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A 제정 25주년을 맞이한 한 장애인의 회고 > 지난 칼럼


ADA 제정 25주년을 맞이한 한 장애인의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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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 26일은 미국 장애인법, 즉 The 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 (ADA)가 나라의 장애인들을 위한 종합적인 민권법으로 통과된 지 25주년이 되는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함께걸음의 조은지 기자님께서 이 사실을 저에게 상기시켜주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미국에서 산 33년 중 25년 동안이나 이 장애인법의 영향을 받으면서 살아왔다는 말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ADA라는 세 글자를 거의 잊고 살아왔습니다. 장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대표적인 법인데도 말이지요.

예를 들어 시각장애인이 안내견과 택시를 타려고 할 때, 이들을 태우지 않으려는 운전사의 행동은 틀림없이 불법입니다. 그래서 한 동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저는 법이 저에게 주는 권리에 대해서 운전사를 설득 내지 위협했었습니다. 신고까지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을 환영하지 않는 식당도 있었습니다. 저와 저의 안내견을 문 바로 옆에 앉게 하려는 식당도 있었고, 아예 다른 손님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구석에 앉게 하려는 식당도 있었습니다. 1994년 5월 어느날, 양복 차림의 제가 안내견과 함께 북뉴저지의 한 한인 식당에 들어섰다가 직원이 손에 쥐어준 10달러를 받고 쫓겨날 뻔한 적도 있었습니다. 손님들과 멀리 앉게 하려는 것은 확실치 않지만 안내견과 들어왔다고 해서, 아니면 그냥 시각장애인이라서 저를 걸인 취급한 것은 틀림없이 불법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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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ADA 통과 전에도 안내견의 도움을 받고 사는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육이나 직업에 관한 차별을 금하는 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ADA는 이런 여러 가지 보호를 한 연방법에 묶어놓았고, 이 법에 따라 미국 전역의 서비스 제공업체, 빌딩소유자, 그리고 고용주 등이 지켜야할 규정이 많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ADA가 현실이 된 지 25년, 한국 사람들의 말로 강산이 두 번 반 변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러나 이 오랜 시간 동안 바뀐 것은 강이나 산의 변화 같지는 않단 생각이 듭니다. 휠체어 사용자를 위해 엘리베이터나 램프웨이가 많아졌고, 시각장애인들이 쓸 수 있도록 인터넷 사이트나 스마트폰에 보조기능이 더해졌고, 빌딩에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두드러지게 장애인들의 실업율이 떨어진 것 같지도 않고, 더 많은 장애인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생활을 하고 교육을 받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긍정적인 효과는 장애인들에 대한 인식이 더 보편화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사업주들은 자격이 되는 장애인들을 고용해야하고, 그가 일을 할 수 있도록 정당한 편의 (reasonable accommodations)를 제공해야한다는 것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되었습니다. 인사과 직원들 뿐만이 아니라 직원관리 책임이 있는 사람들은 거의 다 정당한 편의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는 세상이 된 것 같습니다.

또 호텔에도 청각장애인이나 휠체어 사용자들을 위한 특별 객실이 당연히 있는 세상이 왔습니다. 그리고 버스에 휠체어 사용자를 태우느라 시간이 많이 걸려도 불평하는 사람들이 드물어졌고, 오히려 불평하는 사람들이 주위 사람들의 눈치를 봐야하는 세상이 왔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 필요한 것은 법보다 역시 사람의 마음이라고 저는 믿어왔습니다. 다만 ADA와 같은 법은 사람 마음을 바꾸는 것에 촉진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휠체어 사용자들의 필요에 따라 빌딩 구조를 고치는 것은 처음에는 비용 때문에, 또 공사 중 다른 이들에게 불편을 주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싫어했을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시각장애인 직원을 위해 비싼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구입해야하는 고용주 역시 이런 일을 반기지 않았겠지요. 하지만 법의 요구에 따라 몇 번 하다보면 그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버리고 언제부터는 그저 사업을 하는 것에 필요한 예산의 일부분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비슷하게 휠체어 사용자를 버스에 태울 때 걸리는 시간인 빠르면 5분, 그렇지 않으면 15분도 더 걸리는 기대치 않았던 시간을 반길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도 다 참고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면 갈 길이 유난히 바쁜 나 역시 참고 기다려야하는 것을 알게 되고, 이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이것이 큰 불편에서 가끔 있을 수 있는 일로 바뀌게 됩니다.

그러니까 몇 번 해본 것이나 다른 이들이 당연히 하는 것에 익숙해지는 경향을 이용해서 장애인들의 권리옹호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정신적 장벽 없이 같이 살아갈 수 있는 현실에 한 발짝 더 가까이 가기 위해서는 이런 과정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장애인법이 이런 과정을 조성한다면 장애인들의 인권에 큰 도움을 주게 되겠지요. 한국에도 비슷한 법을 통해서나 아니면 장애인 인권을 위해 노력하시는 분들의 수고로 장애인들과 비장애인들이 동등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기를 먼 곳에서나마 기원드립니다.

작성자뉴욕 월가 애널리스트 신순규  gypsy7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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