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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소리] "장애우 복지" 위한 공염불, 이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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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두녀, 그는 두 개의 이름을 갖고 있다. 이미리(33세)라는 이름과 이두녀(43세)라는 이름이다  그가 두 개의 이름을 갖게 된 내력은 기구하기만 하다.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었던 이미리는 열 살 때 갑자기 눈이 어두워졌다. 시력을 잃게 된 것이다. 부모는 병원은커녕 "저 년은 우리 집 망신 덩어리다. 빨리 뒈져라, 양잿물이라도 먹여야겠다"는 등 온갖 욕설을 퍼부었다. 이미리는 쥐어 박히고 맞으면서 공포의 나날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나마 말리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없었더라면 꼼짝없이 죽었을 지도 모를 운명이었다.
  열한 살이 되던 때 부모의 구박을 견디다 못해 이미리는 무작정 집을 뛰쳐나왔다.  앞도 보지 못하는 어린 소녀가 갈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울며불며 굶고 헤매고 다녀도 강원도 땅을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떠돌아다니다 손녀딸을 찾아 집을 나선 할머니의 품에 안기게 되었다. 할머니 할아버지 역시 자신들을 버려둔 채 어디론가 도망가 버린 그의 부모들 때문에 걸인이나 진배없는 생활을 하고 있었다.
  집도 없이 공동묘지 근처 움막집에서 중풍으로 쓰러진 할아버지를 돌보며 마을에 내려가 먹을 것을 얻어다가 목숨을 연명했다. 지금에 와서야 회상하지만 그는 그때가 가장 평화스러웠던 때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 평화스러운 순간은 극히 짧았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고 할머니와 이미리 소녀는 무서움에 떨면서 밤을 보내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잠에서 깨어나 보니 끌어안고 함께 잠들었던 할머니가 싸늘한 시체로 변해 있었다. 동네 사람들이 찾아와서 할머니를 땅에 묻을 때도 소녀는 울기만 했다.
  천지에 의지할 곳 한 곳 없는 앞 못 보는 어린 소녀는 돌부리에 채이고, 넘어지고, 시궁창에 빠지기를 수없이 반복하며 움막집을 떠나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 어떤 마음씨 좋은 부부를 만나게 되었다. 비록 앞은 보지 못하지만 그는 그 집에서 어린 아기를 돌보며 살게 되었다.

  언젠가는 부모가 찾아와서 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떠는 맹인 소녀를 보다 못해 주인 부부가 자기들 딸의 이름을 사용하도록 했다. 주인집 딸은 이미 죽은 지 오래되었지만 사망 신고를 하지 않고 있던 상태라 그렇게 할 수 있었다. 그 이름이 이두녀이고, 자신보다 10살이나 더 많은 여자로 둔갑을 하게 된 것이다. 살았으나 죽은 이름이 있고, 죽었으나 살아있는 이름이 있는 것이다.
  그 후 그는 주인 부부의 배려로 춘천맹학교에 입학해서 안마 공부를 할 수 있었고, 흘러 흘러서 서울까지 오게 되었다. 숱한 역경을 넘어 자신과 같은 처지인 맹인 남편을 만나 가난하지만 열심히 살고 있다.
  아직까지도 그는 옛날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몸을 움츠리고 떨기도 한다.
  "부름의 전화"가 그와 인연을 맺은 지 몇 년이 되었다. 부름의 전화 개설 당시에 큰딸 새롬이가 태어났는데 그 이후에 슬기, 샘, 두 딸이 더 태어났다.
  부름의 전화에 자주 의뢰를 하는 그에게 "부름의 전화 믿고 줄줄이 아이 낳는 것 아니냐", "부름이라고 이름짓지 그랬냐"고 농담을 했더니 "너무 무섭고 외로워서 아이를 자꾸 낳는다"고 되받는다.
  천진스럽고 귀여운 이 아이들을 제대로 돌봐 줄 사람이 없다. 엄마 이두녀는 안마원에 가고, 아빠 혼자서 세 아이들과 씨름을 한다.
  앞이 보이지 않는 아빠는 냄새가 나야지만 아이가 똥을 싼 것을 안다. 아이들 건강 상태에 따라 음식도 적당히 먹여야 하는데 그것이 잘 안되어서 탈이 잘 난다. 의뢰내용 중 가장 많은 것이 소아과 병원을 찾는 일이다.
  병원에 한번 가려면 무려 여섯 명이나 되는 인원이 동원된다. 샘은 엄마가 업고, 슬기는 아빠가 안는다. 그리고 봉사자는 새롬이 손을 잡고 양팔은 엄마 아빠가 잡고 따라오게 한다. 대이동(?)이다. 이 모습이 길거리 사람들에게 구경거리가 되는 것은 물론이다.
  부름의 전화에서 파송활동을 하는 봉사자 중 이들 가족을 만나지 못한 봉사자가 없을 정도다. 부모가 모두 맹인이기 때문에 아이들이 색깔 구분을 못한다. 이 아이들의 환경이 가져다 주는 심각한 현상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이미리 아니 이두녀 같은 장애인은 우리 주변에 얼마든지 있다. 또 가정에서부터 버림받고 소외되고 있는 장애인도 얼마든지 있다.

  얼마 전 노점상을 하던 50대 장애인 가장이 단속이 심해 못 살겠다고 생활고를 비관하여 자살을 했다.
  오죽했으면 죽었을까? 죽을힘이 있으면 살 힘도 있을 텐데......라는 생각은 단순하고 짧은 나의 생각일 것이다. 한 인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데는 그에 맞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우리의 이웃에 살고 있는 한 사람이 죽음으로 치달려 갈 동안 나는,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되는가.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 "어려운 이웃과 함께"...... 장애인에 대한 분에 넘칠 정도의 사랑을 담은(?) 수많은 구호가 난무하는 표어들 속에서도 장애인들은 여전히 생목숨을 던지고 있고, 우리는 구호만 외칠 뿐 이들의 인간답게 살 권리에 대해선 무감각하게 모른 척 할 때가 많다. 마치 유행어를 입에 달고 다니듯이 말이다.
  10년, 20년, 30년, 40년 아니 평생을 문지방 한번 넘어보지 못하고 집안에만 갇혀 살아온 사람들이 설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대문 밖만 나서면 구경거리로 내몰리고 집안에서는 골칫덩어리로 존재하는 이들, 지금 우리가 주장하는 "장애인 복지의 보장요구"는 이들에게 과연 얼마만큼 근접하고 있는가.
  대상은 저만치 멀리 있고 그저 목소리만 우렁찬 공염불은 아닌가.  ■
작성자김정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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