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정부에 구걸하는 게 아니다! > 지난 칼럼


우리는 정부에 구걸하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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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정부에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빼앗긴 권리, 그로 인한 피해를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각 장애인단체는 더 이상 정부와 유착하지 말고 뭉쳐야 하며 400만 장애인과 1600만 장애인 가족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고 비하할 것이 아니라 떳떳이 나서고 떳떳이 요구해야 한다.

  보고 듣고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 켈러라지만 그녀는 보통사람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더 많은 것을 듣고 더 많은 일을 해 인류의 귀감이 되었다.
  우리 이웃에는 백만의 장애인들이 있다. 그들이 가장 극복하기 힘든 벽은 무관심과 편견이다. 그들이 두터운 벽과 울타리를 벗어날 수 있는 밝은 사회를 위해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몇 달 전 민자당이 각 언론매체에 게재한 "장애인복지, 말보다는 실천하는 관심과 사랑이 중요하다"는 제하의 광고를 본 적이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23일 민자당 김영삼 후보 용인 유세 때 찬조연사로 나온 김득린 교수는 특정후보를 겨냥해 "어느 나라 대통령이 절룩절룩하면서 자기 몸 하나 못 가누느냐"라는 망언을 내뱉어 장애인들을 경악케 했다. 더군다나 김씨는 육아원의 이사장과 한국아동복지시설 협회장으로서 이율배반적이고 저질적인 발언을 한 것이어서 더욱 놀랍게 한다.

  소아마비를 가졌던 루즈벨트 대통령이 오랫동안 칭송 받는 인물로 남아있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불편한 신체 구조를 대통령의 자질과 연관시키는 발언을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인사가, 그것도 수많은 대중 앞에서 했을 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단 말인가.

  또 얼마 전 유세 때 김영삼 후보는 한 장애인 부부를 칭송하며 불구를 이겨낸 장한 부부라고 하였다. (불구란 호칭은 위화감을 조장하는 용어로 장애인이란 호칭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무지로 장애인복지정책을 제대로 펴 나갈지 의문이다. 대통령 후보라는 사람이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이 정도라면 그 아래정책 담당자들의 사고방식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정책 담당자들의 의식개혁이 선행되지 않은 채 남발되는 무수한 공약은 표나 얻고 보자는 기만책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장애인복지에 혁신이라도 일어날 듯이 떠들어댔던 6공화국 정부가 5년 간 한 일이라곤 한시적 기구인 "장애인복지대책위원회"를 설치하여 사문화된 건의서를 채택한 것과 300억 내외에서 늘어날 줄 모르는 장애인복지예산으로 모든 장애인정책을 얼버무린 것 밖에는 없다.


  최근 민자당이 내놓은 장애인복지정책 자료를 보면 만약 그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향후 5년간 무엇이 달라질지 의문을 갖게 한다,87년 설치된 장애인복지대책위의 재판인 사회복지대책위 설치와 93년 지하철 무임 승차제와 자립자금 융자대상을 94년 500명에서 1500명으로 증원하고, 융자한도액 400만원에서 600만원으로 증액한다는 내용 외에는 구체적인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한 체 막연한 공약만 내세우고 있다.

  그 예로 장애인의 입학과 취업 등에 있어서 기회균등 저해 법령, 제도 개선, 신축 건물과 도로 등 기타 서비스 편의시설 강화, 청각·언어 장애인 통신수단 제공, 저소득 장애인 생계보조수당 지급대상 지급액 증액, 의료재활시설 확충, 장애인보장구 지원 대폭 확대, 장애인 직업재활사업 지원(자립작업장 확대 운영비 일부지원, 기업체와 연계 제품 주문생산, 작업환경 장애가 있는 경우 편의시설 설치 권유, 장애인 시설 종사자 인건비·운영비 연차증액, 국공립시설과 균형 유지)등 대부분의 공약이 그러하다. 언제까지 얼마를 지원하고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어떤 수준까지 이행하겠다는 구체적인 제시가 없다. 현재 법제상 구속력도 없는 데다 93년 예상조차 명목상 증가율은 14.3%에 불과하고 실질증가효과는 거의 없는 400억에 지나지 않아 위의 공약 이행은 시늉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현재의 예산 가지고는 그 무엇도 이루지 못한 채 장애인복지는 제자리걸음만 하게 될 것이다. 정부 추정 장애인 95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현재 예산은 마땅히 400만 명을 기준으로 4배에 해당하는 1600억, 90년도 630억 절대필수 추가예산을 고려한다면 4000억은 되어야할 것이다.

  노인 복지라든가 근로자복지, 여성복지는 누구나 실감할 수 있어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반면 자칫 신경 쓰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는 것이 장애인 복지다. 더군다나 정책 담당자가 비장애인이고 합리성과 효율성의 선봉자라면 아예 무시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런 무관심이 곳곳에 지뢰처럼 설치돼 있는 도로 턱을 만들어 냈고 장애인의 접근을 거부하는 권위주의적 건물을 만들어 낸 것이다.

  얼마 전 방송된 "게르만을 다시 본다"라는 TV 프로에서 본 독일의 거리는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도로 턱이 없었다. 그 거리를 휠체어를 탄 중증장애인들은 자원활동자의 역할을 하고 있는 방위병의약간의 도움만으로도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고, 발가락 하나만을 움직일 뿐인 뇌성마비 장애인은 제2의 스티븐 호킹을 꿈꾸며 무리 없이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 독일이 경제발전과 복지정책을 함께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은, 비단 돈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할 수 없는 것"이라는 의식과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의식의 차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을 수 있었다.
  이제 복지는 누가 정권을 잡더라도 국가유지 차원에서 이루어져야한다. 복지예산이 국방예산의 사분의 일도 안 되는 우리나라에 비해 독일의 경우는 복지예산이 국방예산의 두 배에 달한다는 것만 봐도 그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정부에 구걸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빼앗긴 권리, 그로 인한 피해를 이자까지 쳐서 받아내야 하는 것이다. 각 장애인 단체는 더 이상 정부와 유착하지 말고 뭉쳐야 하며 400만 장애인과 1600만 장애인 가족은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고 비하할 것이 아니라 떳떳이 나서고 떳떳이 요구해야 한다. 더 이상 개도국 수준에도 못 미치는 복지예산, 버림받은 장애인 입양수출국으로 나라 망신시키는 일은 없어야 한다.

  이번 선거에서 우리는 진정 장애인 복지를 대변할 수 있는 지도자를 선택해야 한다. 

작성자이현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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