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와 괴롭힘, 무엇으로 이들을 멈출 수 있을까 > 지난 칼럼


혐오와 괴롭힘, 무엇으로 이들을 멈출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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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온라인 포털 사이트 모 게시판에 장애인 혐오글이 게시되어 있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그리고 확인한 글은 대경실색할 수준이었다. 차마 그대로 옮길 수는 없지만 그 요지는 대강 이러했다.
“장애인은 해충이다”
“살 가치가 없는 쓰레기다”
“악마 같은 집단이다”
“강간하고 살해해야 한다”
화면을 캡처하고 해당 사이트에 삭제를 요청했다. 삭제를 요청한지 불과 1분 만에 “회원님께서 신고하신 게시물을 검토한 결과, 해당 게시물은 ○○ 서비스 이용약관 및 운영원칙에 위배되는 내용이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다”는 답변이 왔다. 결국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해당 게시글을 불법·청소년 유해정보로 신고하는 공문을 보냈고 그 과정 중에 임시조치가 아닌 영구적인 조치로 게시글이 삭제되었다는 확인을 받았다.
장애인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존재하고 각종 차별행위가 도처에서 벌어지는 현실에 접해 있지만 이토록 노골적인 글을 누구나, 어디서나 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자 적극적 제재 방법이 고민되기 시작했다.
온라인 게시물에 대해 가장 기본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법률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이다. 그리고 동법 제44조 제1항에서는 ‘사생활 침해 또는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정보’를 정보통신망에 유통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로 인해 권리를 침해받은 자는 해당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이 경우에는 포털 사이트 운영주체가 된다)에게 권리를 침해한 정보를 삭제하거나 반박내용의 게재를 요청할 수 있다. 동법에서는 정보통신망을 이용한 명예훼손에 대해 형법에 비해 형이 가중된 별도의 벌칙 조항을 마련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사례와 같은 혐오표현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다. 특정인에 대한 것이 아니고, 과거나 현재의 사실에 대한 것도 아닌 의견표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모욕죄의 성립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데, ‘특정인’이 아닌 ‘특정집단’에 대한 모욕죄(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죄라고 한다)의 성립에 대한 대법원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집단표시에 의한 모욕은, 모욕의 내용이 집단에 속한 특정인에 대한 것이라고는 해석되기 힘들고, 집단표시에 의한 비난이 개별구성원에 이르러서는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어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에 영향을 미칠 정도에 이르지 아니한 경우에는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봄이 원칙이고, 비난의 정도가 희석되지 않아 구성원 개개인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 만한 것으로 평가될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모욕이 성립할 수 있다. 한편 구성원 개개인에 대한 것으로 여겨질 정도로 구성원 수가 적거나 당시의 주위 정황 등으로 보아 집단 내 개별구성원을 지칭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는 때에는 집단 내 개별구성원이 피해자로서 특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데, 구체적인 기준으로는 집단의 크기, 집단의 성격과 집단 내에서의 피해자의 지위 등을 들 수 있다(대법원 2014. 3. 27. 선고 2011도15631 판결)”

결국, 장애인 일반에 대한 이러한 혐오 표현은 그 수위에도 불구하고 모욕죄로 처벌하기는 극히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에관한법률」(이하 장애인차별금지법)은 어떤가. 현행법률 중 차별금지를 법령명에 쓰고 있는 법률은 「고용상연령차별금지및고령자고용촉진에관한법률」을 제외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유일하며, 구체적으로 괴롭힘을 금지하는 법률 역시 장애인차별금지법 뿐이다. 동법 제32조 제3항은 장애를 이유로 장애인이나 장애인 관련자에게 집단따돌림을 가하거나 모욕감을 주거나 비하를 유발하는 언어적 표현이나 행동을 하는 것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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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신고해 삭제된 장애인 혐오글

