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으로 품은 아이티 > 지난 칼럼


가슴으로 품은 아이티

[김월림의 지구 밭 희망의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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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의 난민촌

“짝 짝 짝 짝”

뉴욕을 출발한 비행기가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공항 활주로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흑인 승객들은 박수를 쳐대며 즐거워합니다. 흑인들은 아마도 세상을 즐겁게 바라보는 아주 특별한 DNA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은 것에도 이렇게 즐거워하니 말입니다.

아, 이제는 이런 감상에 빠져 있을 때가 아닙니다. 공항에 도착했으니 수화물을 찾는 첫 번째 미션을 완수해야 합니다. 와우, 그런데 아이티 공항에 드디어 수화물을 운반하는 벨트가 만들어졌네요. 조금씩 달라져가고 있는 이 나라의 상황을 바라보며 얼마나 기뻤던지. 이번 여행에서 나는 까싸인 난민캠프에 있는 임시학교의 어린이들을 위해 대형텐트를 설치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이 텐트가 얼마나 크던지. 텐트의 알루미늄 골조를 담은 상자를 세워 놓았더니 족히 내 키는 되어 보입니다. 이 놈 때문에 인천공항에서부터 난리가 났습니다. 무게가 초과되어 항공사 직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경유지인 뉴욕에서는 더 큰 소동이 있었지 뭡니까. 도저히 이 큰 놈을 혼자 들 수가 없더라고요. 무슨 일을 하든지 일단은 힘이 있어야 될 것 같군요. 이참에 한국에 돌아가면 중단했던 운동을 다시 시작하려고 합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한꺼번에 수화물을 찾는 탓에 포르토프랭스 공항은 한바탕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아직도 아이티를 여행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구호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가지고 온 짐의 양은 가히 상상을 초월합니다. 조금이라도 공간이 생기면 그곳에 구호품을 쌓아둔 탓에 공항은 발 디딜 곳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위해 바리바리 챙겨 온 이들의 모습은 정말이지 감동입니다.

한참 만에 대형텐트를 무사히 찾았습니다. 그새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버렸습니다. 나는 원래 땀이 많지 않은 사람인데 땀에 젖어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되었네요. 그래도 마음은 얼마나 즐겁고 기쁘던지. 아마도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은 중독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특히 나눔이란 것은 중독성이 매우 강해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지 못하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아이티 공항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모두 이런 특별한 삶에 중독된 사람들입니다. 땀에 젖은 그들의 얼굴마다 기쁨이 가득하니 말입니다. 이것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가장 값진 것일 것입니다.

지금 아이티 전체는 철거작업이 한창입니다. 유엔군의 중장비가 건물을 부수고 아이티 사람들이 부서진 벽돌 등을 손으로 나르고 있습니다. 무너진 건물을 잘게 부수는 중장비의 굉음과 여기저기에서 흘러나오는 각종 음악소리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건물 철거작업을 위해 유엔의 헌병대에서 차량과 사람들을 통제하기 때문인지 도시전체는 주차장과 같습니다. 도무지 자동차가 움직이질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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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년 아이티 대지진 직후 모습

“지진으로 엄마, 아빠가 건물에 깔려 돌아가셨어요. 그래서 저는 레오간에 있는 친척 집으로 오게 되었지요. 정말이지 엄마가 보고 싶어요.”

난민촌의 흑인 소녀 나푼은 일곱 살이 된 여자아이입니다. 나푼의 가족은 아이티의 수도 포르토프랭스 델마 구역에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지진으로 가족을 잃었기에 나푼은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었습니다. 나푼의 몸 여기저기에는 벽돌에 긁힌 상처가 아직까지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나푼을 아프게 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상처가 아닌 보이지 않는 마음의 상처일 것입니다. 한참 부모의 사랑을 받아야 할 나이에 가족을 잃은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레오간에 있는 나푼의 이모 집도 지진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렸습니다. 나푼의 이모는 지금 난민촌 캠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나푼은 완전히 찬밥 신세일 뿐입니다. 비좁은 텐트 안은 나푼이 누울 공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푼은 밤에 난민촌 캠프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닙니다.

임시학교 텐트 밖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나푼이 나의 눈에 들어왔습니다. 나푼의 얼굴에는 생명력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저 멍하니 먼 곳만을 바라볼 뿐.

 

‘나푼은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뙤약볕에 홀로 앉아 있는 나푼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흙바닥에 앉아 있는 나푼의 모습 속에 집에 있는 딸아이의 모습이 겹쳐졌습니다. 그러자 내 몸이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나는 나푼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나푼을 힘껏 안았습니다. 난민촌에서 특정한 아이와 신체적인 접촉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특히 이렇게 불결한 환경에서의 신체적인 접촉은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상관없습니다. 나는 잠시만이라도 나푼을 아무 생각 없이 안아주고 싶습니다. 나푼은 또 다른 나의 딸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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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티 어린이

나푼의 숨소리가 내 심장에 전달되고 있습니다. 주머니 속에 아껴 둔 초콜릿을 잽싸게 나푼의 입에 쏙 넣어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두움으로 가득한 아이의 얼굴이 환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나푼에게서 나는 나의 딸이 늘 보여주던 환한 모습을 보고 싶었나 봅니다. 나푼의 환한 미소가 내 가슴에 전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는 아이티를 느껴가고 있습니다.

작성자김월림 써빙프렌즈 아이티 지부장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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