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봉지만 나뒹굴고 있었고 생쌀만 가득했다 > 지난 칼럼


라면봉지만 나뒹굴고 있었고 생쌀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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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인 2012년 2월 2일 서울 송파구 오금동의 한 영구임대아파트에서 40대 형제가 투신자살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졌다. 동생은 1급 정신장애인이었고 형은 일용직 노동자였는데, 자살 원인은 극심한 빈곤상황이었다.

몹시 추워서 가만히 서있는 상태에서도 발을 동동 굴러야 했던 어느 스산한 겨울날 오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현장에서 만난 이웃주민들은 한목소리로 형제의 우애가 무척 각별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예로 형이 정신장애가 있는 동생을 수용시설이나 병원에 보내고 편하게 살라는 주변의 권유를 물리치고 막노동 일을 하면서 돌봤다는 것이었다.

형제의 이력을 추적해 보니 동생은 사망하기 전 몇 군데 장애인 보호 작업장을 전전한 전력이 있었다. 작업장에서 한 달에 10만원을 받거나 5만원을 받고 일하다가, 그마저도 작업장이 이사하면서 거리가 멀어 혼자 다닐 수 없게 되자 집안에서 아무 하는 일 없이 지내야 했다.

형은 장애가 있는 동생을 돌봐야 했기 때문에 정시 출퇴근 하는 직업을 가질 수 없었다. 수년 째 이른 새벽 집을 나서 인력시장에서 어렵게 건설 일을 구해 일용직 노동일을 해왔는데, 사망하기 전에는 그마저도 일이 없어 집에서 쉬고 있었다.

형제의 수입은 동생이 기초생활수급자로 등록돼서 받는 월 40만원의 생계비와 당시 15만원의 장애연금이 전부였다. 거두절미하고, 형제가 살던 좁은 아파트에서 “장애인 동생을 보살피는 게 너무 힘들어 살고 싶지 않다”는 형의 유서가 발견됐고, 기가 막힌 게 냉장고 문을 열어 보니 먹을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대신 집안 곳곳에 빈곤의 흔적인 라면 봉지만 가득 쌓여 있었다.

누가, 무엇이, 추운 겨울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형제의 등을 떠밀었을까, 우애 깊던 형제는 그렇게 라면 봉지만 나뒹굴고 있던 집을 떠나 다른 세상으로 갔다.

그리고 그 해 3월 30일, 경기도 성남시 태평동에 있는 한 주택 반지하방에서 40대 정신장애인 남녀가 숨져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시신은 심하게 부패된 상태였다. 당시 경찰은 “외부인이 침입한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타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역시 현장에 가서 이력을 추적해 보니, 둘 다 정신장애 3급의 장애를 갖고 있었던 이들 남녀는 사망하기 전, 다른 수입 없이 남자가 받고 있던 기초생활수급비 43만원과 장애수당 3만원으로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다.

여성은 장애를 갖고 있었지만 호적상 가족이 있다는 이유로 기초생활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거기다 설상가상으로 남자는 장애 외에 몸에 심각한 다른 질병을 갖고 있었다. 병원비가 절실하게 필요했지만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주변 슈퍼마켓 주인은 이들 남녀가 잉꼬부부였다고 말했다. 어디를 가든 두 사람이 손을 꼭 잡고 다녔다는 것이다. 모르긴 해도 두 사람은 살아있었을 때 장애가 이유가 된 극심한 빈곤 상황에 진저리 쳤을 것이다.

두 사람은 빈곤으로 인해 못다 한 사랑을 다른 세상에서 이어나가기로 손가락을 걸고 맹세하고, 차마 감기지 않는 눈을 억지로 감았다.

세월이 무심하게 흘러갔고 바뀐 건 아무 것도 없다. 2015년 10월이 되었다. 10월 20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주택에서 50대 정신장애 2급 남성 박 아무개 씨가 사망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시신 발견자는 80대 노모였다.

사망한 동생과 용하게 살아남은 형은 둘 다 심한 정신장애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을 먹이고 돌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몸도 가누기 힘든 80대 노모였다. 나이가 80이 넘었는데 어떻게 온전할 수 있었을 것인가, 자주 아팠던 어머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 6주간 집을 비웠고 겨우 돌아왔는데 아들이 숨져 있었다. 형은 동생이 죽은 줄도 모르고 옆방에서 곤히 자고 있었다.

시신이 발견된 방안에는 쓰레기 더미가 쌓여 있었지만 다행히 쌀과 라면은 있었다. 그렇지만 형제가 쌀로 밥을 지어 먹은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전기밥솥에는 밥 대신 생쌀만 가득했다. 밥솥의 취사 버튼을 눌러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상태에서 정신장애인 동생은 굶어 죽었다.

현재 국회에 정신장애인 복지지원법이 발의돼 있다. 현행 법과 제도에 따르면 정신장애인은 장애인이지만 장애인이 아니다. 정신장애인이 장애인으로 인정받아서 최소한 활동보조 지원이라도 받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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