문제가 된 게시글을 본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모욕감을 느꼈을 가능성이 크고, 그러한 피해자가 특정되기만 하면 장애인차별금지법 위반을 주장하기는 크게 어렵지 않다. 글을 쓴 사람을 찾아내고 그 사람이 이런 글을 얼마나 자주, 얼마나 많이 썼는지를 조사하고, 피해자들의 손해를 계산해내는 과정들이 있겠지만 그것은 조사기관의 의지와 시간의 문제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이 너무 많았던 걸까. 이 지점에서 더 이상의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언론에 보도되는 사건들, 사람들을 경악시키는 굵직굵직한 장애인 관련 사건들을 보면 의례적으로 강제근로나 성폭력, 유기와 학대, 수십 년간의 감금 등의 피해가 먼저 떠오르게 된다. 그 외에도 온갖 종류의 금품 갈취와 명의도용 등 중대한 피해사건이 한두 건이 아니다. 하지만 매일 매일의 상담 속에서 가장 많이 듣게 되는 피해는 다름 아닌 괴롭힘이다.
“장애인이라고 무시하고 따돌려요”
“맨날 욕을 하고 반말을 해요”
“항의를 했더니 그럼 법대로 하라며 니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했어요”
장애인차별금지법은 ‘괴롭힘 등’을 집단따돌림, 방치, 유기, 괴롭힘, 희롱, 학대, 금전적 착취, 성적 자기결정권 침해 등의 방법으로 장애인에게 가해지는 신체적·정신적·정서적·언어적 행위하고 정의하고 있다. 괴롭힘 자체에 대한 정의는 존재하지 않는다.
괴롭힘의 외연은 너무나 넓고 사람을 괴롭힐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결국 실제로 괴롭힘이 문제가 되는 경우란 다른 형사범죄 이를테면 폭행, 상해, 명예훼손, 학대, 유기, 성폭력, 사기 등에는 해당하지 않으나 어떤 식으로든 장애인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하는 경우가 될 것이다. 놀린다던가, 따돌린다던가, 무시한다던가, 이상하게 쳐다본다던가 하는 그런 흔해빠지고 유치하기까지 한 행위들이 곧 괴롭힘에 해당할 것이라는 점은 당연하다. 하지만 당하는 사람은 어떤가. 당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종류의 괴롭힘도 사소하거나 가볍지 않다. 그 무엇도 ‘장난’이나 ‘그럴 수도 있는 일’ 따위가 아니다. 자존감을 잃고 공포에 떨기도 하고 일상이 모두 망가지며 불면증이나 심각한 우울은 물론, 많은 장애인들이 전화로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고백을 한다. 얼굴도 알지 못하는, 처음 접하게 된 사람에게.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 건 너무 많고 흔한 괴롭힘 탓이었다. 약간의 혼란이나 논란이 있는 지점도 있겠지만, 혐오를 포함한 괴롭힘은 양심의 자유나 표현의 자유와는 분명히 다른 이야기이다. 괴롭힘은 폭력의 일종이고, 장애인차별금지법을 통해 괴롭힘을 금지하는 것은 A에게 B를 싫어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B가 싫더라도 괴롭히지 말라는 것뿐이다. 마음속으로 혐오해도 되지만 혐오표현을 사람들 앞에서나 인터넷을 통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하지만 고민은 여전하다. 장애인을 혐오하는 발언을 하는 사람이나 장애인 친구·동료를 따돌리는 사람들을 강력하게 처벌하거나,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라도 도입해서 엄청난 손해배상을 하도록 강제하면 그런 행위가 사라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응보주의에 기반한 형사사법제도에 대한 근원적 문제제기가 아니다. 그런 방식은 이 문제의 진짜 해결책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자칫 장애인을 분리시키고 고립시키는 또 하나의 편견이 될지도 모른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기 위해서는 장애인에 대한 혐오, 괴롭힘의 이유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기반에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다. 상대방이 나와 똑같이 느끼고 생각할 것이라는 인식을 가진 채 그 사람을 괴롭히고 함부로 대할 수는 없다. 상대방의 고통을 무시하거나 모르기 때문이고, 그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개중에는 누군가에게 받은 피해나 울분이 일반화되거나 대상을 바꾸어 표출되거나 확대, 재생산된 경우도 있을지 모른다. 단순하게 표현하면 이런 것이다. 늘 강압적인 상하 구조에서 의사소통 방법을 배운 사람이 자신보다 약하다고 생각되는 장애인에게 함부로 대하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하거나, 살기가 어려워 생겨난 분노가 장애인 복지에 대한 근거없는 분노로 표현되던가 하는 식 말이다.
직장 내 따돌림이 사회 문제로 떠오르고 일반적 차별금지에 관한 법률의 제정이 논의될 정도로 나와 타자의 구별 짓기, 무차별적인 비방과 혐오, 괴롭힘은 도를 넘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차별금지법이 시행된 지 7주년을 맞았고, UN 장애인권리협약이 국내에서 비준된 지도 만 6년이 지났다. 장애인에 대한 공평한 시각과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인간다운 삶에 대한 권리의 존중은 보편적인 양심과 상식의 수준이 아닐까. 금지와 처벌을 넘어 상식이 통용되는 사회를 만들려면 무엇을 해야 할지, 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의 ‘예방’ 두 글자를 향한 고민이 가볍지 않은 이유이다.

작성자이정민(장애인인권침해예방센터 상근변호사)  natalirk@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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