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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일기] 탁월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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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 동생을 둔 어느 여자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맺힌 자신의 이야기를 하며 한없이 눈물을 흘렸다.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장애를 갖고 있는 당사자의 고통과 그의 가족이 겪게 되는 고통의 크기란 정말 당해 보지 않고는 짐작하기조차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가르치고 있는 우리 반의 대훈이 어머니, 기성이 할머니, 재희 어머니도 그러셨다. 장애를 갖고 있는 자식 앞에서 부모는 굉장한 의지의 소유자가 되기도 하고 한없이 무력한 존재가 되기도 하나 보다.
 내가 특수교육을 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어떻게 보면 아주 사소한 일이다. 난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가 3.8cm 짧다. 걷는 것도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니, 저기"하며 나의 걸음걸이를 쳐다보는 시선들이었다.
  난 이런 시선을 없애고자 특수교육을 하기로 결심했다. 장애아들을 가르치는 특수학교 교사가 아니라 장애우가 아닌 사람들을 가르치는 "특수교사"가 되고 싶었다. 종교적인 이유를 들지 않더라도 나는 나의 행실로 사람들의 시선을 바꿔 놓고 싶었다. 입으로만 "장애아를 동정의 눈으로 보지말고 같은 인간의 입장에서 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먼저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바르고 성실하게 해나감으로써 "남과 다르지 않음"을 보이고 그런 생활을 통해 사람들의 인식을 바꿔놓고 싶어서 특수교육을 한 것이다.
  나의 특수교육관은 결코 그 포부가 대단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지극히 소박한 것이었다. 복지 행정이 제대로 실현되기 위해 가장 시급하고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될 과제라 생각되었고 그에 필요한 공부를 해야만 했다. 그래서 얻은 결과물이 상담이었고 그중 가장 우선되는 것이 장애아가 있는 가정을 찾아가 상담하는 것이었다.
  우리학교는 우리나라 최북단 특수학교라고 불려진다. 시골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귀신에 씌어 장애아가 태어났다고도 하고 묏자리가 나빠서라고 운운하기도 하는 등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는 어른들이 많다. 장애아를 자식으로 둔 것을 부모인 자신의 책임으로 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내가 절실하다고 생각한 것이 부모 교육이었다. 우선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 그리고 아이에 대해 발전 가능성을 갖게 하는 것, 부모가 가정에서 해 주어야 하는 것과 할 수 있는 부분 등 부모들의 처지에서 무리다 싶을 정도로 전해주었다. 어머님들의 한숨은 더욱 깊어진다. 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었다.
  그런 부모들의 근심을 보면서 나는 나의 어머니를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 못난 아이들은 바로 나였고 또 그런 못난 아이를 가진 어머니들은 나의 어머니였던 것이다. 여섯 명의 아이들과 또 그의 가족들이 내겐 너무도 소중했다.

  방학 중 일직 날 나는 너무도 감격스러웠다. 그 날은 우리 민들레반의 소집 일이었다. 아침에 가자마자 눈에 띈 것은 대훈이의 편지였다. 물론 대훈이가 쓴 것은 아니지만 그의 부모님이 정성스럽게 써 보내주신 감사하다는 편지글을 읽으며난 내 어머니한테서 편지라도 받은 양 가슴이 뭉클해져옴을 느꼈다.
  편지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 기성이 할머니의 전화였다. 기성이는 그의 행동이 너무 지나치도록 산만해 방학 전 할머니와 병원엘 가보자 했던 터라 몹시 궁금했던 터였다. "진단의뢰서를 떼 놨는데‥‥‥ 네, 제가 데리고 가보죠" 약속을 정하고 끊으려는데 할머니 왈 "빨 랑 개학해 기성이 핵교가야지, 지가 너무 힘들어요."라고 하신다. 칠순이 가까운 할머니의 어려움이 그대로 전해졌다. 기성이는 부모님이 안 계셔서 할머니 손에서 자라고 있다. 나이는 열다섯 살, 공격적인 성격에 자기를 잘 추스르지 못해 늘 노심초사하시는 할머니. 할머니의 깊은 주름살이 어루만져지는 듯했다.
  결국 어느 누구도 소집일 이라고 학교에 오지는 않았다. 물론 애초부터 기대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모두들 아이들이 잘 있다는 내용의 글과 전화를 주셨다.
  나는 이것이 나의 교육관의 첫 시도에 대한 반응이라 생각했다. 제자리에 잘 앉아있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으기 위해 하루에도 3∼4바퀴씩 학교 주변을 돌아다니곤 했지만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알림장을 보냈다. 그렇게 해서 쌓아온 신뢰의 결과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방학이 시작되었을 때 "과연?" 하는 의혹에 빠져 조금은 지친 상태였다. 그런데 이젠 서서히 2학기를 준비할 마음을 가진다. 자신이 생기는 것이다.
  이제 방학이 끝나면 숙제를 내준 것과는 무관하게 1학기에 배웠던 것도 낯설고 어쩌면 기억조차 못할지 모른다. 난 또 새로운 방법으로 접근을 시도하며 씨름할 것이다. 그리고 부모들에게도 아이의 교육에 대해서, 또 아이의 장래에 대해서 자부심을 갖도록 또 다른 흉계(?)를 꾸밀 것이다. 그런 기막힌 흉계를 생각하며 운동회도 준비하고 학습 발표회도 준비할 것이다.
  내 스스로가 지금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지 만 그래도 마음이 여려서 혼자 끙끙 앓곤 한다. 내가 자신감 있는 걸음을 걸을 때, 그런 시선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말이다.
  난 더 자신감 있고 활발하게, 더욱 바르게 생활해 나갈 것이다.
  책도 읽고 음악도 듣고 자신 있게 짧은 반바지를 입고 산에도 가고 농구공을 들고 동생과 몸싸움하며 농구도 하고, 마치 파리 잡는 듯 한다는 치욕적인 말을 들으며 탁구공을 따라다니기도 하고, 억센(?)힘을 과시하며 동판화에 몰두하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이 내게 있어 어느 것보다 탁월한 선택이 될 수 있도록 말이다.  

사방이 산과 들로 둘러싸여 있는 농촌에 조용히 자리 잡고 있는 작은 특수학교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박경목씨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실었다.
특수학교, 복지 시설이나 기관, 복지관 등지에서 종사하는 분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기다린다.

작성자박경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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