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과 민주주의 시설 인권교육에 대해 드는 이러저러한 생각들 > 지난 칼럼


인권과 민주주의 시설 인권교육에 대해 드는 이러저러한 생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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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리가 났습니다. 전화통에 불이 납니다. 요즘 저희 사무실에는 하루에도 몇 통씩 “인권교육 좀 부탁해도 될까요?”라는 시설 직원들의 전화가 빗발칩니다. 아시다시피 <도가니> 이후 시설에서의 ‘인권교육’이 의무화되어 1년에 8시간씩 시설의 직원과 이용자는 인권을 주제로 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사회적으로 인권, 인권… 말은 무성해지고 입에 착 달라붙는 그 무엇이 되었지만, 실은 실체를 확인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우리 삶 가까이 있는 단어이긴 한데, ‘인권’을 설명하기란 원론적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듭니다. ‘인간의 권리, 태어나면서 갖게 되는 천부적 권리, 누구에게도 양도할 수 없는 권리’ 이렇게 정의와 개념을 배운 대로 적을 수는 있으나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삶 속에서의 인권은?”이라고 물었을 때는 결코 그 대답이 쉽지 않습니다.

그건 역으로 보자면, 지금까지 우리가 살아온 삶이 ‘인권’이란 단어를 중심에 두고 있지 않아, 책에서나 볼 수 있는 굳어버린 활자 같은 느낌이 강하기 때문 아닐까요? 다시 말하면,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평등한 관계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실천하거나 평화적 조직문화를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소위 경력(혹은 경험)과 정보 수집의 차이, 직책과 학벌, 나이, 성별을 이유로 한 위계 혹은 권위적인 조직문화 속에서 생활하는데 익숙해져 있습니다. 이런 봉건적이고 가부장적인 체계에서는 ‘인권’이 자리 잡기 힘들죠. 그렇지 않을까요? 인권이란 개인의 자율성을 인정하고 부당함에 맞서 원하는 것을 결정할 수 있어야 지켜지는 것인데, 조직이 이러저러한 한계를 들어 “어쩔 수 없어”라고 포기해 버린다면, 더 이상 ‘인권’이 발붙일 곳은 남아 있지 않을 테니까요.

인권을 지킨다는 것은 나 혼자 발버둥 친다고 가능하지도 않고 선한 의지로 실현될 수도 없습니다. 국가란 틀에서 살아가는 국민들의 인권을 말한다면 법과 정책으로 국민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시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인권 역시 법과 정책, 시설의 운영구조와 맥을 같이 해야 합니다.

시설의 환경과 구조에 대한 변화 없이 이용자들의 인권이 개선될 수 있을까요?

인권에 대한 이해와 실천으로 위한 노력이 이제부터 시작이란 점에서 <인권의무교육>이 반가운 측면도 있지만, 시설 내 자체 노력이 아니라 정부지침이라는 것, 정작 시설 내 구성원인 이용자와 직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하는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라는 점을 생각하면 아쉬움이 큽니다. 내부구조의 변화 없이 1년에 고작 8시간 교육을 통해 인권을 보장하고 정착시킨다? 그게 과연 가능할까요?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용자와 직원만 ‘인권’을 제대로 이해하면 그만일까요?

<도가니>이후 불거진 ‘인권’이라 그런지 우리 사회는 시설 내 인권을 말할 때 유독 폭력, 성폭력, 학대, 감금 등 눈에 보이는 인권침해 사례를 부각시킵니다. 그래서 시설 내 인권을 침해받는 피해자가 있고 가해자가 있고, ‘이용자는 피해자’, ‘직원은 가해자’라는 이분법적 구분짓기로 해결하려 합니다.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 그렇다는 겁니다. <인권지킴이>, <인권교육> 모두 시설 내 직원과 이용자에게만 부여된 내용입니다. 
어쩌면 인권교육이 필요한 사람들은 시설을 운영하는 책임자이거나 시실협회, 시설과 관련 있는 지자체 담당공무원, 복지부 공무원, 국회의원 등 일이지 모릅니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해결해야 하는지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국회, 정부, 지자체는 시설에만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겁니다.

장애인 인권, 특히 시설구조를 이해하고 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의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한국 사회에서 많지 않습니다. 인권교육에 대한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은 심각한 상황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는 지역으로 갈수록 더 격차가 큽니다.

인권의무교육만으로는 정부가 한국 사회를 뒤흔들었던 <도가니> 이후 내놓은 대책치고 너무 보잘 것 없습니다. 여하튼 쏟아지는 인권교육 의뢰를 마냥 거절할 수도 없는 처지입니다.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제대로 잘 준비해서 현장의 사람들을 만나는 건 중요하니까요.

