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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소리] 전문가들의 함께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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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월, 이리하여 1992년 한해를 보내는 시간이고 나로서는 이 고정 칼럼 난을 마치는 기간이다. 이런 자리에 나 자신을 포함한 장애우서비스 분야의 여러 전문가들이 의미 있는 반성과 다짐을 하는 겸허한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한다.
  내가 한 해 동안 만난 여러 장애아동부모님들 생각이 난다.
  그분들의 말씀 중 공통된 특징의 하나는 모두들 장애우 분야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에게 실망하거나 상처받았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이다.
  장애우와 그의 가족을 위해 서비스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이 그들에게 가장 상처를 준 사람으로 기억되고 있다는 것은 얼마나 역설적인가. 우리의 전문성은 소위 "전문적 도움을 주는 직업" (Helping Profession)이다. 장애아동부모님들이 실망하고 상처받는 데는 이런 전문직에 대한 자연스런 기대에서 기인된 이중적 실망이 가중된 것이었을 것이다.
  장애를 가진 신생아로 판명되는 경우, 일부 의사들의 전문가적 특유의 확신적 태도로 토해버리는 엄청난 부정적 예후, 그 부정적 예후와 평생을 같이 할 가족들의 반응에 대한 무감각성‥‥‥‥,
  "희망이나 기대는 걸지 마세요."로 끝나버리는 의사가 내리는 진단의 권위 있고 당당한 언어적 폭력!
  그러나 그런 엄청난 예후에 계속도전하며 건강하고 독립적 생활을 할 수 있는 청소년으로 키워낸 부모님들이 우리 옆에 계시다.
  교육기관에서의 일부 교사와 일부부모와의 관계는 어떠한가? 장애자녀를 두었다는 이유로 강자와 약자의 관계형성, 도움을 베푸는 자의 여유와 도도함의 만끽 앞에 도움을 감지덕지 받아야 하는 자의 주눅 들린 위치로 격하되는 왜소함 !

  장애아동 부모님들은 말한다. "이 애는 가망 없다"라고 장애아동의 능력과 잠재력에 대한 극단적이고 비교육적 언사를 가장 많이 하는 사람들이 아마도 교육전문가인지 모르겠다고. 이러한 추측은 무리한 것일까? 물론 교사들이 직접적으로 장애아동을 가르치고 있는 어려움에서 나온 푸념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가능성이란 한 아동이 어떤 학습내용을 실제로 얼마나 빨리, 많이, 정확히 배웠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개념이 아니다.
  교사에게 있어 한 학생의 교육가능성은 "학생이 배울 수 있다고 믿어주고 기대하는 데서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교육가능성은 교사의 가치와 신념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부정적인 교육관 자체도 용납될 수 없지만 그런 절망적 평가를 교사로서 부모에게 서슴없이 할 수 있다는 데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전문가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아니 우리 전문가들은 어떤 사람들이어야 하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의 부족에 대해서는 인식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우리 자신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를 규정하는데 더 중대한 우리 자신의 가치체계, 철학, 신념, 윤리 등으로 구성된 사람됨을 표현할 우리 자신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별로 깨달음이 없는 듯하다.
  장애우 서비스관련 분야의 모든 전문가들은 적어도 장애우가 우리와 "똑같은 인간임"에 대한 확실한 경외심에서 모든 일을 출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경외심은 절대적으로 무조건적이다.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졌더라도 타협할 수 없는 전문가들의 첫 번째 인간성 요건이다.
  전문가가 전문적인 지식과 기술을 발휘해서 전문적 행위를 해낼 대상으로서만 장애우와 그 가족들을 무의식 중에라도 보고 있다면 전문가에 대한 실망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인간 개개인에 대한 무조건적 경외심의 확신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기본적 연대감에 대한 인정과 가장 본질적인 인간 동료애를 가져오게 된다. 이러한 동료애가 전문적 행위에 선행되고 또 면밀히 병행돼야 한다는 가치체계를 갖는 것은 전문가 모두의 의무이고 축복이라고 생각된다.
  장애우와 장애우 가족들이 전문가들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원하는 것이 아마도 이런 "인간 동료애를 가진 전문가들의 함께걸음"이리라 생각해 본다.
  지난 한 해 동안 나 자신, 많은 함께걸음을 못한 점을 반성해 보며 1993년 새로운 다짐으로 시작하고 싶다.

작성자박승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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