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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을 기다리며

[신순규의 뉴욕스타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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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달쯤 전이었던 것 같습니다. 페이스북(이하 페북)에서 ‘감사 릴레이’라는 것을 하시는 분들을 보았습니다. 감사한 것 세 가지를 페북에 포스팅하고, 감사 릴레이를 계속하게 될 페북 친구를 추천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것을 분석하려 드는 버릇이 있는 저에게는, 이것이 달콤하면서도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다들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삶을 살면 이런 릴레이 이벤트까지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너무나 비판적인 반응이었던 것도 같습니다.

매년 11월 네 번째 목요일은 추수감사절입니다. 한국의 추석과도 같은 이 날을 영어로는 ‘땡스기빙(Thanksgiving)’이라고 부릅니다. 아주 간단하게 말해서 감사를 드린다는 말이지요. 1620년에 미국에 와서 플리미스(Plymouth)라는 한 북동부 마을에 정착한 영국 청교도들이 1621년의 수확물을 놓고,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함께 감사를 드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날을 미국의 정식 공휴일로 만든 사람은 미국의 16대 대통령 아브라함 링컨입니다. 남북전쟁 중이었던 1863년 11월 26일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날’로 선포하고, 전쟁을 치르느라 고생하는 군인들에게 칠면조와 닭고기 만찬을 베풀었답니다.

감사절은 한국의 추석과 비슷하게 멀리 혹은 가깝게 떨어져 살던 가족들이 다 같이 모여서 먹고, 마시고, 대화를 나누는 가장 큰 명절입니다. 대개 가족들은 오븐에서 구워낸 칠면조 고기와 식사에 곁들이는 여러가지 요리들, 예를 들어 고구마, 감자, 옥수수, 강낭콩, 월귤 소스 등을 먹는데요, 다이어트를 하는 사람들에게 큰 타격을 주는 만찬이지요. 후식으로 먹는 호박 또는 사과 파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디저트입니다. 아, 그리고 식탁에 둘러앉아 지난 1년 동안 감사했던 것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돌아가면서 나누는 가족도 있지요.

일 년에 한 번씩 이렇게 다들 모여서 감사한 것을 서로 나누는 것도 좋지만, 저는 ‘항상’ 모든 일에 감사하며 살기 위해 노력합니다. 이번 칼럼에서는 제가 왜 이런 노력을 하면서 사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할까 합니다.

20여 년 전 저는 보스턴 장로교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지만 점점 다가오는 취업에 대한 고민이 컸지요. 한국에 돌아갈 생각은 하지도 못했지만 미국에서도 취업하기는 어려울거라 확신했습니다. 외국인이고 시각장애인이니까요. 그리고 결혼도 해야 하는데, 정말 평생 사랑하면서 같이 살 사람을 찾는 데 제일 문제가 되는 것 역시 저의 시각장애일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당시 보스턴교회 청년부를 지도하시던 집사님 한 분이 추천해주신 책, 멀린 크라더스 목사님의 <감옥에서 찬양으로(Prison to Praise)>를 읽게 되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젊은 군인이었던 저자는 탈영죄로 군대에서 감옥 생활을 했답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예수님을 만나게 된 이 분은 신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결국 군목(종군목사의 줄임말. 군대 내에 예속되어 있는 목사)이 되었다는데요. 1950년대에는 한국에서도 일을 했고, 나중에는 월남전에까지 참전했답니다.

크라더스 목사님이 처음으로 쓴 이 책에는 이 분의 신앙 처방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라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의 가르침을 모든 일에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 이 분의 주장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일어났을 때는 물론이고, 우리에게 나쁜 일이 일어났을 때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말이 안 되는 것도 같지만 이 주장에는 아주 강한 근거가 있었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범사에 감사하는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일어난다는 것이었으니까요.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 신앙의 처방을 따라한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월남 참전의 명령을 받은 한 군인의 아내는 부모도 형제도 없었답니다. 유일한 가족이었던 남편이 월남까지 가야 한다는 사실과 그가 죽어서 올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자살까지 생각했던 그녀에게 크라더스 목사님은 그 상황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했답니다. 화를 내며 그 말을 무시하다가 결국 그녀와 남편은 하나님께 감사하는 기도를 같이 하게 되고, 그러자마자 그녀는 아주 어릴 적 잃어버린 친부모를 우연히 찾게 됩니다. 그리고 법학 공부를 했던 남편은 한 군사 법원의 법무관과 함께 일하게 되면서 월남에 가지 않게 되었답니다. 이 외에도, 병을 고치게 된 경우나 문제가 많았던 아이가 부모의 감사 생활로 다른 아이가 된 경우도 있었습니다.

정말 기적 같은 이야기가 많이 적혀 있는 이 책을 읽고 저는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15년이 넘게 세상을 보지 못했지만 이 목사님을 만나고 기도를 받으면 저의 시력도 되찾을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래서 그 목사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눈으로 다시 세상을 보고 싶다고요, 그래서 찾아가겠다고요. 목사님은 저에게 친절하게 답장을 해주셨습니다. 눈을 뜨겠다는 생각보다는 시각장애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생활을 먼저 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감사하는 생활은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그러니까 나에게 있어 최고의 삶을 살 수 있는 하나님의 처방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제 눈으로 세상을 보지는 못했지만, 20여 년 동안 저는 그 목사님의 말씀을 잊지 않고 생활해 왔습니다. 항상 감사하는 생활을 하지는 못한 것 같지만 그래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은 계속 했지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안 좋은 일이 생겼을 때 불평하는 것은 별로 이득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불평보다는 감사를 하는 것이 나의 마음을 더 편하게 해주는 경우가 많았으니까요. 여러분도 한번 시도해 보세요. 짜증나는 일이 생겼을 때 입밖으로 나오려는 불평을 삼키고, 대신 감사의 말과 생각을 해보시는 건 어떨까요?

작성자신순규 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lim0192@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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