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인화학교사건 판결을 환영하며,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 촉구한다 > 지난 칼럼


[논평]인화학교사건 판결을 환영하며,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 촉구한다

장애여성공감, 인화학교대책위, 도가니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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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화학교사건 판결을 환영하며,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성폭력피해자들이 더 이상 고통과 눈물로 얼룩지지  않게 할 현실성 있는 대안 마련을 촉구한다

 

2012년 7월 5일 우리는 비로소 설움과 기쁨이 뒤섞인 눈물을 흘렸다. 영화 <도가니>의 실제 사건인 인화학교(청각장애인 특수학교) 및 인화원(청각장애인 생활시설) 성폭력 사건은 2008년 당시 국가권력으로부터 ‘무죄’, ‘무혐의’, ‘집행유예’ 및 ‘항소기각’ 등으로 가해자들이 다 풀려나, 다시 인화학교와 인화원으로 복직하는 최악의 상황으로 귀결됐다.

그런데 작년 <도가니>의 열풍으로 전 인화학교 행정실장 김모씨가 청각장애학생들에 대해 성폭력, 상해(2006년 당시 증거불충분으로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 받음) 및 폭행을 한 혐의에 대해 광주지방법원 형사 2부가 사건발생 7년 만인 2012년, 징역 12년의 중형을 최종 선고한 것이다. 본 판결로 마침내 인화학교 사건의 진실이 조금이나마 밝혀지게 됐고, 피해자들의 치유과정에 뒤늦게라도 힘이 보태지게 됐다. 이에 이 사건을 오랫동안 지켜보며 연대하고, 피해자들과 공감하며 지원해온 우리들은 판결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은 그간 우리나라에서 끊임없이 반복돼 온 장애인성폭력사건의 핵심적 법적 쟁점을 고스란히 포함하고 있다. 첫째, ‘장애와 그로인한 항거불능 상태’에 대한 해석의 문제이다. 2008년, 다수 성폭력가해자들이 법의 처벌망을 피해갈 수 있었던 이유는 (구)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8조에서 정한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대해 재판부가 매우 편협하고 엄격하게 해석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판결을 한 광주지방법원 형사 제10부는(광주지법 2006고합496 판결) “피해자가 청각장애 2급이고, 정신능력이 동일연령의 ‘평균 하 수준’인 점은 인정되나, 지능상의 현저한 장애양상은 없는 것으로 보이는 점, 피해자는 화장실 안에서 가해자가 바지 지퍼를 내리려고 하자 싫은 표정을 지으며 수화로 ‘싫다’라고 하였고 …” 등의 예시를 통해 “이 사건 당시 피해자는 신체 또는 정신능력이 정상인에 미달하기는 하였으나 그로 인하여 반항이 절대적으로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며 무죄판결의 근거를 서술하였다. 

둘째, 장애인성폭력피해자의 진술 신빙성 판단의 문제이다. 이번에 판결이 난 사건이 2006년 당시 혐의없음의 불기소 처분을 받은 후 2011년 재수사를 통해 결국 공소가 제기되었지만,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유일한 직접증거는 지적장애와 청각장애를 가진 피해자의 진술 뿐이었다. 그러나 사건 고소 직후 인 2005년 경찰 조사에서부터 2012년 법정에서 증인으로 서기까지 총 6회로 이루어진 피해자의 피해사실 진술은 피고인측으로부터 그 일관성과 신빙성을 심각하게 탄핵받는 것이었다.

본 재판부도 판결문에서(광주지법 2012고합24 판결) “(6회의 피해자) 진술은 피해 일시 및 수법, 횟수, 경위에 관한 진술의 일관성이 결여되거나 세부적인 상황에 관한 표현이 과장되어 있는 등 그 신빙성을 의심케 하”는 사정들이 존재해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을 수 있는지가 이 사건에서 가장 핵심 쟁점이 된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간 장애인 성폭력피해자를 지원하는 시민사회 단체들은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통념과 지적장애 등 정신적장애인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장애인 성폭력범죄 가해자 처벌을 힘들게 하고 법률 해석의 오류를 내고 있다는 것을 끊임없이 문제제기 왔다. 장애인성폭력피해자가 ‘성교육을 받은 적이 있다, 성경험이 있다, 혼자서 버스를 탈 수 있다, 특수학교가 아닌 일반학교에 다닌다, 성관계에 대해 싫다고 말했다, 옷을 벗으라고 하자 거부했다’ 등 성경험, 성지식, 일상생활능력, 학력, 거부의사의 표현과 같은 요소들을 모두 법원에서 ‘항거불능 상태’를 부정하는 근거로 사용되는 문제가 있었다.

이에 대해, 현장에서는 성관계의 의미를 전혀 모르거나 혼자서는 일상생활이 어려운 정도의 중증장애는 아니지만 가해자의 입장에서는 별다른 강제력을 사용할 필요도 없이 수월하게 성폭행할 수 있는 대부분의 장애인성폭력사건은 적용할 조항이 없게 된다는 점을 비판했다. 그런데 ‘울산사건’으로 잘 알려진, 2007년 대법원 판결(2005도2994 판결)은 ‘장애로 인한 항거불능’ 상태의 판단에 어느 정도 변화를 주는 획기적 계기가 되었다.

