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뒤에서 본 모금방송 촬영현장 > 지난 칼럼


카메라 뒤에서 본 모금방송 촬영현장

[김민혁의 낯선 땅 낯선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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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많은 방송매체들이 가난한 나라들의 풍경을 우리 안방의 텔레비전 화면에 올려 놓는다. 그리고 그 풍경 속에는 특히 몸이 아픈 아이들과 사회적 차별과 전쟁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안타깝게 그려지곤 한다. 이런 영상을 볼때마다 네팔에 있는 동안 촬영을 위해 방송팀과 유명 영화배우들이 방문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나는 촬영 사전준비와 현지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하여 네팔 현지 코디로써 열심히 현장을 뛰어다녔었다. 방송 소재가 될만한 어려운 환경에 처한 아동의 선정, 현지 일정과 숙소, 음식점 예약, 차량 예약과 이동경로 조정을 책임지게 된 나는 숨돌릴 여유도 없이 서너 주 내내 이리저리 뛰어다녔었다.

한 번은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촬영지로 선정된 서쪽지역에 위치한 꺼이랄리(카트만두에서 버스로 16시간 거리)로 미리 가서 사전준비를 했다. 네팔 직원에 의해 취합된 어려운 가정의 아동들 중 방송에 적합한 아동사례를 선정하기 위해 며칠간 가정방문을 했다. 40도를 웃도는 더운 날씨속에서 울퉁불퉁한 비포장 도로 위를 6시간씩 오토바이 뒷좌석에 매달려 돌아다니다 보니 땀띠 때문에 엉덩이는 말 그대로 난장판이 되었다. 피부는 강렬한 태양에 그을려 구릿빛으로 변하고, 타는듯한 갈증은 미지근한 물한컵으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렇게 바쁘게 뛰어다닌 덕인지, 외부에서 들을 수 없는 현지의 소리들을 가까이서 들을 수 있었다.

진흙탕 좁은 도로를 달리는 우마차의 우직한 소리.
지푸라기로 얼기설기 만들어진 지붕에 빗물이 스며드는 소리.
휑하니 뚫린 흙집의 벽사이로 차갑게 지나가는 바람소리.
물을 긷기 위해서 자기 키만한 펌프를 낑낑대며 눌러대는 아이의 소리.
밥 지을 땔감으로 나무하러 온 소녀의 작은 손에 들려진 도끼 소리.

 

그 중에 가장 가슴 아픈 소리는 아이들이 내는 소리였다. 가난과 무관심으로 소외되어 울리는 아이들의 소리는 파르르 떨리는 날카롭고 애잔한 것이었다. 더러운 환경에서 질병에 그대로 노출되어 신음하는 아이, 부모가 무책임하게 떠나버려 나이든 할머니와 지내는 아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학교에 가지 못하고 식당에서 일하는 아이, 한창 성장할 나이에 머리가 짓눌리도록 벽돌을 나르는 아이. 지독하도록 무섭게 보이는 가난과 차별에 고통 받는 아이들의 소리는 피멍든 가슴이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만약 당신이 지금 네팔에 있다면, 귀를 막아도 눈을 가려도 피할 수 없는 소리다.

사실 이렇게 방송전파를 타는 아이들의 이야기는실제 현장에서도 매우 어려운 아이들이다.  많은 모금을 위해서는 아동의 사례가 매우 극적으로 어려울수록 좋고, 아동의 생김새도 예쁘고 가엾어 보일수록 더 모금이 잘된다. 방송국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사람들의 눈물샘을 자극하지 않으면 지갑이 열리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열악한 곳들 중 이미 다른 방송에 나가서 도움을 받은 곳들도 많고, 극단적인 사례보다는 긍정적이고 개선된 사례들이 대부분이다. 기관의 도움을 받아 열심히 학교를 다니며 성적이 오른 아이들도 있고, 지역사회의 협력을 도모하여 새로운 개발활동을 벌여 성과를 거두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러나 현지 직원들은 이렇듯 성취된 결과를 보여주고 싶어하는 반면, 방송국의 입장에서는 모금과 시청률을 위해 극단적으로 안 좋은 사례들만을 계속 요청하다 보니 촬영하는 동안에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어쨌든 어렵게 촬영을 마치고 모금이 잘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매우 뿌듯하고 감사했다. 방송에 나간 아이들은 모금된 기금으로도움을 받았고, 비록 방송에 나가진 않았지만 방송을 위해서 취합된 사례 중 어려운 아이들도 더불어 도움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멍든 아이들의 가슴이 만들어낸 소리에 귀 기울여주고 귀한 정성으로 도와주는 많은 후원자들의 뜻을 생각하면 나는 오늘도 열심히 뛰어다니지 않을 수 없다. 

작성자김민혁 국제구호개발기구 월드비전 국제개발팀 간사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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