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술조력인제도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 지난 칼럼


진술조력인제도의 활성화를 기대하며

[조원희의 법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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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특정인의 친자로 등록된 후 오랜 기간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한 지적장애인들을 돕는 일에 관여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지적장애가 심해 제대로 의사소통을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지만, 간간이 대화 중에 드러나는 사실이나 모르는 사람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행동을 보면 가정 내에서 폭행이 존재했음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정폭력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느냐는 것입니다. 가정 내에서 이루어진 폭행은 대개 목격자가 존재하기 어렵고 중상해가 아닌 한, 시간이 지나면 폭행의 흔적도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피해자가 구체적으로 폭행의 정황을 설명하지 않으면 폭행 사실 자체를 증명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피해자가 지적장애인이라면 단순히 ‘맞았다’는 진술은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언제, 어디서, 어떻게, 왜 맞았는지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진술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이 때문에 기소되기도 어려울뿐더러, 기소되더라도 법원은 피해자의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아 믿기 어렵다며 무죄로 판단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단순한 폭행뿐만 아니라 상해, 감금, 강간 등 지적장애인이 관련된 사안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반면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판결한 좋은 예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여성 지적장애인(심리검사 당시 실제 나이는 15세 11개월이나, 지능지수는 49이고 발달성숙도 및 사회적 적응성은 10세 1개월 수준이었다고 함)가 성폭행을 당했던 사안에서(대구고등법원 2007. 5. 31. 선고 2007노2 판결), 가해자는 피해자의 진술이 범행의 장소와 범행횟수, 범행 당시의 상황 등에 관해 전혀 일관성이 없거나 경험칙과 상식에 반하는 것이어서 그 진술을 믿기 어렵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법원은 비록 피해자가 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진술 및 표현에 한계가 있고, 자신의 나이에 적절한 사회적 기술과 정서적 적응 및 사회적 책임의 수행 능력이 떨어지기는 하나, 시·지각 재구성 능력 및 상황적 판단력은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으로 비교적 적절한 대상인식능력을 갖추고 있어 자신과 성관계를 한 사람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정확히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다양한 상담기법을 통한 진술이나 표현을 유죄 인정의 근거로 적극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피해자에게 그림을 그리게 하는 방법으로 상담했는데, 피해자는 범행 장소로 보이는 산과 가해자가 운전해 온 것으로 보이는 택시, 가해자인 남성 등 당시 상황과 관련된 그림을 그리면서, 유아나 정신지체아가 성폭력을 당했을 때 나타내는 전형적인 행동으로 볼 수 있는 남성의 성기를 과장되게 표현했고, 자신을 강간한 사람이 택시를 태워 준 아저씨라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을 유죄 인정의 근거로 보았습니다. 결론적으로 피해자의 정신능력이 일반인보다 떨어지고, 특히 수 개념 형성에는 미흡한 상태라서 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진술이나 표현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피해자가 그 범행시기, 장소, 횟수 등에 관해 일관되지 못한 진술을 했다 하더라도 그것만으로 피해자의 진술 전체를 신빙할 수 없다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피해자가 피고인으로부터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에 관해서는 분명하고 일관된 진술을 하고 있고, 이러한 진술은 피해자의 인식 능력이나 피해자와 같은 지적장애인이 성폭력을 당했을 때 나타내는 전형적인 반응 및 행동과도 들어맞는 점, 피해자는 상담 과정에서 강간당한 사실 자체와 그 대상, 그 대상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한결같이 진술한 점 등에 의해 그 진술의 신빙성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즉, 비장애인과 같은 기준으로 진술의 신빙성을 본 것이 아니라, 지적장애인의 특성을 충분히 고려해 지적장애인이 보이는 행동 특성이나 다양한 상담기법을 통해서 드러난 일관된 진술이나 표현을 참작해 유죄로 판단했습니다.

최근 법무부는 진술조력인 제도의 도입을 내용으로 하는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진술조력인은 검사, 사법경찰관, 법원의 직권 또는 피해자 등의 신청에 따라 13세 미만 아동이나 장애인의 조사, 재판과정에 참여하게 되며 피해자와 수사기관 및 재판부 간의 의사소통 중개 및 보조, 의견개진 역할을 하게 됩니다. 또한, 조사나 신문과정에 참여하는 진술조력인은 피해자의 의사소통이나 표현 능력, 특성 등에 관한 의견을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제출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진술조력인에 의한 진술에 대해서도 증거능력을 인정하도록 했습니다. 결국, 진술조력인 제도가 제대로 활용되면, 부주의하게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가 선고되는 일은 많이 줄어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진술조력인으로 활동할 수 있는 전문가의 수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합니다. 법무부는 위 개정안에 규정된 대로 진술조력인의 양성을 위해 충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 진술조력인의 양성을 위한 교육이 활성화돼야 하고, 전문적인 진술조력인이 충분히 배출돼야 합니다. 더 이상은 피해를 보고도 가해자의 무죄 선고를 보며 가슴 치며 아파하는 지적장애인이 없기를 간절히 기대해 봅니다.
 

작성자조원희 변호사 법무법인(유)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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