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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의 사명

이서진의살며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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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만인가? 종이에 꾹꾹 눌러 쓴 편지가. 자음은 대체로 길게, 모음은 동글납작하게 쓴, 사람의 체취와 숨결이 느껴지는 글씨였다. 거기에는 동·서양 어느 고전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기막힌 글귀가 이렇게 씌어 있었다.
 
‘부모 애간장 녹이는 게 자식의 사명이랍니다. 우리 아들 키우는 재미로 여깁시다.’

길지 않은 두 문장을 대하면서 나는 깊은 공감과 아울러 한없이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대체 어느 만큼의 내공을 쌓아야만 이런 경지에 오를 수 있을까? 지인의 자애로운 미소가 스치면서 그녀의 삶의 이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럴듯한 사회적 지위와 용모를 소유했지만 괴팍하고 표독스런 성격의 남편 때문에 수십 년간 가슴앓이를 하고 살아온 그녀를. 와중에 아들 또한 오래전 혹독한 사춘기를 겪었다는 것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두 딸만은 예쁘고 반듯하게 잘 자라주었다는 것이 그녀에게 위로였으리라. 내가 보기에 그녀는 오로지 신앙에 귀의하여 ‘어머니와 아내’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하게 견뎌내는 듯했다. 몇 년에 한 번 만나면 그녀는 몇 시간씩 자신의 속내를 털어내었다. 성품도 내공도 그녀 자신보다 턱없이 모자라고 나이마저 훨씬 어린 내게. 그럴 때, 나는 줄곧 분개했다. 당장 그녀 남편을 만나서 그 이중적인 가면을 확, 벗겨주고 싶은 심정이 되었고 사고뭉치 아들을 보면 엉덩이라도 두들겨 패주고 싶었다. 이보세요? 댁의 아내처럼 현모양처가 세상천지 어디 있더란 말입니까? 에낏! 이 철딱서니 없는 놈아? 네 엄마 속은 시커먼 숯덩이로 그득할 거다, 라고 분기탱천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말미에 가면 불타올랐던 내 의협심은 타다 만 불씨로 남아 졸렬해지고 만다. 내 십자가로 여겨요, 힘들어도 지고 가는 수밖에 도리 없잖아요, 내게 맡겨졌으니… 라고. 그녀는 그토록 온화한 미소로 초인처럼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는 웬일인지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넌 네게 맡겨진 것들을 불평 없이 감당하니?’ 내부의 목소리는 순간, 고발자가 되어버린다. 나는 그녀에게서 ‘성찰’이라는 값비싼 수업을 받는 셈이었다.

“엄마… 지갑을 소매…치기 당했어요.”
전화기 저쪽에서 아이의 목소리는 떨리는 듯했다.
“뭐라고! 다친 데는 없니? 거기 어딘데?”

질겁해서 묻는 내게 아이는 M시라고 기어들어가는 소리를 냈다. 낯선 여행지에서 이 엄동설한에, 게다가 미성년자가…. 순간, 나는 그녀를 떠올렸다. 민폐라면 종종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곤 했는데 자식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다. 다짜고짜 나는 전화기 건너 그녀를 불러내었다.

“괜찮아요. 사내놈인데 좋은 경험이죠. 요놈 오늘 밤엔 내가 안고 자야겠네요. 이렇게 요놈을 만나다니 나 행복해요.”

역시나 그녀다운 응답이었다. 대체 그녀의 넉넉함은 어디서 비롯되었을까. 그 초탈의 경지 앞에서 무색해진 나는 그녀의 음전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던 수화기만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나로서는 이를 수 없는 곳에 그녀는 이미 도달했으리라.

겨우내 아이는 보헤미안을 자처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이니 그 내부의 소용돌이를 어쩌지 못해 혹한을 견디며 여행을 감행한 듯했다. 때마침 자신의 고교진학과 연계된 표면적인 이유를 찾을 수 있겠으나 더 깊이 들여다보면 정체성의 혼돈과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야기된 휘몰아치는 돌풍이 아닌가 싶다. 폭설과 칼바람과 살을 에는 냉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아이는 남도의 산하를 휘적휘적 걸었으리라. 성년의 대학생쯤이라면 극기차원의 값진 도보여행이라고 손 내밀어 등이라도 쓰다듬어 주련만 아직 아이는 보호가 필요한 사춘기 소년에 불과했다. 잠은 어디서 자니? 밥은 먹었니? 지금 있는 곳은 어디니? 몸조심해라, 노숙은 안 된다, 찜질방이라도 들어가라, 어서 속히 귀가해라…. 세상에 없는 걱정까지 만들어 하는 게 ‘엄마들’이라는데 나 또한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엄마 중에 나 역시 세상 엄마 중 그 한 명이니 뾰족한 수가 있겠는가! 도무지 좌불안석이 되어 불면의 밤들을 보내야 했다. 난방이 들어오는 따뜻한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것도,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국그릇을 대하는 것도, 심지어 과일 한쪽을 먹다가도 울컥,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 겨울 한파를 뚫고 거리를 헤매고 있을 아이 때문에…. 대체 저 애가 어째서 방랑벽을 타고났을꼬?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는데 누가 그 몹쓸 유전자를 물려주었나? 대학 시절 방학 때마다 국내외로 배낭여행을 일삼았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듯 으스대던 오래전 일이 떠올라 나는 남편이 미워지기까지 했다. 사내놈인데 뭐 어때? 춥고 배고픈 고생해 봐야 강해지지,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경험일세, 라고 말해놓고 천하태평 코를 골고 숙면하는 그가 밉살맞아서 가자미눈을 치켜뜨기도 했다.

일주일 혹은 보름 만에 아이는 싸한 냄새를 달고 집으로 들어왔다. 많이 여위었고 침묵으로 일관했다. 저 속에 뭐가 들었을꼬? 속내를 비치지 않아 안달이 났으나 묻지 않았다. 누구도, 무엇으로도, 풀지 못할 아이 내면의 근원적 문제를 어찌하랴. 홀로 감당하면서 그 알을 깨치고 나와 스스로 부화할밖에. 피로에 절어 밤낮 잠을 자는 아이를 깨워서 시시때때로 뭘 좀 먹으라 종용할 때는 내심 너도 이다음에 똑 너 같은 자식 낳아봐라, 하는 오기마저 불끈불끈 올라왔다. 하지만 그것도 순간일 뿐 아이 수저의 동선을 쫓다가 냉큼 다음날 식탁메뉴를 머릿속에 열거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면서 어찌할 수 없는 부모자식의 천륜에 숙연해지고 만다. ‘그래, 자식의 사명은 부모 애간장 녹이는 일이라는데 어디 실컷 네 사명 감당해봐라. 아직, 녹아날 애간장 남아 있을 때.’
 
“에미냐? 곰국 먹고 있쟈? 홍삼도 거르지 말고. 뭣이냐? 거 글씨 좀 자그만 해여. 네 몸이 성해야 써. 알쟈?”

날이면 날마다 팔순의 노모는 전화기를 붙들고 통사정하신다. 어머니가 정성 들여 보내준 곰국도 홍삼도 먹지 않았고 글씨(글) 또한 여전히 놓지 못하고 있다. 겨우 먹는 둥 마는 둥 한술을 뜨더니 이내 잠속으로 빠져든 아이를 보며 나 또한 노모의 애간장을 녹이는구나, 라는 생각을 한다. 자식의 사명은 아무래도 끝날 것 같지 않다.

 

작성자소설가 이서진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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