이나 낯섦, 물갈이 같은 것은 나에게는 없었다. 2년간 인도에 살았던 나에게 네팔은 인도와 매우 닮아서 마치 엄마 나라에 다시 돌아온 것처럼 편안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난 나는 주변을 둘러보고 산책도 할 겸, 두 다리만 믿고 집을 무작정 나섰다. 그리고선 신 난 아이처럼 싱글벙글 카트만두 이곳저곳을 비집고 다녔다.

계획 없이 만들어진 구불구불한 차도. 그 위를 달리는 구닥다리 차들. 그 낡고 닳은 작은 차량에 몸을 구겨 넣은 순박하고 평범한 사람들. 먼지 쌓인 과자 봉지와 알 수 없는 가정용품들을 파는 상점들. 헤지고 거뭇한 옷을 입고 해맑게 웃으며 스쳐 지나가는 남자들.

이렇게 구불구불한 골목을 지나 카트만두 중심가로 접어드는 길에 다다르면 꼭 건너야 하는 ‘바그마티’라는 다리가 있다. 이 다리 위에는 최근 부쩍 늘어난 차량과 오토바이로 가득 차 있었다. 시끌벅적거리는 다리 아래로는 먹물보다 시꺼먼 강물이 흐르고, 강 둔치에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강물에 떠밀려 내려온 쓰레기들 틈에서 살고 있었다.

다리 밑에서 헐벗은 아이들이 다리 위로 걸어가는 나를 발견하고는 잔돈을 요구했다. 운 좋게 물건 사고 남은 잔돈이 주머니에 있어서 다리 아래로 던져주었다. 빈곤의 밑바닥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나에게 낯선 장면은 아니었다. 인도에서 지냈던 2년은 이런 빈곤에 익숙해지기에 충분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빈곤의 처참함에 면역된 나의 신경을 깨운 것은 바로 그다음 장면이었다. 아직도 속이 메스껍고 가슴이 울렁거리게 하는 그 첫인상 때문에 네팔에 대한 나의 가슴 아픈 사랑은 시작되었다.

   
 

가난의 그늘에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 뒤로 한 마리 개가 보였다. 가난한 나라의 개들은 그 나라의 가난한 사람들만큼이나 가난하다. 비록 나는 멀리 있었지만, 그 정도 거리에서도 개가 삐쩍 말랐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보통 거리에 사는 개들은 먹을 것이 없을 때는 특별히 움직이지 않는데, 그 개는 강가에서 먹을 것이 있는 듯 이리저리 냄새를 맡으며 움직이고 있었다.

‘저렇게 더러운 강에 먹을 것이 있을까?’ 궁금해진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 개의 움직임을 자세히 지켜보았다. 개가 얕은 물가에서 건져 낸 것은 어릴 적 가지고 놀았던 아기 모양의 인형 같은 것이었다. 그 장면을 의아하게 여긴 나는 눈을 크게 뜨고 다시 자세히 살펴보았다. 안타깝게도 그건 인형이 아니라 태어나자마자 버려진 아기의 시체였다.

나는 순간 멍했다. 도대체 이곳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엄마의 태 안에서 세상에 나오자마자 더러운 강물에 버려진 아기가 길거리 개의 먹이가 되는 경악할만한 광경은 네팔에 온 나에게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이 되었다. 지금도 그 장면을 떠올리면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찾아 네팔에 첫발을 내디딘 내 눈앞에 왜 첫날부터 이런 믿기 어려운 광경이 펼쳐진 것일까. 꽤 먼 거리의 구불거리는 길을 걸어 숙소로 올라가는 동안 나는 버려진 생명에 대한 안타까움과 가난의 잔혹함이 느껴져 마음이 너무 아팠다. 내가 믿는 신은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민혁아 네가 품어줘야 하는 나라는 바로 이런 곳이란다. 너의 눈물이 이런 사람들 때문에 많이 쏟아져 나올 거야. 이제 천천히 준비하렴. 너는 앞으로 강해져야 해! 너는 이곳에서 할 일이 아주 많아. 그래서 너에게 새로운 나라에서 사람들이 겪는 물갈이도 안 하게 하고 현지인과도 친숙하게 잘 지낼 수 있는 탁월한 친화력도 주었단다.”

이렇게 첫 신고식을 네팔에서 끔찍하게(?) 치른 나는 국제개발을 통해 세계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는 일을 시작했다.

 

작성자김민혁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국제개발팀 간사)  walktour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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