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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당한 날, 최고의 날

[신순규의 뉴욕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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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인사드립니다. 함께걸음 독자 여러분, 복 많이 받으시고 하고자 하시는 일 모두 성취하시는 2014년이 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작년에는 손가락에 감각을 잃게 되면서, 글을 마음껏 쓰지 못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감각이 많이 돌아왔고 이제는 글을 어느 정도 쓸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글로 더 자주 찾아뵙기로 결심해봅니다.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차별을 당한 경험이 있을 것 같습니다. 저는 한국을 떠난 지가 31년이 넘었지만, 아직도 택시 승차를 거부당한 일들이 뚜렷하게 생각납니다. 그리고 미국에 있는 한국 식당에 안내견과 같이 들어가려고 할 때, 들어오지 못하게 했던 식당 직원들과 실랑이했던 몇 번에 경험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3년 11월 13일, 미국 필라델피아(Philadelphia) 공항에서 일어났던 시각장애인 차별 사건에 대한 뉴스를 읽고, 여러분께 꼭 전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알버트 리지(Albert Rizzi)라는 시각장애인은 그날 그의 안내견 닥시(Doxy)와 함께 유에스에어웨이(US Airways) 4384편으로 뉴욕주 롱 아일랜드(Long Island)에 있는 공항으로 떠나려고 했습니다.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를 가는 비행편이였기 때문에 비행기는 작았고, 승객은 35명뿐이었답니다. 원래 안내견은 시각장애인이 앉아 있는 좌석 앞에 누워 있거나 앞자리 밑에 엎드려 있게 하는데, 비행기가 작다보니 리지 씨가 앉은 자리에는 닥시가 눕거나 엎드려 있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옆에 앉아 있는 승객의 자리 앞에 닥시를 있게 했답니다.

8시 반에 떠나야 했던 비행편은 거의 두 시간이나 떠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승객들은 안전벨트를 풀지 못한 채, 비행기가 떠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고요. 그런데 거의 24시간 주인과 붙어 있는 안내견이 낯선 비행기 안에서, 그것도 주인과 떨어져서 얌전히 2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리 없었습니다. 그래서 닥시는 자꾸 리지 씨에게 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본 승무원은 리지 씨에게 개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라고 했고, 이것이 언성 높은 말싸움이 되어버렸답니다.

이 사건 때문에 기장은 비행기를 게이트로 다시 몰고 갔고, 공항 안전요원이 리지 씨와 닥시를 비행기에서 내리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건을 목격한 승객들은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내려야할 사람은 리지 씨와 닥시가 아니라, 손님을 함부로 대한 승무원이라면서 승객들이 들고 일어났습니다. 리지 씨와 닥시를 다시 태우지 않으면 그들도 다 내리겠다고 했답니다. 기장은 결국 비행편을 취소했고, 리지 씨와 닥시를 포함한 4384편 승객들 모두 버스를 타고 롱 아일랜드까지 가게 되었고, 이것은 그 다음 날 큰 뉴스가 되어 미국 전역에 알려졌습니다.

리지 씨는 아주 끔찍한 경험이 아주 좋은 경험이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권리 침해를 보고 가만히 있지 않은 승객들을 칭찬하는 사람들의 글이 인터넷에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1시간도 안 되는 비행시간보다 적어도 4배는 긴 버스 여행을 택한 사람들, 그것도 늦은 밤에 갈 길을 그렇게 가기로 한 사람들은 영웅이 되었지요. 저 역시 리지 씨가 당한 부당한 일에 대해서 분노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같은 비행기에 탄 한 사람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큰 불편을 무릅쓰고 일어난 승객들의 마음에 감동했습니다.

세상에서 차별을 없앤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겠지요. 하지만 남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을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4384편 승객들처럼 차별을 막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이 사건에 대한 기사들을 읽으면서 저도 다른 이들을 차별하는 것보다 차별을 막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작성자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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