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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과 요양원

편집장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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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충북 진천에 있는 한 요양병원에 다녀온 적이 있다. 잊히지 않는 것은 그곳에 갇혀 있던 중년의 한 뇌성마비 남성 장애인과 깡마른 그의 뺨 위를 흐르던 눈물이다. 본인 말로는 부모가 세상을 떠나며 남겨진 그를 염려해 자신 몫으로 재산을 남겨줬는데, 친형이 그것마저 가로채기 위해 자신을 병원에 강제로 입원시켰다고 했다.

처지는 비참했다. 족히 열 명은 넘어 보이는 환자가 있는 입원실에 돌보는 간병인이라곤 중년의 중국 남자 한 명뿐이었다. 그는 온종일 침대에 누워 약을 먹고 잠을 자는 생활을 매일 되풀이하고 있었다. 이 삶이 끝나야만 병원을 나갈 수 있을 거라며 그는 소리죽여 울었다. 그는 목발을 짚고 걸을 수 있었다.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입원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병원 측에 물었더니, 가족이 병원비를 매달 내고 있기 때문에 장기 입원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원칙적으로 요양병원 입원은 65세 이상인 노인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어야 가능하다. 하지만 현실의 장애인은 65세가 되지 않아도 요양병원 입원이 가능하다. 노인성 질환으로 일상생활이 힘들면, 65세 미만도 요양병원에 입원할 수 있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단 여기서 말하는 노인성 질환은 치매 등 정신적 질환이 아닌, 걷지 못하고 자유롭게 활동하지 못하는 신체장애 상태를 말한다. 실제로 한 요양병원에 전화를 걸어 노인이 아닌 장애인의 입원이 가능하냐고 물었더니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요양원은 또 어떤가. 역시 65세 이상인 노인이 치매 등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고 장기요양보험 등급을 받아야 입소가 가능하지만, 장애인은 요양등급이 없어도 입소가 가능한 게 현실이다. 몇 달 전 서울의 한 지역에서 홀로 생활하던 기초생활수급 장애인이 감쪽같이 사라지는 일이 벌어졌다. 내막을 들여다보니 그 장애인이 갑자기 질병을 앓게 되자, 동사무소 직원들이 돌봐 줄 사람이 없다며 구급차를 불러 요양원에 보내버린 것이었다.

장애인의 요양병원 입원과 요양원 입소가 왜 문제가 되는 것일까? 요양병원과 요양원이 병원이고 복지시설이지만, 장애인이 한번 들어가면 사망할 때까지 자의로는 벗어날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정신요양원의 경우 장애인이 입소하면 강제로 속칭 ‘코끼리 주사’를 맞게 된다. 그날부터 무기력한 일상이 이어진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의 경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약을 다량 복용하게 한다. 그날부터 침대에 누워 잠만 자게 된다.

이렇게 현실 속 요양병원과 요양원은 장애인에게 현대판 고려장 장소가 되고 있다. 가족이 장애인을 거리에 내다버릴 수는 없으니, 대신 요양병원과 요양원으로 보내버리는 것이다. 장애인의 경우 특히 문제가 되는 시설은 장애인 요양원이다. 과거 재활원이 장애인시설이라는 이름이었다면 이제는 장애인 요양원이 실제 장애인 수용시설 역할을 한다.

기존 시설에서 나이가 든 장애인은 사회로 나오는 대신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가족과 지내던 중증장애인이 시설 입소를 의뢰하면 가게 되는 곳 역시 요양원이다. 지역사회에서 자립생활을 하고 있던 저소득 장애인도 질병을 앓거나 고령자가 되면 행정당국에 의해 요양원으로 보내진다.

그래서 요양원은 성황을 이루고 있다. 이제는 사라진 것 같았던 명절이나 특정한 날 지역유지나 소위 사회명사들이 과일 상자 등을 싸들고 시설을 방문해 장애인을 줄 세워놓고 배경삼아 사진 찍던 풍경이 지금 장애인 요양원에서 재현되고 있다. 요양원 입장에서도 운영이 편한 게, 장애인의 자립이나 사회 복귀에 신경 쓰지 않아도 누가 간섭하거나 비난하지 않는다. 장애인이 사망할 때까지 수용돼 요양하는 시설이라고 인식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심각하다. 비장애인도 이런저런 이유로 요양병원과 요양원에 보내진다. 그래서 요양병원과 요양원 입소를 무조건 반대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장애인은 사실상 죽어야 나올 수 있는 요양병원과 요양원 입소를 과연 자발적으로 선택하고 있을까? 누군가 그들의 등을 떠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장애인 본인은 거부하는데 강제로 보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정하게 따져봐야 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강제성이 개입돼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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