어쩌면 공식적인 틀을 통해 시설 직원들과 허심탄회하고 진솔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건, 저희처럼 밖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참으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탈시설-자립생활’이란 말 자체가 주는 단어의 뜻 때문에 시설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적대적인 느낌으로 오해를 하기도 하고, 조사 등등이 아니면 마주앉아 대화할 기회는 거의 없는데다가 그런 상황에서의 ‘대화’는 불미스러운 상황을 두고 오가는 내용뿐이니까요. 그렇게 안 좋은 일로만 만나다가 ‘인권’을 주제로 서로 이야기한다는 것은 소통이며, 공감의 계기가 될 수 있으니, 기대도 되고 솔직히 살짝 긴장도 되는 참 즐거운 만남입니다.

‘인권’이란 게 부당함을 알고 스스로의 힘을 갖고 실천하는 것이라면, 시설 내 민주주의와 인권을 지켜나가는데 있어 직원은 주체이기도 하니까요. 

새로운 사실들도 알게 되었는데요, 그동안 ‘시설이 폐쇄적이다’라는 말은 회계나 운영, 이용자들과의 관계에서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 또한 열악한 근무조건과 봉사와 희생을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 등으로 억압되어 왔었고, 특히 이번 <도가니>이후 시설에서의 인권침해 가해자 혹은 잠정적인 가해자로 인식되어지는 현상에 좌절감과 패배감에 젖어 오히려 소신 있게 일해 보려는 노력이 점차 줄어들어 소극적으로 변하는 양상까지 생겨난 것입니다.

우려했던 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지요. 인권의 기본 원칙과 이해를 바탕으로 하지 않으면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으니까요.

암튼 시설이란 곳에서의 인권 문제는 이용자뿐만 아니라, 직원 인권 또한 매우 중요하고 시급히 보장되어야 하는 과제가 분명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직원들이 갖게 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고 절망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자기 내면의 힘을 갖고 실천하려는 노력이 바로 인권을 지켜나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한번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인권교육을 할 때는 집중과 규모가 중요합니다. 그러니까 30~40명 규모에(더 적으면 좋지만) 약 3~4시간을 함께 이야기해야 ‘아 뭐가 좀 감이 오네~’하면서 서로가 만족감을 갖는다는 겁니다. 왜냐하면 인권을 이해하는 것은 소통하고 공감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이죠. 말이 교육이지 실은 참여하는 구성원 모두가 해답을 알고 있습니다. 그저 그걸 끄집어내고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다시금 ‘기억을 떠올리는 것’이지요. 다만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해보려는 시도 자체를 하지 못한 경험의 부재 혹은 시설이란 구조에서 “말해도 소용없음”이란 무력감이 ‘인권’을 새삼스럽게 만드는 것입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이야기를 하다보면, “그게 가능해요?”란 질문이 나오는데, 이 물음을 통해 시설 운영의 폐쇄성 혹은 비민주성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됩니다.

특히 ‘시설’이란 구조와 환경, 법적 한계, 정책의 한계를 미리 인정하고 들어가면 더더군다나 공감할 수 있는 내용들이 없지요. 인권은 부당함을 인식하는 감수성을 높여가는 것임과 동시에 자기 내면의 힘을 키워나가며 부당하고 차별적인 상황을 헤쳐 나가는 실천적 힘까지 갖게 되는 건데, 찬찬히 되돌아보면 원래 알고 있던 건데 해결하지 못하고 “할 수 없어”라고 포기하는 상황이 되는 거죠. 

그동안 저희는 시설에서 살던 이용자들을 많이 만나 왔는데 공통된 태도가 “그걸 어떻게 해요. 못해요. 안돼요. 할 수 없어요…”라는 무력감의 표현으로 나타난다는 겁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시설’이란 곳에 살고 있는 이용자 뿐 아니라 직원역시 마찬가지의 상황이란 거죠. 이용자와 직원은 분명한 권력 관계를, 그러니까 힘의 관계를 갖고 있어 직원들이 우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건 일정정도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해가는 것, 자신의 인권을 지켜나간다는 측면에서는 ‘무력감’이라는 동일한 상황에 처해져 있었습니다.