해당 판례는 피고인이 별다른 강제력을 행사하지 않고 피해 지적장애여성이 별다른 저항행위를 하지 아니한 사안에서, “사실관계에서 나타난 피해자의 지적능력이나 문제해결능력, 지적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특성, 피고인의 간음행위 당시 피고인 및 피해자의 행위 내용과 태도, 그리고 간음행위가 이루어질 무렵의 피해자를 둘러싼 제반 환경 등에 비추어 보면, 피해자의 정신상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피고인에 대하여 그 거부 또는 저항의사를 실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하게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할 것”이어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며 유죄판결을 내렸다.

이후 본 판례를 근거로 현장에서는 장애 자체 뿐 아니라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저항을 할 수 없는 사회문화적 상황까지 ‘항거불능 상태’ 판단에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또한 특히 정신적 장애인 피해자의 성폭력사건에서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에 대한 판단 부분은 늘 문제가 되고 있다. 현장에서는 장애특성 상 의사소통이나 사건의 선후관계, 인과관계, 추상적 개념 이해 등에 어려움이 있는 정신적 장애인이 진술의 일관성과 명확성을 유지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지적해 왔다.

그리하여 장애인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을 탓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수사․재판 상 장애인에 대한 이해 없음으로 인해 조사가 반복되고 의사소통의 오해가 생기는 문제를 비판했다. 또한 정신적 장애를 가진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되지 못하다거나 명료하지 못하다는 이유만으로 쉽게 그 신빙성이나 증명력을 배척하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고, 그 진술의 내용과 함께 피고인과 피해자의 관계, 진술이 이루어진 시기, 장소, 진술의 경위, 피해자의 지적 능력, 기타 주변 정황 등 제반 사정을 모두 종합하여 신중하게 그 진술의 신빙성이나 증명력 유무를 판단하여야 할 것을 주장해왔다. 
 
이번 사건은 가해자가 범행 시 피해자의 손발을 끈으로 묶고 강간하는 등 행위수단으로 폭행․협박이 명확하게 있었기 때문에 형법 상 강간치상 죄가 적용되어, 피해자의 ‘항거불능 상태’를 요구하지는 않았다. 다만 핵심 쟁점이 된 피해자 진술의 일관성과 신빙성 판단에 대해서, 재판부가 그간 현장에서 문제제기가 됐던 부분들을 적극 수용, 오류를 바로 잡으려 하였다는 점에서 그 판결의 근거는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판결은 영화 <도가니>가 화제가 돼 여론의 집중 관심을 받고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폭발한 결과임을 부인할 수 없다. 아직 가야할 길은 멀다. 우리사회 수많은 장애인성폭력피해자에 대한 국가와 여론의 관심이 단지 이번 인화학교 사건으로 끝나서는 안 될 것이다. 국가권력으로부터 본 사건이 무혐의 처분을 받은 후, 몇 년 만에 수사 재개돼 동일한 국가권력으로부터 마침내 유죄판결을 받기까지, 이러한 과정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우리사회가 진지하게 성찰하고, 이러한 과오가 되풀이 되지 않게 해야 한다.

특별히 앞으로 장애인성폭력범죄 해결에 있어서 필요한 근본적 개혁입법과 제도적 정비를 위해 이제부터 정부와 국회, 시민사회가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 시급한 것은, 2011년 10월 개정된 성폭력특례법(일명 ‘도가니법’)이 장애인성폭력사건의 특수성과 처벌가능성을 얼마나 담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반성적 성찰과 대안 마련이라 할 수 있다. 장애인성폭력범죄에서 간음에 이르기 위해 특정 행위수단을 요하지 않는 경향을 띤다는 사실은 현장에서 오랜 시간 한 목소리를 내온 부분이다.

그러나 개정 성폭력특례법은 폭행․협박, 위계․위력과 같은 명백한 행위수단 혹은 심신상실․항거불능이라는 고도의 장애상태 입증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법이 처벌형량을 지나치게 강화 해 유죄입증을 위해 엄격하게 증거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피해자의 진술과 증언이 유일한 증거인 대다수 장애인성폭력사건의 특수성 상 피해자에게 입증책임을 더 강하게 요구한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다.

또한 인화학교 성폭력사건이 억울하게 묻히지 않고 오늘의 성과에 이르기 까지, 여론의 냉소적인 반응에도 불구하고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사건을 이슈화 시키고 오랜 시간 피해자들과 공감하고 지원해온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 등 광주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의 노고는 이루 말할 수 없다. 특히 매우 후진적 수준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장애인성폭력피해자를 위한 지원체계 안에서 대책위 등 지역 활동가들이 피해자지원에 헌신한 것은 절대 잊히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를 거울삼아 향후 장애인피해자의 특성에 맞는 긴급피해자 쉼터 및 장기적 자립생활 지원 등 현실적 피해자 지원체계 마련을 위한 정부의 노력이 이어져야만 한다.

우리들은 앞으로 본 성폭력사건의 법적 해결과 국가 상대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이르기까지, 인화학교 피해자들과 연대하며 끝까지 지켜볼 것이다. 또한 앞으로 장애인성폭력범죄의 심각성 인식과 법률적․사회적 해결을 위한 정부 및 국회, 사법부의 노력이 어떻게 이어질지를 주목할 것이며, 또 다시 제2, 제3의 <도가니>가 발생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012. 7. 9.
장애여성공감,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
광주인화학교사건해결과사회복지사업법개정을위한도가니대책위원회

 

작성자장애여성공감  wdc21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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