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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나라 이웃 나라

[장애학 연구회]

본문

먼 나라 이야기

정신장애(정신질환)만큼 우리가 먼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는 장애도 없는 것 같다. 우리는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막연히 나와는 무관한 이야기, 나와 연결되면 안 되는 이야기’로 정신장애를 바라본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이면 누구나 이 정신장애라는 것이 갈수록 사회의 중심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정신장애에 대한 온갖 부적절한 설명들이 대중매체 등을 통해 퍼져나가면서 대다수의 국민들이 정신장애에 대한 제대로 된 지식 없이 ‘그들에게는 치료가 최선이다’는 결론에 막연히 다다르게 된다는 것이다. ‘다수의 안전’을 위해서는 당사자가 원하지 않더라도, 즉 ‘강제로라도’ 치료받게 해야 한다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인권보다 치료가 우선’이라는 논리가 잘 먹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정신장애인이 늘어나서 정신병원 병상 수가 증가한 것이 아니라, 역으로 정신병원 병상 수(아울러 전문인력)의 증가가 정신장애인 수를 증가시키고 있는 실정이라는,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을 꼬집는 사람이 있을 정도겠는가.

인간은 서로 돌보고 기대며 살아가도록 진화한 존재이다. 그래서 사회구성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사실은 자신의 인간다운 삶에 있어서 중요한 환경이다. 어쩌면 이런 이유로 우리는 어떤 이유에서든 누군가로부터 위협을 느끼게 되면 바로 사회적 격리라는 특단의 조치를 내리는지 모른다. 게다가 그런 격리에 ‘그 사람을 위해서’라는 장식이 붙으면 우리는 가벼운 마음으로 배척한다. 정신질환의 경우에 있어서 그 장식은 ‘치료’이다. 하지만 아는 사람은 다 알듯이, 정신질환의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평생 재발한다는 것이다. 비단 정신질환에 대해서만 아직도 우리가 마땅한 치료법을 가지고 있지 못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정신질환 역시 당뇨나 암처럼 평생 가지고 관리하며 살아야 하는 질병이다.

사회적 뇌(social brain)

인간의 모든 행위는 뇌 활동과 긴밀한 관계에 있다. 정신질환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알고 넘어가야 할 뇌 지식이 있다. 뇌 발달 전반에 있어서 뇌가 갖는 사회적 욕구이다.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뇌 과학을 포함한 신경과학은 그야말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오고 있다. 덕분에 우리는 과거에 비해 놀랄 만큼 많이 인간(몸, 뇌)에 대해 새로운 지식을 갖게 되었다. 이런 맥락에서 인간의 삶을 설명함에 있어서 유전자중심주의와 같은 과거 패러다임은 이제 수용되지 않게 되었다. 또한 뇌 속 어딘가에 ‘의식’을 독자적으로 통제하는 어떤 부위가 있어 뇌와 행동의 관계에 대해 마치 컴퓨터처럼 지시하면 그대로 특정 행동이 유발된다는 식의 관념 또한 현대 신경과학에서는 더 이상 수용되지 않는다. 뇌는 컴퓨터 작동 방식과 달리 유기적으로 작동하며 또한 외부 자극에 대해서만 반응하는 것도 아니다. 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며 뇌 활동은 주로 외부적인 자극보다 내적 동기에 따라 이루어지며 이때 많은 잠재능력이 발휘된다고 한다.

이처럼 뇌에 대한 기계적인 이해방식에서 뇌가 유기적이고 선택적인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면서 각각의 뇌가 처해진 환경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새롭게 가치를 두기 시작하게 되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 다르게 생겼듯이 뇌 또한 각기 고유성을 가지며, 이것은 그 뇌(사람)의 고유한 생물적 구조에 기초해 각기 자율적인 구조를 가지고 세계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같은 상황에 노출됐다고 하더라도 사람마다 다르게 경험하게 되는데 이런 식의 다양한 삶의 과정이 고유한 뇌, 또 고유한 ‘자아’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특히 강조되는 것이 바로 타인과의 구체적인 접촉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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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대 들어 신경과학은 거울신경세포라는, 이제껏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신경세포를 발견했다. 거울신경세포란 글자 그대로 상대가 느끼는 감정을 똑같이 나도 느끼게 하는 신경세포인데(감정 모방), 누군가를 동일한 시공간에서 접촉할 때 극대화된다. 즉 혼자서 이리저리 어떤 상황을 상상할 때 혹은 TV 드라마를 볼 때와는 완전히 질적으로 다르게 나의 뇌 세포가 반응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시간 어떤 특정 상황(사람)에 노출돼 있으면 우리의 뇌(기능)도 변화하게 되는 것이다.

