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 있는 조 과장, 내년엔 좀 더 따스한 봄 맞이하시길… > 지난 칼럼


용기 있는 조 과장, 내년엔 좀 더 따스한 봄 맞이하시길…

[장애인 인권 이야기]

본문

그가 광주장애인인권센터(이하 인권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선 건 4월의 어느 날이었다. 국가인권위원회(이하 인권위)에서 상담을 진행하던 중 인권센터를 소개받아 오게 됐다고 했다.

1997년 이 지역에서 꽤 규모가 큰 회사에 입사하게 된 그는 회사에서 수여하는 ‘발명왕’ 상을 받는가 하면, 우수 사원들에게 지원되는 해외 어학연수를 다녀올 만큼 유능한 사원이었다. 그렇게 그는 2005년까지 큰일 없이 회사 생활을 하던 비장애인이었다. 하지만 ‘소뇌위축증’이란 유전질환이 발병하면서 그의 일상과 회사 생활엔 큰 변화가 생겼다. 언어장애와 함께, 직선보행이 어려울 정도의 운동장애가 나타났다. 그랬다. 그는 뇌병변장애인이 된 것이다.

언어장애로 상담 업무가 어려워진 그는 사장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냈고, 이후 사장의 지시 때문이었는지 다른 부서로 배치됐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부서 배치가 달라진 것 외에 그에게 지원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인권센터를 찾기 전까지 약 8년 동안 인사고과 최하 등급인 ‘C등급’을 받으며 고용불안에 시달려야 했고, 임금 역시 절반 가량이 삭감된 금액을 수령해야 했다.


꼼꼼한 내담자, 빡빡한 고용공단

그가 다니던 회사는 지역에서 ‘장애인 고용 우수 기업’으로 거론될 만큼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하 고용공단)과 협조하며 생산라인에 다수의 장애인을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이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내담자가 장애인임을 회사에서 언제 인지했는지 확인하고자 고용공단 지사에 문의했을 때 담당자는 매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내담자가 언제 장애인 근로자로 고용공단에 신고 됐는지 그 시기를 확인해달라는 것 뿐이었음에도 “정보공개 청구를 해야 하고, 회사 측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회사 측이 내담자의 장애를 알면서도 수 년 동안 적절한 상담과 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당황스럽고 선뜻 납득이 가지 않는 답변이었다.

인권위 진정 때문에 회사 측의 부당한 조치가 있지 않을까 고민하고 있던 내담자의 상황에서 정보공개 청구를 한다는 것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조사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며 고용공단에 정보공개 청구는 하지 않기로 했다.

인권위 진정으로 불이익을 받지 않을까 고민하던 내담자는 이후 마음을 굳게 먹고 인권위에 진정을 하기로 결정했다. 조사관이 배정되고, 조사가 시작됐다. 발병 직후 사장에게 보낸 편지와 그 후 이뤄진 부서 이동, 8년 가까이 인사고과 최하 등급인 C등급을 받고도 해고되지 않은 점, 그리고 내담자에게 직접 말하진 않았지만 업무량을 최소한으로 배정해준 점 등이 인권위 조사 과정에서 회사가 확인해 준 내담자에 대한 지원 내용들이었다.

특히 업무량을 최소한으로 배정해 내담자의 질병이 진행되지 않도록 운동 등을 할 수 있는 시간을 배려해준 것이 회사 측에 유리하게 작용할 듯 보였다. 인사고과 때문에 대기발령을 받거나 퇴직하는 다른 사람들을 지켜보며 수 년 동안 고용 불안에 시달려야 했던 내담자의 상황과 달리, 회사는 할 수 있는 배려를 다 해준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발병 이후 장애를 갖게 된 내담자가 찾아가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한 명만이라도 있었다면 어땠을까? 인사고과 때문에 절반 가까이 얇아진 월급봉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그의 불안감 만큼은 없앨 수 있지 않았을까?


인사고과 제도를 바꾼다는 것

조사 후 담당 조사관과의 통화를 통해 인사고과 제도를 바꾼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다. 장애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 별도의 인사고과 체계를 만드는 것은 회사 측에서 받아들이기 매우 어려운 일일 것이라고, 담당 조사관과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담당 조사관은 조사를 마무리하기 전 회사 측에 자구책을 제시할 것을 주문했다.

하나. 회사 취업 규칙에서 장애인 차별 조항 삭제.

둘. 2014년 상반기 인사고과 평가부터 장애인 근로자에 한해 평가 체계 개선.

셋. 매년 1회 이상 장애인 근로자의 고충을 듣기 위한 간담회 개최.

넷. 신입사원 입문교육 시 장애인 인식 교육 실시.

회사는 위와 같은 방안을 마련했다고 담당 조사관에게 연락을 했다. 예상하지 못한, 파격적으로 느껴질 만큼의 방안이었다. 내담자 역시 회사 측에서 제시한 방안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수 년 동안 그의 인사고과 통지서에 찍혀 나오던 ‘C’는 ‘B’로 바뀌었다. 물론 이런 결과가 계속 유효할지는 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꼼꼼하게 인사고과 기록 등 진정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를 챙기고 정리한 내담자, 본인에 대한 내용조차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고 했던 고용공단. 그리고 한편으로 회사와 협력해 장애인 고용을 지원해야 하는 고용공단의 입장. 권고사직을 하지 않는 것 외에 평가 시스템 개선 등 다른 조치들을 생각할 수 없었던 회사까지…. 이번 상담은 특별한 개입 권한이 없는 인권센터의 한계와 그 부족함을 메울 만큼 꼼꼼한 내담자의 준비, 담당 조사관과 수시로 이루어진 소통 등 전향적인 회사 측의 모습 외에도 많은 것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2015년 봄, 8년 가까이 마음고생을 겪었을 내담자의 아내 그리고 내담자가 그토록 걱정했던 그의 어린 딸까지, 조금 더 두툼해진 월급봉투로 보다 행복한 시간이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작성자도연 (광주장애인인권센터 간사)  lim0192@cowalk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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