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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이야기] 콩 한 조각의 나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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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 한조각의 나눔>

이 세상에는 성자도 많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타인의 삶을 생각만으로 말만으로 돕지 않고 말없이 행동이 먼저 앞서, 자신의 삶을 보람되게 살아가는 사람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들 모두가 낮아져야 하겠다. 자신이 결코 낮아지지 않고서는 그 누구도 올바르게 쳐다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봄볕으로 서울의 거리가 무척 맑아 보이는 오후시간, 국가유공자에게 지급되는 연금으로 청소년 가장을 돕고 있다는 얘기를 시우회 회장 이경식 씨로부터 전해 듣고 그 분을 찾아 뵈었다.
그의 별명은 "초시계"(27세, 본인이 이름을 밝히는 것을 거부하여 별명을 대신 사용함.)
약속을 잘 지켜서 부쳐진 또 하나의 그의 이름이다. 그는 군대 가기 전만해도 중·고등학교때는 야구선수로 뛸 만큼 육체적으로 건강인이었다.

1983년 2월 군대에 입대해서 제대 2개월을 남겨두고 불의의 사고를 맞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어진 무서운 사고.
두 번 다시 되새기고 싶지 않은 일이라 한다. 총알이 척추 세 군데를 관통해 하반신 마비라는 선고와 함께 수술을 해도 신경이 돌아오지 않으면 두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다. 어렸을 때부터 믿었던 하나님이 원망스러웠다.
"주여 나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뚝뚝 떨어지는 눈물.
의사에게 "차라리 저를 죽여주십시오"라고 절규했다.
운명의 신도 양심이 있었는지 다리를 잘라야 한다는 오진을 내리고 하루만에 신경이 돌아와 3년 동안 물리치료 운동 등으로 3년 동안 병원생활하면서 노력한 끝에 지금은 크러치(목발)를 사용하고 있다.
담담하게 그때 일을 얘기하시는 그의 표정은 진주조개가 모래 한 알의 입맞춤에서 하나의 아름다운 결정체인 "진주"를 만들기까지 고통을 수반하는 아픔을 참아내야 되듯 고통을  잘 참아낸 흔적을 읽을 수 있었다.
그가 처음 청소년 가장을 돕게 된 것은 ○○년도 (군대가기전-사고전) "어린이 청소년 손잡기"라는 프로를 TV에서 보고부터 였다. 그때는 4명의 청소년을 돕게 되었는데 군대 갔다오니까 주소도 끊기고 (이사를 가버렸는지) 소식을 몰라서 작년 7월부터 강동구 ○○중학교 3학년 종식군(17세)만을 돕고 있다 한다.

"종식군에 대해서 아시는게 있어요?" 했더니
그에 대해 아는 것은 종식군이 다니고 있는 학교 선생님을 통해서 큰 누나가 폐결핵으로 누워있고 작은누나는 봉제 공장을 다니고 있다는 것 밖에 모릅니다"
"그가 어떤 소년인지 만나 얘기도 하고 싶고 정신적인 고통도 나눠가지고 싶지만 나를 만나는 것을 꺼려하고 도움받는 것을 창피하게 느낀답니다. 그 나이에 그럴만도 하죠" 하시면서 못내 안타까운 웃음을 지으셨다.
그가 어려운 이웃에게 관심을 갖게 된 동기는 바로 자신이 어렵게 컸기 때문이란다.
가난해 본 사람만이 가난의 진 맛을 알 듯 그들의 고통을 누구보다도 잘 알기 때문이리라.
그의 어린시절을 되돌아 보면.

초시계씨는 갯벌 냄새와 어우러져 고깃배가 통통거리는 전남 영광에서 4남 1녀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가 5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국민학교 졸업 후, 갑자기 가게가 기울어 어머님 혼자서 5남매를 키워야 했기에 중학교에 바로 입학하지 못했다 한다. 어린 나이님 14살 때 서울에 있는 모 전자회사에 취직이 되어 일을 하게 되었다. 직원 중 제일 나이가 어려 생산과 기계실에서 일을 하면서 기숙사 생활을 했기 때문에 형들의 잔심부름까지 도맡아 해야하는 고달픈 신세였다. 그러나 잘못하면 얻어 맞기도하고 애궂은 소리도 들어야 했지만 돈을 벌어 공부를 해야겠다는 소망이 있었기에 군소리않고 열심히 일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고달프지만은 않았어요. 나중엔 형들도 저의 성실함에 탄복하여 극장구경도 시켜주고 공원에도 데려가는 일도 있었으니까요. 그 시절이 그리워집니다." 웃음.
"물질로, 명예로, 권력으로 행복을 채워서는 안됩니다. 사랑으로 채워야 되지요"
"전 이것을 신념으로 삼고 지킬려고 노력 하고 있지요"
그의 마음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는 굳은 생각이 콩 한조각도 나눠 먹을 수 있는 인정과 겸손을 몸에 베게했나 보다.
사람들이 의례 생각하듯 "돈에 여유가 있으니까, 그렇겠지"라고 짐작하고 찾아간 어리숙한 상상을 망치로 호되게 두들겨 맞은 기분이었다.

새벽 4시. 새벽 예배로
요즈음 그의 하루가 시작된다.
"병원에 있을 때 사회에 나가면 어떻게 생활해 나갈까 제일 걱정되더군요"
하지만 초시계씨는 잠시도 쉴 틈이 없이 바쁘시단다. 그래서 인지 활동하시는데 그렇게 불편하게 보이지 않았다.
"누워서 천정만 쳐다보고 있으면 어떤 식구가 좋아하겠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다 해요. 방청소, 밥하는 것까지"
그리고 조용한 시간에는 김운희 선생님 (시인, 소아마비)을 통해 알게된 "시우회" 장애인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신단다.

취재를 나간 그날도 장애인 친구에게 편지를 쓰고 계셨는데 살짝 훔쳐보았더니 서두에 그의 마음을 드러내듯 "갈로"의 말을 쓰고 계셨다.
"내가 한것처럼 아무말 말고 자주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잠자코 사랑하여라. 사랑이 깊고 참된 것이 되도록 말 없이 사랑하여라. 아무도 모르게 숨어서 봉사하고 눈에 드러나지 않게 좋은 일을 하여라. 그리고 침묵하는 법을 배워라"
또한 장애인 친구들을 만나는데 있어서는 택시값을 아끼지 않으신다니!
황혼이 창문에 드리워질 무렵 자리에서 일어서며 "미래의 꿈이 뭐예요?" 하는 기자의 질문에 "제 꿈은 어린이들을 위한 복지관을 설립해 그들과 함께 살고 싶어요" 하신다.
문득 "너희가 변화되어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라는 예수님 말씀이 뇌리를 스친다.

취재/홍성남

작성자홍성남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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