정신질환 발병 역시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친다. 간단히 설명해, 갑작스런 충격이나 사고 등에 의한 뇌 질환을 제외한다면, 정신질환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나의 사회적 뇌가 요구하는 적절한(이것은 매우 주관적인 관점에서 ‘적절한’이다) 환경적 지원이 만족되지 못했을 때 생기는 반응이다. 즉 정신질환자 당사자의 어떤 태생적 나약함이나 취약함으로 인해 발병한다기보다, 구체적인 사회적 관계 속에서 발생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질병이 바로 정신질환이다. 서두에서 인간은 서로 기대고 보듬으며 살게 되어있다고 했는데, 정신질환은 자신이 속한 집단(공동체) 속에서 의지했던 어떤 축이 -그것은 구체적인 사람일 수도 있고 특정한 사회적 관념, 가치일 수도 있다- 무너지게 될 때 사회적 존재인 인간에게 생길 수 있는 정신기능의 질적 변화인 것이다.

정신기능의 ‘간 기능적 연결’

인간의 정신기능은 유아기를 거쳐 청소년기에 급격하게 발달하며 이때 일어나는 정신기능의 질적 변화는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사춘기 들면서 문득 지난주까지 멀쩡하던 아이가 갑자기 신경질을 부리고 반항을 하기 시작하는 것, 또 아이의 변덕이 하늘을 찌르게 되는 것이 이러한 정신기능의 급격한 질적 변화 때문이다. 정신질환 또한 마찬가지다. 어떤 이유에서든 정신기능의 급격한 질적 변화에 의해 전혀 다른 사람 같은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이다. 마치 사춘기 아이들을 우리가 어느 순간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끼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면 이때 진행되는 정신기능의 질적 변화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러시아 심리학자 비고츠키(Vygotsky)는 이러한 정신기능의 역동성에 대해 일찍이 ‘간(間)기능적 연결’이라는 흥미로운 제안을 한 바 있다. 즉 인간의 정신기능은 단순히 양적으로 새로운 어떤 기능이 하나하나 추가되면서 발달해 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적 변화를 거듭해 나가는데, 이러한 질적 변화는 이전의 기능들 간의 연결과 관계가 변화되면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정신기능의 간 기능적 연결이란 이런 뜻이다. 사춘기와 정신분열증에서 우리는 이러한 간기능적 연결이 급격하게 변화됨을 경험하게 되는데 앞서 설명했듯 이런 급격한 변화로 인해 우리는 누군가를 순간적으로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인식하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혹자는 내가 왜 사춘기와 정신분열증을 같은 맥락에 놓고 정신기능의 변화를 설명하는지 궁금해 할지 모르겠지만 다 이유가 있다. 정신질환 발병률이 가장 높은 연령대가 10대라는 것은 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이것이 지금 현재 정신과 치료를 받는 사람들 대부분이 10대 청소년들이라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정신질환의 싹이 대부분 사춘기에 있다는 말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급격한 정신기능의 질적 변화가 일어나고 있을 때 그 당사자(청소년)의 뇌는 당연히 그러한 내적 변화에 부응하는 적절한 환경적 반응을 원하는데 실제 그렇게 빨리 혹은 갑작스럽게 변하는 사춘기 아이에 대해 그 누구도 그 변화에 발 맞추어 변화된 반응을 주지는 못한다. 사춘기 아이들이 어른들과 말이 안 통한다며 또래 친구들과만 어울리려고 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이다. 어른들이 보기엔 시간 아깝고 쓸데없어 보일지 몰라도 그들은 서로 같은 급격한 뇌 기능 변화를 경험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박자가 맞는 것이다. 그 아이들은 어른들은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속도의 발달 리듬을 타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춘기의 (급격한 변화 중인) 뇌는 그러한 빠른 호흡 환경에서 뇌의 주요 활동 동기인 내적 변화를 외부로 표현하고 그러면서 새로운 뇌 회로를 만들고 시험하고 또 시도하면서 다듬어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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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성인기 정신질환의 싹이 사춘기에 있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는 뇌의 자연스러운 사회적 욕구가 환경과 적절히 소통되지 못했을 경우와 관련이 있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뇌 변화에 따른 새로운 사회적 욕구는 적절한 환경과의 소통에 실패하게 될 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다시 내부로 방향을 돌리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바깥과 소통하면서 다듬어져야 할 (잠재적) 뇌 기능이 어쩔 수없이 속으로 억압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사춘기 청소년도 완벽한 환경적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자기 내부의 사회적 욕구들이 자아성찰 기능을 도와 마냥 까불던 아이를 철 든 아이, 속 깊은 아이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정신질환의 경우를 설명해 보자. 위에서 정신질환 역시 정신기능의 급격한 질적 변화의 산물이라고 했다. 급격한 질적 변화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는 이미 설명했고 그렇다면 그 내용은 어떨까? 사춘기와는 확실히 다르다. 이전의 정신기능들 간의 연결이 달라지고 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사춘기 때와 같지만, 정신질환은 그러한 이전의 정신기능들 간의 연결이 와해되는 변화라는 것이다. 변화라는 점에서는 똑같지만 그 내용에 있어서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고 이해하면 쉬울 것이다.

