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레짐작, 장애인의 색안경 > 대학생 기자단


지레짐작, 장애인의 색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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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차별대우를 당한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소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을 향해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생각, 말, 행동 등을 하는 것을 우리는 자주 경험할 수 있지요. 이런 차별 경험은 기분을 나쁘게 하고, 더 심할 때는 자존감을 파괴하기도 합니다. 자주 생기는 차별 경험은 장애인과 비장애인들 사이에 큰 담을 쌓기도 하지요. 그래서 장애인들도 비장애인들을 향해 무례하거나 부적절한 생각, 말, 행동을 할 수 있게 되고, 결국 ‘함께걸음’이라는 말은 한 잡지의 타이틀 외에는 무의미한 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얼마 전에 저에게 있었던 경험을 통해, 이 담을 쌓는 것에는 장애인들도 한 몫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나누고자 합니다.

저번 달에 저희 가족은 캔쿤 멕시코에 있는 한 리조트로 여름휴가를 갔었습니다. 하루는 인공 파도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는 풀장에서 아이들과 놀고 있었는데, 어떤 젊은 남자가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는 저에게 이런 말을 정중하게 했습니다. 풀장 밖에 있는 어떤 여자가 저에게 풀장에서 나오라는 말을 한다고요. 파도가 심하게 치니까 위험하다면서 풀장에서 나오라고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30년 전 한국에서 일어났던 일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1984년 여름이었습니다. 2년 동안의 미국 유학 후 저는 한국에 다녀왔었는데, 하루는 풀장으로 저희 가족이 놀러갔었습니다. 부모님과 형 그리고 남동생이 다 같이 갔었지요. 유학 중 저는 수영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제가 다니던 시골 고등학교에는 올림픽경기장 수준의 풀장이 있었는데, 거기서 저는 수영도 배우고, 물이 깊은 곳에서 다이빙하는 훈련도 했었지요.

유학 전에는 수영을 할 줄 몰랐기 때문에 저는 가족 앞에서 수영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게다가 놀러갔던 그 풀장에도 다이빙보드가 있었고, 저는 다이빙을 해서 수영하는 것을 보여주면 정말 멋질 것 같단 생각을 했지요. 그래서 형이 저를 다이빙 보드까지 안내해주었고, 저는 학교에서 했듯이 다이빙보드에 우뚝 섰습니다.

머리로 먼저 물속에 뛰어들어야한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저는 물을 향해 뛰어내렸습니다. 다이빙은 아주 멋있게 했는데요, 물 위로 올라와서 수영을 할 때는 주위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방향을 잘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수영장에서 길을 잃게 된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린 형이 물로 뛰어들었고, 저의 손을 잡아주었습니다.

풀장에서 일하고 있던 라이프 가드는 그 상황을 보고서야 제가 눈을 볼 수 없는 사람이란 것을 알아차렸지요.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풀장에서 나오라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이 어떻게 끝났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신경질적으로 우리에게 소리질렀던 그 라이프 가드의 말 속에 담겨있는 의미는 잘 기억이 납니다. 눈을 못 보는 사람을 풀장에서 수영하게 한 것도 말이 되지 않지만, 어떻게 그런 사람을 다이빙까지 하게 했느냐는 말이었으니까요. 아마도 그때 당시 한국에서는 스페셜올림픽을 중계하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다시 2014년 여름, 저는 풀장 밖에서 저를 나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이 풀장의 책임자나 라이프 가드라고 생각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무례이지만 장소는 멕시코였고, 멕시코에서 시각장애인들을 어떻게 대하는지 몰랐기 때문에 대놓고 거부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저는 그 정중한 남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꼭 풀장에서 나올 것을 원한다면 그 여자더러 직접 와서 나에게 말하라고요. 그는 좀 어리둥절 하는 것 같았지만, 저의 말을 그 여자에게 전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일 후, 저와 저의 아이들은 계속 신나게 놀았습니다. 튜브를 이용해서 파도를 타고, 풀장 가운데 우뚝 서서 파도를 받아치고, 풀장 벽 가운데에 있는 계단에 올라서서 파도 칠 때 넘어지지 않기 등을 하면서 말이죠.

그렇게 놀다가 우리는 아이들 엄마가 앉아 있던 곳으로 가서 점심을 먹기로 했습니다. 몸이 좀 불편했던 아내가 짐을 지키고 있던 곳에 가자 아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왜 아까 풀장에서 나오라고 했는데 안 나왔느냐고요. 생각보다 거센 파도를 보고 제가 넘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부탁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풀장에서 나오라고 한 것은 라이프 가드도 풀장 책임자도 아닌 저의 아내였던 것이지요. 그런 것도 모르고 괜히 가만히 있는 풀장 사람들을 시각장애인을 차별하는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30년 전 경험이 저에게 색안경을 쓰게 한 것이었죠.

다른 사람들의 동기나 의도를 지레짐작하는 것은 큰 오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장애가 있는 우리들은 종종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무시한다든지 싫어한다고 느끼면서 그것이 다 우리의 장애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차별의 경험은 이런 생각을 더 자주 하도록 우리들의 가치관을 바꾸기도 하지요. 눈에 보이는 장애가 있는 우리들이 먼저 이런 가치관에서 탈출해야한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와 비장애인들 사이에 있는 담을 서서히 무너뜨릴 수 있을 테니까요.

작성자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lim0192@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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