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청춘은 희망이다 > 지난 칼럼


그럼에도 청춘은 희망이다

[이서진의 살며 생각하며]

본문

“이이……모오? 으……아앙!”

수화기 건너편에서 스물넷의 조카가 울음보를 터트렸다. 내가 대답할 겨를도 주지 않고. 뒤통수라도 한 대 얻어맞은 듯 갑자기 머리가 띵했다. 다 저녁때 웬 사단인가? 쿵쾅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며 끅끅, 흐느끼는 소리를 듣다가 겨우 물었다.

“왜? 무슨 일인데? 지금 어디니?”
“…….”
그저 울고 있을 뿐 대답이 없었다. 묻고 나서 생각해보니 감정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대에게 나는 단번에 세 가지 답변을 요구한 것이었다. 혹시 신문이나 뉴스에 나올 법한 사건사고를 당했을까? 온갖 억측과 불길한 상상이 이미 머릿속에서 한 컷 한 컷 만들어지는 중이었다. 불안한 나는 불길한 이미지들을 떨쳐내려고 고개를 한번 흔들었다. 일껏 평정심을 찾아 그 애의 일상을 떠올리다가 이내 다시 물었다.

“혹시 인턴십 떨어졌니?”
“아니야,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래. 지금 이모한테 가고 있어.”
또 한 번 나는 황당해졌다. 시간이 아까워서 울었다고? 초고속 시대에 황금 같은 시간개념이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저렇게 울 것까지는 없지 않겠는가. 다 큰 여대생이 휴대폰에 대고 으앙으앙 울어대며 걷는 폼이라니!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대체 무슨 일일까? 불과 달포 전에 미국 인턴십을 준비한다고, 전공 특성상 취업비자를 얻어 세계 무역의 중심지인 뉴욕에서 꼭 인턴생활을 하고 싶다고, 자기소개서를 검토해달라고 했다. 강의실과 도서관과 학원으로 종종걸음치거나 식당에서 허겁지겁 밥을 먹고 카페에서조차 노트북을 들여다볼 애를 생각하자 코끝이 시큰해졌다. 인성은 인성대로 학점은 학점대로 스펙은 스펙대로. 창의성과 도전정신과 리더십이며 시너지 창출의 역량까지 요구하는 무한경쟁의 취업전쟁터. 몸이 열 개라도 남아나지 않을 취업준비생의 삶은 사실 이만저만 고달픈 것이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시간 때문에 징징거린다고?

“나 배고프고 너무 서러워…….” 
풀이 죽은 그 애는 들어오자마자 식탁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큰 눈동자에 눈물이 그득했다. 아침 여섯 시에 나와 그때까지 요기조차 할 수 없었다고. 인스턴트나 빵조각, 화학조미료가 뒤범벅된 식당음식이 아닌 ‘집 밥’을 대하면서 그 애는 맛있다, 를 연발했다. 전문경영인으로 살아가는 그 애의 엄마인 내 자매가 한편 원망스럽기도 했다. 저렇게 예쁜 딸을 좀 맛난 거 해먹이고 응석도 받아주면서 왜 다른 엄마들처럼 살지 못할까? 물론 슈퍼우먼이 아닌 다음에야 안팎의 일을 완벽하게 해낼 수는 없지만.

밥숟가락이 뜸해지면서 그 애는 속내를 꺼내놓았다. 내일모레가 자격증 시험일이라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단다. 게다가 한술 더 떠 자신을 매칭하려는 외국기업의 담당관은 인터뷰 외에도 마케팅 전략 포트폴리오를 요구하는 통에 며칠째 날밤을 새웠단다. 그런데 하필이면 치과 예약까지 겹쳐 서울서 여기까지 내려왔더니 예약일이 변경되었다고, 문자 보지 못 했느냐고, 도리어 핀잔을 주더란다.

“오고 가는 시간이 4시간이야. 40분도 아닌 4시간! 4시간이면 뭐든 한 가지 하고도 남을 시간이야. 잠을 자도 실컷 잘 거고.”
숟가락을 놓고 그 애는 하소연했다.
아닌 게 아니라 4시간은 적지 않은 시간이다. 대학가 원룸에서 자취하는 그 애는 서울에서 멀지 않은 곳이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 주말을 이용해 집엘 다녀간다. 오전 오후도 아니고, 한 시간 두 시간도 아닌, 때로 분 단위로 쪼개 쓰는 시간이니 그럴 법도 하다.

