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급제 폐지 후 무엇이 필요하다 > 소소한 사회통합 이야기


등급제 폐지 후 무엇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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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전 유명한 시인이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고 했다. 그 말대로 지금의 민주주의가 있기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이 거리에서 피를 흘렸다. 장애인 복지도 마찬가지다. 지금의 장애인 복지가 있기까지는 그간 복지를 외치며 스러져 간 수없이 많은 장애인이 있었다.

그럼에도 장애인 복지가 더 많은 장애인의 죽음을 원한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은, 여전히 장애인 복지가 지지부진한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멀리는 1988년부터 장애인들이 바란 건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었다. 그런데 지금 장애인들의 소박한 소망이 이뤄졌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여전히 물음표다.

최근 ‘촛불정부’라는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장애인 공약 이행률이 발표됐다. 당사자인 장애인 단체들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문 정부는 사실상 장애인 복지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장애인들 사이에서는 우스갯소리로 노무현 정부는 장애인 단체 회관이라도 하나 만들어줬는데, 노 정부 적통을 이어받았다는 문 정부는 장애인에게 해준 게 아무것도 없다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장애인 민심이 이렇게 흉흉한 와중에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은 장애인 단체장들을 불러놓고, 장애인 법정단체 비법정단체 편 가르기 발언을 해 논란에 휩싸였다. 복지부가 언제 장애인 복지 정책을 시행하면서 법정단체의 건의를 순순히 수용한 적이 있었던가? 돌아보면 그런 전례가 거의 없다. 말은 똑바로 하랬다고, 이 나라의 장애인 복지는 비법정단체를 중심으로 장애인들이 거리에서 정부와 싸워 얻어낸 게 거의 태반이다.

대표적 예로 지금은 보편화된 장애인활동지원제도를 들 수 있다. 활동지원제도는 정부가 선물로 준 게 아니라, 경남 산청에서 장애인이 방안에서 얼어 죽은 사건이 발생하면서 위기감을 느낀 장애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생존권을 외치는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보편화됐다. 이동권 보장 문제도 마찬가지고, 현재 시행되는 대부분의 장애인 복지정책 배경에는 장애인의 희생과 이어진 비법정단체를 중심으로 한 거리에서의 싸움이 있었다. 그 후에야 복지 정책이 마련됐고 시행됐다.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희생이 있고 다음에 장애인이 거리에 나와야지만 복지 정책이 마련되고 시행되는 것은 정상적인 국가와 사회가 아니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광경을 목격해야 할 것인가? 적어도 한 나라 복지의 바로미터인 장애인 복지에서는 이런 비정상적인 일이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

정부가 개각을 앞둔 시점에서 복지부 장관은 임기 중 가장 잘한 일로 장애인 복지 정책시행을 꼽았다. 하지만 비슷한 시기에 장애인 단체들은 이 정부의 장애인 복지 정책 시행에 낙제점을 줬다.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는 걸까? 평가는 장애인들이 할 것이다.

분명한 건 7월부터 시행된 장애등급제 폐지는 장애인 복지 정책이 아니라는 점이다. 등급제 폐지 이후 마련되고 시행될 장애인 관련 정책이 장애인 복지 정책인데, 시기가 일러서인지 그다음 그 무엇이 전혀 보이지 않고 있다. 결국 시기가 문제가 아니고 정부의 의지가 관건일 터인데 정부는 또다시 경제가 어렵다는 말만 하고 예산이 뒷받침되는 장애인 복지 정책 시행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

장애인들의 소박한 소망인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의 영위는 언제나 가능할 것인가? 지금은 장애등급제 폐지 이후 그 무엇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다.

작성자이태곤 편집장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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