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자부심을 장애인 당사자와 공감하는 드라마를 꿈꾼다 > 지난 칼럼


장애 자부심을 장애인 당사자와 공감하는 드라마를 꿈꾼다

[김형수의 세상보기]KBS 굿닥터, 사람들의 인식과 태도를 변화시켰는가?

본문

“왜 저를 못 믿어주십니까? 교수님께서는 제가 실수해서 미워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가 실수할까봐 미워하시는 겁니다."

-KBS 드라마 굿닥터 9회 中에서-


드라마 <여로>(旅路)를 아는가?
바보 영구를 아는가?

   
 
‘여로’(旅路)는 1972년 시청율 70%이상이라는 기록을 세운 KBS 일일드라마이다. 그러나 드라마 여로는 그 경이로운 시청률도 시청률이지만 극중 주인공 ‘영구’(배우 장욱제)라는 캐릭터로 더 기억된다. 지체장애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던 반편이 영구, 그러나 정작 배우 장욱제의 영구는 사라지고 우리는 그를 심형래의 ‘바보 영구’로 더 강하게 더 오래 기억하고 있다. 그렇게 40년 넘는 세월동안 많은 아이들이 따라하고 매체에서 재생산되었던 장애인 영구가 정작 현실세계의 지적·자폐성 장애인에게는 어떤 의미일까?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비장애인들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주고받았을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드라마 여로부터 드라마 굿닥터까지 이어지는 장애인 주인공을 둘러싼 이야기의 원형은 〈삼국사기〉 열전의 온달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현명한 아내가 어리석은 남편을 계발시켜 성공에 이르게 하는 이야기의 인물구도 우부현녀(愚夫賢女) 주제는 1500여 년 전의 바보온달과 평강공주에서 바보 영구와 그의 부인인 ‘분이’, 그리고 <굿 닥터>의 의사 차윤서와 박시온으로 그대로 이어져온다.

불쌍한 장애인을 가부장제 하에서 억눌려 살아가던 여인들이 해방시킨다는 이런 이야기 구조가 사회적 약자의 사회 책임과 권력의 책무를 약화시킨다는 비판에도, 드라마 굿닥터는 ‘바보’라는 추상적이고 상징적인 개념이 아니라 자폐라는 장애를 직접 언급하고 드러냈기에 ‘영구’의 관점과 한계를 가까스로 넘었다는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오해하지 말자?!

드라마 굿닥터를 정작 같은 당사자들은 어떻게 느꼈을까? 당사자들에게 대리만족이나 카타르시스라도 주었을까? 장애인 가족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그리고 드라마를 본방 사수했던 대중들에게는 어떤 감흥을 주었을까?

사실 외국에도 굿닥터처럼 장애를 소재로 장애인 당사자를 다룬 드라마는 많다(미국: 알파스(Alphas), 터치(Touch), 일본: ATARU). 이번 드라마 굿닥터도 비록 비장애인 배우가 연기했지만, 바보 영구처럼 장애를 마냥 희화화하지 않고 자잘한 장애이해를 바탕으로 장애인과 함께 일하는 현장을 드라마로 구현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더구나 역설적으로 장애인을 늘 환자로만 그려왔던, 장애인에게 너무나도 배타적이었던 의학계의 이야기를 장애인이나 여성을 중심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이 드라마 때문에 당신들의 자녀도 천재냐고 물으며 박시온처럼 의사를 시켜보라는 권유 전화가 빗발친다는 장애인부모님들의 고충들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 드라마의 작가, 피디, 연기자들의 장애 감수성은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소수자에 대하여 대중들은 너무나도 쉽게 ‘일반화의 오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을 제작자와 연기자는 잘 알아야 했다.

오죽했으면 자폐인 가족들과 관계자들이 처음에는 이 드라마에 높은 기대를 했다가 일상과 현실에서의 자폐와 서번트 장애인에 비하여 도저히 공감할 수 없는 이 드라마의 묘사에 대해 실망하여, 오히려 드라마는 드라마 일뿐 장애관련 다큐가 아니니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자라고 자조했을까.

 

‘사실성’이 생명인 의학 드라마의 원칙은 어디로?

물론 드라마 굿닥터가 ‘장애인의 날’ 특집 드라마도 아니고 장애인 이해를 위해 특별히 기획된 드라마는 더더욱 아니다. 단지 개성 넘치는 의학드라마일 뿐이다. 그런데 바로 이 드라마가 의학드라마이기 때문에 더욱 리얼리티가 없는 박시온에 대하여 비판받아야 한다. 의학 드라마임에도 주인공의 서번트 증후군과 아스퍼거 증후군을 명확하게 구분하여 그리지 않았을뿐더러, 이런 증후군들이 올해 개정된 미국 정신질환 진단명 DSM-5에서 이를 모두 묶어 자폐스펙트럼 장애로 통합되었다는 사실조차 알려주지 않았다.

   
 
왜 드라마 제작진과 연기자들은 의학계가 그런 장애 관련 증후군들에 완치라는 개념을 섣불리 쓰지 않는다는 기본적인 사실조차 조사하지 않았을까? 극중 전개를 위해서 임의대로 장애를 서술하였다면 ‘드라마 내용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 등의 자막이라도 송출하여 이 드라마가 ‘논픽션’임을 시청자들에게 주지시켜야 하지 않았을까?

이렇게 그들은 이런 드라마로 대중들이 단편적인 지식으로 일반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장애인 당사자들을 함부로 낙인찍지 않도록 특히 많은 장애인당사자와 가족, 전문가를 만나 조사하고 인터뷰해야 했다.
하다못해 최소한 주인공의 배경인물이나 주변인물로, 엑스트라라도 실제 장애인들을 출연시켜 드라마의 사실성을 보다 높였어야 했다는 큰 아쉬움이 남는다. 특히 남녀 주인공의 사랑을 그리는 과정에서 장애인 박시온이 끊임없이 비장애인이기를 꿈꾸는 것으로 그렸다. 이는 비장애에 대한 욕망을 철저하게 비장애인의 입장에서 드러냄으로써 절대적으로 ‘장애’를 우연함에 대한 차이로 그리지 못하고 개인에게 귀책사유가 있는 열등함으로 묘사한 것으로 안타까움을 넘어 짜증을 자아낸다. 이런 관점은 장애인의 감수성이나 관점은 전혀 투영되지 않은 채, 장애인과 비장애인과의 관계설정이 비장애인의 배려와 시혜로 일방통행 하는, 여전히 90년대의 영화 ‘오아시스’의 한계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피터팬의 후크선장을 중증장애인으로 부르지 않고 그렇게 인식하지 않는지, 아이언맨을 왜 우리는 심장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지 드라마를 비롯한 매체 종사자들은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이런 고민이 깊어도 장애인당사자가 직접 연기하고 참여하는 것보다 그 감수성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음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 드라마 관계자들이 자폐인 과학자가 강의하는 Ted영상과 그의 전기 영화 ‘템플 그랜딘(Temple Grandin)’에서 꼭 참고하고, 미국의 뮤지컬 드라마 ‘글리(Glee)’에서 실제 다운 증후군 배우와 휠체어 사용자 장애인 당사자의 연기와 감수성을 벤치마킹하기를 바란다. 장애인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에게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판타지보다 현실에서의 일상과 차별과 소외에 견디게 하는 매체가 더욱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장애에 대하여 멋진 자부심을 공감하는 드라마가 나오는 2014년을 기대해 본다. 


※본 원고는 경기도장애인종합복지관의 경기재활정보신문 제46호에 실린 원고를 보강, 수정하였음을 밝힙니다.

작성자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넷 사무국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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