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별이 되어 > 대학생 기자단


정녕 별이 되어

[이서진의 살며 생각하며]故 최종범 열사를 추모하며

본문

언어의 기술자로 살아온 세월이 만만치 않아도 도무지 표현할 길 없는 막막함에 당면할 때 글쟁이들은 절망하리라. 한계는 인간에게 겸허를 가르치지만 또 다른 낙담을 가져다준다. 늦가을과 초겨울의 어간에서 한 해를 마무리 짓는 이즈음 정서가 그렇거니와 날마다 보는 신문·잡지의 행간은 그 절망과 낙담을 더더욱 후벼 파는 일색이지 않던가?

‘형, 이렇게 일하는데 사는 건 왜 힘들어져?’  
삼가 고인의 영면을 빌면서…… . 깊이 모를 심연으로 추락하던 심사를 나는 표현할 길이 없다. 머리기사를 뽑고 타이핑했을 기자의 손가락은 떨렸으리라고, 짐작해본다. 설마 때 이른 추위 때문에 손이 시려 떨린 건 아니라고,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땅의 물신이 두려워서, 그 물신의 패악이 무고한 생명 존중받아야 할 생명을 무참하게 짓밟았다는 참혹한 사실 때문에, 맘이 시려 덜덜 떨었을 것이었다. 제 2의 전태일 열사라고, 고인을 추앙하는 각기 다른 시각에서 뽑아낸 무수한 문장 앞에서 나는 허무해졌다. 두말할 것도 없이 고인의 유지는 남은 사람들의 필연적인 몫이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사항이 아닌 반드시 이뤄내야 할 사명이다. 전태일을 닮고 싶었고 제 죽음이 동료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고인의 바람은 고스란히 문자화되었고 그것을 확인하는 내 동공은 이내 젖어버렸다. ‘형이 공부해. 난 대학 안 가. 오늘부로 최종범 인생 끝. 최별 인생으로 다시 시작. 미안해, 나는 떠나.’ 형과 아내와 SNS에 올린 짤막한 그의 전언들. 불우한 가정환경을 탓하거나 그 시름에 주저앉지 않았고 자신보다는 형을 먼저 배려한 따뜻한 우애, 그리고 축복이듯 세상에 태어난 자신의 아기로 인해 감격스러워하던 범부의 모습과 마지막 아내와의 통화에 남긴 이별인사. 나무만 떠올렸어도……, 라고 절규하며 통곡했다던 그의 아내는 꽃다운 새색시였단다. 고향 마을의 나무 한 그루. ‘천년나무’라 부르며 그는 결혼 전 아내와 데이트를 했고 어렸을 적엔 형과 함께 줄곧 그 나무 아래서 놀았다고 한다. 그런데 추억의 장소였던 천년나무 곁에서 그는 삶을 마감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천년만년 아름다운 생을 꿈꾸었을 청년의 그가, 아름드리 둘레를 두 팔 뻗어 안아보며 흠도 티도 없었던 천진무구했던 그의 유년이, 무턱대고 내 눈앞에 펼쳐졌던 걸 과연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연간 40조 원을 벌어들이는 삼성왕국에서 그는 배고파 못 살겠다고 했다. 여왕개미를 먹여 살리느라 자신과 동료들은 죽어나는 일개미라고. 여왕개미 삼성왕국은 요새도 성채도 견고하거니와 삼엄한 빗장마저 질러놓고 좀체 성문을 열지 않았다. 성문을 열기는커녕 샛문이나 쪽문마저 죄다 닫아버렸다. ‘위장하도급 표적감사 대책보고회 역할극 지역 쪼개기 마이너스 성과급.’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는 물론 어제오늘 일도 아니고 사측의 불가피한 사례 또한 복잡다단한 사회현상과 맞물려 수다하다. 그러나 아무래도 이건 아니잖은가! 이 나라 불굴의 일등 기업에서 아니 세계 최고기업에서 서른셋의 별이 아빠에게 가한 폭압과 인권유린은? 더군다나 별이는 이제 겨우 돌쟁이라는데…. 단란한 가정, 든든한 가장, 소박한 삶. 성실히 일하고 일한 만큼 살고 싶었던 그가 어째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을까. 남편 잃은 별이 엄마와 아빠 잃은 별이에게 우리는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 가난하고 배운 것 없는 노동자 외에 왕국의 성문을 두드릴 잘난 사람은 없었던가. 소위 스펙이 화려한 계층 말이다. 그들은 대체 무얼 하고 젊디젊은 서른셋의 노동자가 자신의 낡은 자동차에서 연탄불을 피웠던가. 삼성왕국에서 그들은 기껏 가신 노릇이나 하면서 왕이 주는 하사품에만 기꺼워했을 터였다. 달걀로 바위를 칠 수는 없었을 테니까. 그런 무모한 용기는 애당초 그들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남의 일이었을 것이었다. 달걀이 박살 나더라도 한번 던져볼 투지를 누구나 불사르는 건 아니다. 삼성이라는 거대자본에 전국 1500명의 민주노조를 만들고 일원으로 활동한 그의 선택을 무모하다고 반박할 자 누구랴! 다만, 이 땅의 민주화 이전 가난한 시절의 청년 열사 전태일의 뒤를 별이 아빠가 따랐다는 건 충격적이다. 세계 경제 15위라는 이 나라에서 재현될 참사는 더더욱 아니었다.