“그랬구나. 언제 하루 날 잡아서 원 없이 자야겠다.”
“이모? 아무것도 안 하고 온종일 자는 게 내 소원이야.”
“자는 게 소원이라고? 취업도 멋진 남자친구도 아니고?”
“응. 몇 날 며칠 죽은 듯이!”
죽은 듯이 잠을 자고 싶다던 그 애는 죽을 것처럼 피곤한 얼굴로 현관문을 향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 애에게 잠의 유혹은 심각한 듯했다. 이십 대의 싱그러움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누르스름한 얼굴과 기린처럼 긴 팔다리, 학처럼 가는 목과 튀어나온 쇄골은 젊음을 무색게 했다.

“○○야? 꽃도 지고 봄도 간다? 마냥 아름다운 시절만은 아니야.”
신발을 싣다가 그 애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본다. 마치 무슨 태평성대에 음풍농월이냐는 식이다. 그러더니 현관문을 열면서 툭, 한마디 한다.

“알아. 그래서 더 서러워.”
나는 그 애가 나간 현관문을 한참 동안 쳐다보았다. 참 막막했다. 닫힌 문처럼 동서남북 사위가 막혀 있는 그 애의 이십 대가 가여웠다. 힘들다, 라고 표현해도 될 텐데 그 애는 서럽다, 라는 말을 했다. 한순간에 늙어버린 노인처럼. 그 애는 이미 청춘을 잃었을까?

젊은이들에 대한 다양한 신조어가 난무하는 세상이다. 3포 4포 5포 세대, 낙타세대, 신캥거루족, 찰러리맨, 청년실신……. 참으로 듣기조차 민망한 말들이다. 3포가 아닌 ‘삶포’라는 유행어 앞에서는 입안에 쓴 뿌리라도 물고 있는 듯 씁쓸하기까지 하다. 사람이 태어나서 자라 연애와 결혼과 출산에 이르는 것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지 않았던가. 그런데 실업으로 말미암은 경제난 때문에 지극히 당연한 삶을 포기한다는 걸 과연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청년들의 과도한 엄살과 자기비하 외에 정부와 사회구조적인 문제는 없는가? 기성세대 누구도 오늘날 이러한 신조어의 범람 동기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 것이다. 오늘의 젊은이들은 바로 기성세대의 품 안에서 나고 자랐으니까.

성찰 없는 지식정보 위주의 경쟁적 교육이 얼마나 큰 폐단을 불러일으켰는가. 물론 사람의 일손을 점점 앗아가는 자동화 시스템의 우세 또한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더욱 근원적인 문제를 들여다볼 일이다. 자식을 외유내강한 사람으로 키우지 못했음은 나를 포함한 대한민국 대다수 부모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학벌 물질 권력 명예…… 삶의 가치순위를 우선 돌아볼 일이다. 첫 단추가 잘못 꿰였으니 볼썽사나운 건 자명하다. 그들에게 풋풋한 젊음과 가슴 떨리는 청춘을 도적질한 죄를 이제는 고해야 한다. 그 죄를 죄다 씻을 수는 없겠으나 진정한 대화와 소통의 장이라도 곳곳에 마련해야 한다. 정부의 수장으로부터 사회 저명한 청춘들의 멘토와 여염집의 아비 어미에 이르기까지.

그 애가 돌아가고 나는 그저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책도 글도 손에 잡히지 않았고 그 애의 창백한 낯빛과 기다란 팔다리만 떠올랐다. 퇴근 시간, 사람들이 빽빽한 전철 안에서 그 애는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거나 졸음에 겨워 눈동자를 껌벅이거나 아니면 낼모레 있을 자격증 시험 때문에 한숨을 내쉴 수도 있으리라. 자꾸만 그 애의 뒷말이 이명처럼 들려왔다. ‘그래서 더 서러워.’ 듣기만 해도 가슴 떨리는 청춘이기에, 두 주먹 불끈 쥐고 어디든 덤벼들어도 좋을 혈기왕성한 젊음이기에, 그러므로 더더욱 서럽다는 것이다. 나는 그 서러움의 발원지를 궁구했다. 사방에 내린 어둠처럼 종잡을 수 없었다. 청춘은, 젊음은, 그것만으로 충분할지니…… 라고 나불대는 건 이미 뻔뻔스러운 시대당착인가?

‘그럼에도 청춘은 희망이다!’ 그 애의 서러움에 기성세대인 나 또한 분명 한몫을 했을 터, 나는 상투적인 문자라도 조합해야만 밤을 날 것 같았다. ‘고마워. 희망!’ 그 애에게서 단박 문자가 날아왔다. 활짝 웃는 이모티콘까지 곁들여서.

청춘의 ‘희망 찾기’에 모두가 발 벗고 나설 일이다.

작성자이서진 소설가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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