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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 장애국토와 장애우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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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장애우가 장애우에게 대했든 자본의 논리에 의한 차별을 단기간에 제거하려고 하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장애우 스스로가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갖고서 지속적으로 장애우 운동을 전개해 가는 데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반도의 허리가 둘로 갈라져 장애국토가 된 지도 벌써 50년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이산의 아픔이 비단 이산가족에게만 국한될 수 없듯이 장애우의 아픔, 또한 장애우 가족에게만 국한될 수가 없다. 바로 이러한 사실 때문에 국가가 되던 개인이 되던 장애의 문제는 현재 이 땅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것이 되며 따라서 우리 모두가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장애국토에 대해서든, 개인적 장애에 대해서든 일반적으로 장애에 대해 갖는 우리의 현실은 결코 낙관적이지 못하다. 먼저 장애국토에 대해 생각해 보자면 분단된 조국의 아픔에 대해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생하게 느끼고 있으며, 어떻게 통일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통일에 대한 강한 열망이 있는지에 대하여 확신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지난 40여 년 간 통일에 관한 논의는 억압되어 왔고, 정부에서조차 분명한 통일방안의 제시나 연구가 폐쇄적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통일문제를 거론하거나 체계적으로 논의된 적은 극히 드물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가운데도 비교적 자유롭게 통일 논의를 할 수 있었던 시기는 1980년대까지 세 번쯤 있었던 것 같다. 첫 번째는 1945년 분단 직후부터 남북 양쪽에 단독정부가 수립된 48년까지이며, 두 번째는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이 나오고 나서 남북대화가 진행되던 1∼2년 동안이었다고 하겠다.    그러다 통일논의의 물꼬를 트게 한 결정적인 계기는 1989년 문익환 목사의 방북과 임수경씨의 방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보안법이라는 국내법의 저촉은 받았지만 통일문제를 민족문제의 우선과제로 모든 사람들에게 관심을 촉구시켰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를 갖게 되며, 분단이라는 장애국토 문제의 해결 방안모색에 불을 당겼다고 하겠다.
  이후 남북한 각각 나름대로의 분단극복과 민족통일을 민족의 지상과제로 소리 높여 외치면서 다양한 통일정책을 제안해 오고 있지만 통일에의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그러면 통일이 섣불리 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해서 통일문제에 대한 남북한의 인식이 전혀 다르고 장애 극복에 대한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다시 말 하여 통일개념에 대한 이해의 상이성, 통일국가에 대한 개념의 상이성, 통일의 방법과 절차상의 상이성에 대한 극복을 하는데 사전 준비가 부족한 데 기 인한다고 하겠다.

  또한 남북한은 각각 자신의 정치 경제적 체제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데서도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즉 한국은 자유민주주의를 바깥으로 표방하고 있으나 물량의 확대를 신격화시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많은 계층을 소외시키는 독점 자본주의적 물질중심주의 생활방식이 만연해 있으며, 이에 비해 북한은 김일성 주체사상으로 말미암아 한 개인을 신격화시켜 개인숭배를 강요하며 국민을 개개인의 개성과 인간 존엄성을 박탈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분단된 장애조국의 극복은 결국 단순한 감상적 구호나 외침에 의해서 이루어지기보다는 구체적이고 사려 깊은 연구와 함께 남북한의 사회현실을 분석, 변혁시켜 새로운 민족공동체적 삶의 방식을 모색해 내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국가의 차원에서 벗어나 개인의 차원에서 장애우의 경우를 살펴보자. 특히 자본주의 사회에서 갖게 되는 장애우의 문제는 뭐니 뭐니 해도자본의 논리에 입각한 노동력 제공의 미흡을 통한 낮은 노동생산성의 문제를 들 수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나타나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 및 공동체적 삶의 소외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개인적 장애문제의 극복은 무엇보다도 사회 속의 차별의 극복을 통해서 달성할 수 있다고 하겠다. 즉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짓밟는 여러 가지 사회적 장치들을 제거해 냄으로써 가능하다고 하겠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이러한 차별을 제거해 낼 수 있을까? 게걸스럽고 이기적이며, 적자생존의 정글법칙이 만연되고 있는 현실에서 이러한 차별을 짧은 시간 내에 제거할 수는 도저히 없으며, 그렇다고 울분이나 맨 주먹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흔히들 차별이란 사회가 완전히 뒤바뀌지 않고서는 좀처럼 없어질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되며, 곧 단념이나 체념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결코 장애극복의 해결방안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오랫동안 자본주의 체제에서 비장애우가 장애우에게 대했든 자본의 논리에 의한 차별을 단기간에 제 거하려고 하기보다는 무엇보다도 장애우 스스로가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갖고서 지속적으로 장애우 운동을 전개해 가는 데서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운동의 법칙에 있어서 운동의 주체자는 장애우가 되어야 하며, 비장애우와 연대하여 자유와 정의와 복지가 있는 공동체적 사회를 만드는 데 그 목표를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하여 먼저 장애우 전체가 뭉쳐지지 않으면 안 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정치적 힘을 가져야할 것으로 본다. 다시 말하여 많은 장애우의 결집된 힘으로 현재의 차별적인 법을 바꾸고, 제도를 바꾸고, 사회의 상태를 바꿔나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의 장애문제는 결코 분단된 이민족의 국가적인 장애문제와 분리시켜 볼 수 있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장애우를 차별하는 사회의 밑바탕에는 반민주적이고 반민중적인 요소가 민족의 문제와 함께 구조적으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자유와 민주와 평등이 한데 어우러지는 해방된 민족공동체 국가가 만들어지지 않고서는 결코 분단의 극복과 차별 없는 장애우 해방이 실현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장 장애우 운동을 통한 현재의 차별적인 사회구조의 변혁과 함께 분단된 조국의 장애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통일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짐으로써 장애우 운동이 민족통일 운동으로까지 연결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으로 본다.
  모든 운동은 홀로서기에서 출발하여 함께 가기로 이어져야 하며, 장애우 해방은 결국 민족해방으로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생각한다.  

작성자조흥식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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