인권은 권력, 즉 거주인과 운영자간의 힘의 관계와 맥을 함께 하고 있어 ‘시설의 민주주의’와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더글라스 러미스의 말처럼 “무력감을 느끼면 민주주의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반복되는 말이지만, 차별을 느끼고 그걸 제기할 수 있고 그러면서도 온전히 자기 힘으로 그 상황을 헤쳐 나가는 것이 ‘인권’을 지켜나가는 것이라면, 패배감과 무력감이 아니라 발랄함과 우직함과 기대감이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요. 주체로서 역할을 하는 것뿐이고, 주체로서 소통하고 참여하고 결정할 수 있는 민주적인 환경은 바로 인권을 제대로 보장하는데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따라서 시설 내 인권을 보장하려면 시설민주주의도 시급히 실현되어야 합니다. 

시설이 삶을 살아가는 곳이라 한다면, 신체적 자유, 선택과 결정의 자유, 생명권 보장, 의료, 문화 등 사회권 보장이 이뤄져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걸 자유롭게 제안하고 만들어갈 권한이 있어야 합니다. 시설 내 인권문제에 있어서 폭력, 성폭력, 감금과 같이 극단적인 인권침해도 큰 문제지만, 가장 심각하고 구조적인 인권침해는 ‘단체생활’을 이유로 개인의 선택권과 자기결정권을 존중하지 않는 것, 그리고 주체적인 참여와 소통으로 이뤄지는 결정과정에서 배제되는 운영의 폐쇄성과 비민주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인권’이라 부르지만, 왜 유독 ‘시설 내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에게는 폭행과 성폭행 등만을 ‘인권’의 범주로 간주하는 것일까요?

서비스 수급과 공급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때는 “안돼!” “하지마!” “못해!” “허락받아!” “너 왜 그러니?”등등의 말이 쉽게 툭 튕겨져 나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쉽게 내뱉어지는 말 속에 이용자의 인권이 산산조각 난다는 데 있습니다.

결국 “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란 깊은 체념으로 이어지게 합니다. 모순된 상황이 지속되고 길어지면 체념이 일상화되고 결국 내 온 몸을 휘감는 무기력함으로 이어집니다. 사람은 욕구를 제대로 표출하거나 실현하지 못했을 때, 혹은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과잉행동을 하거나 무기력해집니다. 내 몸에서 ‘나’란 자아가 분리되어 정체성을 상실하는 문제입니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건 분노하다가 포기하고 만다는 절망을 의미합니다. 말이 쉽지 일상을, 일생을 절망하며 산다는 건, 사는 게 아닙니다. 사람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그렇게 살지 않습니다. 

몸과 의식이 분리된 채 절망하면 그 다음부터는 명령에 복종하게 됩니다. 대화가 사라지고 침묵을 강요받으면 말하는 법, 타인과 관계를 형성하는 법도 잊게 됩니다.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건 그물망처럼 얽힌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평생 이 관계맺기를 통해 거듭나기도 하고 인생의 희로애락을 느끼며 ‘살았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자기를 표현하고 그것이 반영되고 선택과 결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주인으로 살아가겠다는 능동적 삶의 기본입니다. 이 기본권이 침해되는 것이 가장 큰 인권문제겠지요. 

그럼 시설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동일한 일과시간을 강요받고, 이를 따르지 않을 때는 잔소리와 훈계, 체벌(감금, 결박도 체벌이란 이름으로 자행되고 있기도 함) 등이 일상적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밖은 위험하다며 외출을 막고, 보호자의 동의 없이 퇴소할 수 없다는 말만 귀가 아프게 듣기도 합니다. 자원 봉사자를 이용해 매번 다른 사람에게 내 몸의 청결을 유지해야 하고, 유행하는 머리모양이 뭔지도 모른 채 해주는 대로 머리모양을 가져야 하고, 시장 한번 못가 본 채 후원물품으로 들어온 비슷한 종류의 옷을 입어야 합니다. 내가 사는 시설이 어떤 마을 속에 있는지, 어떤 학교가 있고 단체가 있는지 알고 싶고 밖에 나가 세상살이의 정보를 얻고 싶어도 적절한 보장구나 이동수단, 보조 인력이 없어 그저 참아야 합니다.

이용자들은 이것이 인권침해라는 걸 압니다. 그리고 직원들 또한 잘 알고 있습니다. 문제는 “예산의 규모상 현실에서는 어쩔 수 없잖아?” “내가 이런 걸 주장해도 될까?”라고 미리 속단하고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데 있지요. 

인권교육을 하면서 소통의 즐거움도 있지만 구체적 실천으로까지 이어지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뭐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런 고민이 많은 요즘입니다.
 

작성자여준민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상임활동가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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