죽음의 순간 그는 정녕 하늘의 뭇별을 보았을까? 정녕 별이 되어 이제 막 아장아장 걷기 시작할 별이에게 별을 보여줄 수 있을까? 이렇게 일하는데 사는 건 왜 힘들어지는가?, 형에게 물었던 그가 항변하듯 내게도 물어온다. 그가 주검으로 발견된 지난 10월 31일은 ‘시월의 마지막 밤’ 운운하며 먼 데 있는 친구와 지인 그리고 가깝게는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월의 마지막 날인데 뭐 하고 있냐고, 여전히 책상물림이냐고, 어디 가서 차 한 잔이라도 하자고, 가을이 다 간다고, 못내 쓸쓸하고 서글퍼서 먼산바라기 중이라는 친구도 있었다. 나는 ‘시월의 마지막 밤’이라는 유행가를 부른 그 가수의 수입이 아마 연중 최고점을 찍는 날이 아니겠냐며 하나 마나 한 소리를 해대면서 노닥거렸다. 내게 외출은 언제나 숙제 중의 숙제여서 도무지 달갑지 않은 부담거리였다. 가능하면 요리조리 피해 보는 술책으로 꼼수를 부리다 더는 거절할 수 없을 때 붙들려가는 꼴이었으므로. 우울증 오지 않게 햇볕도 쬐고 앞산에라도 다녀오라고, 쓸쓸해하는 친구에게 주제넘은 훈계까지 곁들였다. 똥 묻은 개가 재 묻은 개 나무라듯. 연말 전에 시간 내볼게, 라며 백발백중 지키지 못할 헛소리나 하면서.

팔딱팔딱 뛰던 젊음이 스러져갈 때 우린 무얼 했을까? 아니, 나는 무엇을 했을까? 늦가을의 성찰은 그렇다손 치더라도 공연히 센티멘털해져서 먼산바라기는 물론이고 커피타령 밥 타령에 각양각색이었으리라. “얘? 그 집 원두는 그날그날 로스팅 한 것만 쓴대. 암튼 맛과 향이 최적이야. 뭐라고? 어디? 종갓집보다 경복궁이 낫다고?” 우리는 늘 이런 방식이었다. 우리 이웃의 수많은 별이 아빠들이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보수 때문에 기계처럼 닳아져 가도 대개는 이런 일상이었다. 무심하기 짝이 없이. 커피 한 알 나지 않는 땅에 살면서 물마시듯 커피를 홀짝거리며 종갓집의 아름다운 전통과 규범은 깡그리 무시하고 경복궁의 역사적 진의는 아랑곳없이 너도나도 상품화하면 그만인 것이다. 우리 이웃의 누군가는 그토록 절실하고 그토록 처절한데 말이다. 신혼여행도 안 가고 추석 연휴도 쉬지 않고 주말에도 일하던 사람, 이라고 동료들은 별이 아빠를 추억한다. 그런데도 그는 왜 배가 고팠을까?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결코 벌이가 나아질 수 없노라고, 힘든 걸 알아달라는 게 아니라 적어도 회사가 부당한 행위는 하지 말아 달라고 동료들은 대변한다. ‘저임금 감정노동 실적달성 표적감사.’ 생소한 어휘는 무적함대처럼 거칠 것 없어 무시무시하게 느껴진다. 자본주의라는 거대 그물망 속에 포획되어 우리는 별이 아빠를 잃었다. 내 이웃의 누군가가 억지로 생을 마감할 때조차 우리는 ‘시월의 마지막 밤’을 읊조리며 어설픈 감응을 자축했다. 아아, 시월의 마지막 날은 출구 없는 암흑이었다.

영롱한 별처럼 빛나는 삶을 살라는 염원을 담아 ‘별이’라는 이름을 지었을 거라고. 신문에 박힌 그의 영정사진을 보며 나는 가늠해본다. 눈가가 젖어서 사진이 어릿어릿하다. 긴 생머리의 미망인이 이제 파릇파릇 돋아난 새싹처럼 애처롭다. 그렇더라도 새싹은 겨울 꽁꽁 언 땅을 뚫고 올라오려니…… . 간절한 바람을 사진 속 미망인에게 투사시킨다. 가끔 그녀의 삶이 혼곤해질 때 밤하늘의 별을 헤아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깐 했다. 별이와 함께 밤하늘에 떠 있는 별을 보며 별이 아빠를 만날 수도 있으리라. 왜냐하면, 그는 이미 별이 되었을 테니까. 별처럼 세상의 어느 한구석을 밝히리라. 반짝반짝…… 별이가 커서 ‘작은별’ 동요를 부를 즈음에 세상은 좀 더 나아질까? 그의 바람대로 이 땅의 수많은 그의 동료들이 노동자라는 이름으로도 땀 흘린 대가를 당당하게 받고 누릴 수 있는 세상은 우리 모두가 건강한 사회를 만들어갈 때 가능하지 않을까. 그의 죽음은 결코 헛되지 않으리라. 한 알의 밀알이 썩어져야 많은 열매를 맺듯. 그는 이내 별이 되어 세상을 비추는 중이다. 시월의 마지막 밤에 이미. 아무래도 이제 나는 창문 너머 밤하늘을 언뜻언뜻 볼 것 같다. 별이네 가족의 애틋하고 아름다운 재회를 기대하며.
시월의 마지막 밤은 푸르고 깊었다.  

작성자이서진 소설가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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