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부모의 난]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 지난 칼럼


[장애인부모의 난]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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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반복되는 생활 속에 또 하루가 저물어 간다. 왜 하필이면 내가(?)라는 의문점을 수없이 자신한테 묻고는 허망하게 체념 아닌 체념으로 삶에 대한 의욕조차 상실해버린 지난날들...
혜진이는 태어났을 때 울지 않았다는 것을 제외하면 신체적으로 크게 이상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인 난 우리 아이가 조금은 정상아의 발육 상태와 같지 않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주위 어른들께서 늦되는 아이일거라고 걱정마라는 위로에 4년이란 세월을 무심히 흘러 보냈다.

그런데 만 4세가 되어서도 "엄마", "아빠"라는 말 외에는 의사표시를 못하고, 용변 처리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아차 싶어 병원을 찾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뚜렷한 병명을 알려주지도 않고 한달에 한 번씩 와서 치료를 받아 보라고만 했다. 5분 동안 받는 일종의 놀이 요법인데 의사 선생님은 혜진이가 노는 것을 지켜보시더니 정서불안으로 인하여 연령에 비해 조금 늦되다는 것 이였다. 바꿔 말하자면 지진아라고 하셨다.
설마하던 것이... 정말 눈앞이 캄캄했다. 눈만뜨면 화분에 심어진 꽃과 흙을 소파에 쏟아 부어 놓기가 일쑤고, 옷장에 있는 옷들을 끄집어내 방 바닥에  흐트러놓고는 하였다. 아무리 야단치고 때려보아도 통하지 않는 아이를 보고 철없는 엄마였던 나는 차라리 아이가 죽어버렸으면 하는 무서운 생각도 해 보았다. 화가 날땐 그저 나오는대로 욕하며 소리쳐 놓고 후회와 마음의 아픔을 또 느껴야만 했다.
티 없이 밝은 아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내가 왜 이럴까", "이러면 안돼" 하는 질책과 함께 이대로 포기하면 안된다는 강한 마음이 솟구쳤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듯이 해서 안되는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때부터 특수학교, 일반 유치원으로 3년동안 쉴새없이 찾아 다녔지만 눈에 띄이게 발전은 없었다. 혜진이 밑으로는 한 살 터울인 여동생이 있다. 동생인 혜림이와 일반 유치원을 같이 보냈는데 수업시간에도 언니자리를 뒤돌아 보며 혜진언니가 자리에 있나 확인하고, 없으면 선생니께 "우리 언니가 없어요" 하면서 동생인 혜림이가 도리어 언니처럼 혜진이를 돌본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듣고 나이에 맞지않게 어른스러운 혜림의 태도에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하루는 동네 아이들이 혜림이에게 "왜, 느네 언니는 말을 제대로 못하니?"하고 묻더란다. 그 질문에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른 혜림이가 풀이 꺾여 들어왔기에 "언니는 아기 때 아파서 그렇단다."라고 일러주었더니 "이제는 친구들이 물어보면 확실하게 대답해 줄 수 있어요" 하며 혜림이 얼굴 표정이 밝아졌다. 엄마로서 그런일을 경험한 후 언니 때문에 내성적인 아이가 되지 않을까 염려되었지만 올해 국민학교 1학년인 혜림이가 언니랑 잘 지내고 있는 것을 볼 때 대견스럽기만 하다.

언어부족인 혜진이에게 친구가 있을리 없다. 그런 아이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기 위해 난 과자를 한아름 사가지고 이웃의 꼬마들을 불러온다. 그런데 약삭빠른 도시아이들은 조금 놀다가 과자가 다 떨어지면 "아줌마 집에 갈래요" 한다. 순간 미움이 치솟는다.  천진난만한 순진함은 조금도 찾을 수 없고 이기적인 요즘의 꼬마들을 똑똑하다고 칭찬을 해줘야 할지? 새삼 슬퍼진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우리 아이는 그저 친구가 간다고 울기만 한다. 답답한 이 엄마는 "그래 엄마가 같이 놀아 줄게" 난 아이와 똑같이 인형놀이도 하고, 노래도 하면서 혜진이를 달랠 수 밖에 없었다.
학교 보내야 할 나이가 되면서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정성을 쏟은만큼 좋아지질 않는 혜진이를 그래도 일반 학교에 보내어 비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기를 바라는 엄마의 욕심에서였다. 숫자 하나 가르치는데 수십 번해야 알아듣는 혜진이를 보며 "그래 엄마는 수십번 아니 수백 번이라도 네가 알 수만 있다면 엄마는 해내고 말거야"라고 다짐했다. 굳게 마음 먹은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였지만 포기하지 않고 했다. 전혀 모방력이 없어서 보고 쓰는 것 조차 못하던 혜진이는 반복 교육으로 제법 글씨를 보고 쓰곤 했다. 희망이 생겼다. 혜진이 스스로도 자기가 숫자를 알게되자 신기한지 큰소리로 읽어대곤 했다.

그래서 슈퍼마켓에 작은 심부름, 주로 깨지지 않는 껌이나 과자류를 사가지고 오라고 시켜 보았다. 처음 두부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더니 두부가 들어있는 비닐봉지를 뱅글뱅글 돌리며 와서인지 으깨어진 것을 가지고 왔고 껌을 사오라고 하면 엉뚱하게 과자를 사 먹어버리는 짓을 했다. 돈이 드는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시 타일러 몇 번이고 엄마가 말한 것을 사오게 했다. 이젠 슈퍼마켓에 가는 동안 과자명을 잊어버리지도 않고 심부름을 시키면 시킨대로 곧 잘한다. 또 하나의 문제가 된 것은 아무거나 잘 먹는 아이가 비만해 질까봐 음식 조절에 신경을 써야되는 일이었다. 육류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몰래 식구들은 육류를 섭취해야 했고 식사시간을 짧게 잡아야만 했다. 시간이 길면 배가 부른것에 상관없이 끝없이 먹어대는 그 아이에게 그만 먹으라고 하기에는 차마 엄마로서 마음이 아파, 애꿎은 아빠에게만 다그쳤다. 식사 좀 빨리 하라고. 또 아빠는 아빠대로 혜진이가 비대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저녁이면 일찍 퇴근을 해서 달리기와 자전거 타는 것을 연습시킨다.

나는 지난날 순간 순간 모든 것을 상실하고 삶을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언젠가 신부님이 내게 해주신 말씀이 생각난다.
"혜진이를 기르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그 아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자모님의 집에 은총을 주시고 신앙심을 굳게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이웃의 아픔을 자매님의 아픔으로 느낄 수 있도록 해 주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혜진이를 잘 키우라고 하시면서 희망을 가지라는 격려의 말씀도 해 주셨다.
말씀대로 실천하긴 어려웠지만 주어진 운명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감사하며, 부모의 허영심을 버리고 적당한 교육방법을 찾은 끝에 특수학교에 입학시켰다. 비록 욕심대로 일반학교에는 못 갔지만 저학년 5반 고학년 9반으로 한반에 12∼15명씩 구성된 특수학교가 오히려 일반학교에서 학습을 따라가지 못해 뒤쳐지고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해 고립되는 것보다는 나을거라 생각한다. 올해로 10살인 혜진이가 생활에 큰 불편함 없이 떠듬거리며 언어도 구사하고 이젠 혼자서도 곧잘 학교에 가는 뒷 모습을 보면서 좀더 인내를 가지고 교육시키고 가족 모두의 사랑과 관심 속에서 비장애아로 꼭 성장하기를 기도 드려 본다.

작성자권혜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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