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 지난 칼럼


결혼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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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던 시절이 있었다. 윤대녕의 단편소설 ‘탱자’를 보면 고모가 회상하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그 양반이 가정방문을 왔다 돌아가는 길이었더니라. 배웅을 하러 따라 나갔는데, 어두워지는 저녁에 앞에서 절룩거리며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상하게 그만 가슴이 미어지더라. 그때만 해도 이 고모는 여간 당돌한 계집애가 아니었다. 뒤쫓듯 걸음을 서둘러 나는 그 양반의 옷소매를 끌어당기며 말했다. 이렇게 절룩거리며 걷지 말고 차라리 내 등에 업혀 함께 어디든 가자고 말이다.(생략) 얼마가 지나서야 그 양반이 얼굴을 들더니 그리해도 후회하지 않겠냐고 묻더라. 이미 작정한 뒤여서 나는 죽기 살기로 뒤는 돌아보지 않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길로 함께 떠난 것이었더니라.”

그러고 보니 신경숙의 자전적인 소설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읽은 기억이 있다. 작가의 이모가 어느 날 마을의 소아마비 청년과 야반도주를 해서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는 내용이었다.

소설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서 장애인의 결혼은 이렇게 한밤중 두 사람이 몰래 야반도주를 해야만 가능했던 시절이 있었다.

장애인 결혼과 관련해서 또 하나 기억나는 일은 장애계에서 한때 맞선 프로그램이 유행했던 적이 있었다. 다수의 장애인 단체가 주최해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결혼을 전제로 한 만남의 시간을 가졌었는데 별다른 성과가 없었는지 지금은 이어지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장애 남성의 경우는 외국 여성과의 결혼이 붐을 이뤘다. 하지만 비용 문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즈음에는 그 마저도 시들해진 모습이다.

이런 그간의 과정을 거쳐 지금은 장애인이 결혼을 하지 못하고 독신으로 사는 걸 매우 당연하게 생각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 생존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점점 더 빈곤의 상징인 장애인들의 결혼이 쉽지 않은 시대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취업한 남성이 결혼할 확률은 미취업 남성의 5배, 취업한 여성이 결혼할 확률은 미취업 여성의 2배에 달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한국경제연구원의 ‘취업이 결혼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갈수록 심해지는 취업난으로 인해 다른 무엇보다 취업이 결혼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이어진 보건사회연구원의 ‘생애주기별 소득·재산’ 조사결과에 따르면 소득이 높고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사람들끼리 결혼을 하고, 이들이 결혼 이후에도 맞벌이를 계속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결혼을 한 가구와 혼자 사는 가구 간 소득과 재산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른바 금수저는 금수저끼리 끼리끼리 결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가구당 소득 불평등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실정이 이러니 취업도 하지 못하고 내세울 변변한 스펙도 없는 대다수 장애인들은 결혼을 하고 싶어도 못하는 게 당연할 수밖에 없다.

물론 결혼과 관련해서 선택의 자유가 있다. 장애인도 자의적 판단에 의한 비혼이라면 결혼 까짓 것 안 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하지만 장애가 이유가 돼서, 더해 장애로 인한 빈곤이 장애인의 결혼을 가로막는 중대한 요소라면 이는 사회적인 문제이고 차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이제 세월이 흘러 측은지심도 집단 맞선도 장애인들의 결혼과 관련해서 아무 의미가 없는 상황을 맞았다. 결국 독신으로 살면서 하릴없이 나이만 먹는 장애인들이 늘어날 텐데 이 문제를 어떻게 할 것인가, 장애인들의 결혼 문제는 장애계가 당면한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사진출처=영화 나비와 바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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