단, 이때 이전의 각 개별 정신기능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이전에는 a와 b가 연결되어 있고 또 c와 f가 연결되어 있었다면 정신질환은 a와 f가 연결되고 c와 r이 연결되는, 변화된 상태인 것이다. 각 개별 기능(a나 b 등)이 없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은 이런 뜻이다. 그리고 바로 이러한 이중적인 변화, 즉 각 개별 정신기능은 그대로 존재하지만 서로 간의 연결이 변화된다는 사실은 역으로 정신질환이라는 상태의 변화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앞서 뇌라는 것은 단순한 생물적 신체 기관이 아니라 사회적 기관이라고 강조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뇌는 새로운 경험을 할 때마다 바뀔 수밖에 없고, 따라서 정신질환이라는 뇌 상태는 또 다른 상태로 변화가능하다. 정신질환을 갖게 되었다고 해서 이전과 같은 일상생활을 다시는 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뇌는 또다시 질적인 변화를 거듭할 것이고 그렇게 ‘나(나의 뇌)’도 ‘너(너의 뇌)’도 바뀌어 가는 것이다.

이웃 나라 이야기

신체적 혹은 생물적인 차이가 ‘장애’를 만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의 몸은 어차피 다 다르며 정신기능, 즉 뇌도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렇게 보면 정신질환을 가진 사람만 더 많이 다르다고만 볼 수도 없다. 그래서 이와 같은 편견에 대해 장애계에서는 지속적으로 ‘장애’를 사회적 문제로 인식하기를 주장하며 정신질환에 대해서는 더욱 질병 이데올로기(Ideologie・역사적・사회적 입장을 반영한 사상과 의식의 체계, 이념)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예전에 당구에 푹 빠졌던 어떤 친구가 버스 타면 사람들 머리가 다 당구공으로 보인다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관에 따라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들은 다양한 사람들로 보일 수도 있고 건강한 사람과 아닌 사람으로 나뉘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 정신장애가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닌 이웃 나라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혹 정신질환(장애)에 대해 간접 경험을 통해서라도 조금 더 알고 싶다면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라는 책 그리고 ‘위캔 두 댓!(We can do that!)’이라는 영화를 추천한다. 아울러 “공생의 조건은 공생”이라는 말도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다.

작성자정은 영남대학교 교육학과 교수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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