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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와 정당한 편의 제공

조원희의 법으로 세상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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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 머문 지 벌써 3달이 훌쩍 지났습니다. 이제 여기 생활이 익숙해져 가면서 종종 서울에 있을 때와 비교하게 됩니다. 어떻게 다른지, 뭐가 더 편한지. 서울에서 근무할 때와 다른 점 중의 하나는 출퇴근 시간이 길다는 것입니다. 직장은 뉴욕 맨하탄에 있지만 맨하탄의 아파트는 임대비가 너무 비싸 근처 뉴저지에 살고 있습니다. 맨하탄과 가까운 곳은 그래도 비싼 편이라 좀 더 안쪽으로 들어와 살다 보니 아무래도 출퇴근 시간이 많이 걸립니다. 서울에서는 20~30분밖에 걸리지 않았던 출근이 여기서는 1시간을 넘기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출퇴근에만 하루 2시간 이상을 쓰는 셈입니다. 교통사고라도 나서 길이 막히면 무작정 버스에서 기다려야 합니다.

지난겨울 유난히 눈이 많이 왔습니다. 그런 날이면 버스가 제대로 다니지 않기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아예 그 전날부터 재택근무를 하라고 미리 권고하기도 합니다. 변호사들 중에는 생활 스타일에 따라 일찍 퇴근해서 가족과 저녁을 먹고 저녁 업무는 집에서 처리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저녁에 부득이 회의를 해야 하면 전화로 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습니다. 꼭 얼굴 보고 회의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왜 일찍 집에 갔느냐며 나무라는 사람도 없습니다. 여기에도 과연 집에서 제대로 업무를 하겠느냐며 회의적인 사람도 있습니다만, 안전과 가정을 중시하다 보니 재택근무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장애와 관련하여 주목받은 판결이 하나 있었습니다. 제6순회항소법원은 미국의 고용평등위원회(EEOC, Equal Employment Opportunity Committee)가 포드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재택근무도 장애인에 대한 ‘편의 제공(accommodation)’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포드사에 다니는 해리스라는 직원은 과민성대장증후군의 증상을 억제하기 위하여 포드사에 일주일에 최대 4일까지의 재택근무를 요청하였습니다. 해리스는 철강 공급자들과 철강을 사용하여 포드사에게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들을 연결시켜주는 업무를 처리하고 있었습니다. 포드사는 위와 같은 해리스의 요청에 대해 해리스의 업무의 핵심은 그룹 토의이고 철강 공급자들과의 대면 회의도 꼭 필요하다며 재택근무 요청을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고용평등위원회가 해리스를 대신하여 포드사에 소송을 제기한 것입니다.

1심 지방법원은 포드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청구기각의 판결을 하였으나, 2심에서는 2대 1로(2심은 3명의 판사가 재판을 하며 다수결로 결정함) 1심 판결을 파기환송하는 판결을 하였습니다. 제6순회항소법원은 기술의 발달로 ‘직장(workplace)’이라는 개념이 반드시 고용주가 제공하는 물리적 장소에 한정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며, 향후 법률을 해석함에 있어 직장은 피용자가 자신의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직장에 해당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결국, 장애인이 정당한 편의 제공으로 재택근무를 요구하는 경우 만약 재택근무를 통해서도 충분히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면 고용주가 이를 거부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제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보다 넓은 범위에서 편의 제공이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었습니다.

여기서 장애소송과 관련된 뉴스나 자료들을 접하며 미국의 장애소송은 우리와는 사뭇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자주하게 됩니다. 위 판결에서도 보았듯이 연방정부가 장애인을 대리하여 사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장애소송이 매우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장애의 개념을 넓게 보고 있기도 하고, 누구라도 후천적인 질병으로 장애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합니다. 장애소송이 많다 보니 장애인을 대리하여 장애소송만을 전문으로 하는 로펌들도 있고, 역으로 이에 대응해서 기업의 장애 이슈를 전문적으로 처리하는 로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장애소송이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돈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도 심심치 않게 제기됩니다. 최근에는 장애소송의 남용을 제한하자는 움직임도 있을 지경입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러운 것은 ‘장애’가 무엇을 하든 하나의 주요한 고려사항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건물을 지을 때나 사업을 시작할 때나 혹시나 장애와 관련한 위반사항은 없는지 챙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는 이제 시작인 것 같습니다. 물론 미국과는 다른 모습으로, 우리 나름의 제도와 법과 문화를 형성해 갈 것입니다. 그러나 어떠한 모양이든 장애에 대한 고려, 나아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사회 모든 영역의 주된 토대가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장애소송에 대한 우려에도, 결국은 이를 통해서 장애인을 존중하는 문화가 형성되었다는 점이 우리도 지행해야 할 같은 지향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작성자조원희 법무법인(유) 태평양 공익활동위원회 장애인 &  aery727@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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